[신작대결] 끝까지 간다·차가운 장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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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30   |  발행일 2014-05-30 제42면   |  수정 2014-05-30

끝까지 간다 (장르:범죄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완전범죄가 통할 줄 알았어?…난 네가 한 일을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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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였다. 아내의 일방적인 이혼통보에 갑작스러운 감찰반 내사 소식, 그것도 하필 어머니 장례식 날에 말이다.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지금 폭발직전이다. 하지만 더욱 황당하고 끔찍한 일은 지금부터다. 일을 수습하기 위해 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하던 그는 개를 피하려다 그만 사람을 치는 사고를 일으킨다. 설상가상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 어떻게 수습할지 잠시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 건수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다행히(?) 야심한 시각인 데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도로임을 확인한 건수는 재빨리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는다.

‘끝까지 간다’는 완전범죄를 노리는 한 형사의 좌충우돌을 숨 가쁘게 쫓는다. 일단 건수는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체 유기까지 한 범법자다. ‘증거만 없으면 세상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건수는 교묘하게 어머니의 관 속에 사체를 숨기려 한다. 기발하고 완벽하다. 하지만 그가 죽인 피해자는 오래전부터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던 인물. 곧 경찰 내부에서 피해자를 찾는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사면초가에 빠진 건수는 이를 은폐하려 애쓴다.

영화는 이 과정을 제법 리드미컬하게 치고 나간다. 비슷한 장르의 낯익은 설정과 소재를 끌어왔지만 도식적인 공식과 곁가지를 과감히 걷어낸 덕에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결과적으로 영화에 효율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건수의 원맨쇼에 가까웠던 초반부 이야기가 코믹과 서스펜스에 가까웠다면,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액션과 스릴로 채워진다. 일단 두 연결고리는 매끄럽다. 시종 긴장감을 형성하는 이야기의 밀도는 물론, 속도감도 적당하다. 그리고 이를 추동력 삼아 숨 가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낯선 인물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바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는 정체 불명의 남자 박창민(조진웅)의 출현이다.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건수의 숨통을 죄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빠른 속도감이다. 흥미로운 건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면 또다시 새로운 위기와 상황이 연이어 발생해 심리적 압박감을 더해가는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밀도 있게 전개되는 이 과정은 러닝타임 내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지만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스릴러와 블랙코미디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은 그만큼 유기적으로 작용했고, 매 순간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유머 코드와 허를 찌르는 반전은 영화의 매력을 더한다.

‘끝까지 간다’는 2006년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데뷔한 김성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배를 마셨던 전작에 대한 절치부심의 흔적이 충분히 느껴질 만큼 안정적인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를 “비교적 간결하고 스트레이트로 쭉 뻗어나가는 영화”라고 정의한다. 무엇보다 다른 요소를 더하기보다 거두절미한, 시종 어떠한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계속 전진해 나간 뚝심은 “영화적 재미만으로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한다.

투톱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선균과 조진웅도 돋보인다. 선악의 구분이 따로 필요없는 나쁜 놈들의 대결을 펼친 두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최강의 시너지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힘 있게 밀고간다.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의 심리적 압박감과 절박함을 악과 깡으로 맞서는 이선균의 연기도 발군이지만, 강한 눈빛과 생생한 표정만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 조진웅의 악역 연기도 백미다. 신선한 설정과 구성, 그리고 장르적 재미까지 두루 갖춘 쫄깃한 범죄 영화의 탄생이다.


차가운 장미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의문의 장미꽃 다발, 평온했던 그 부부의 일상 흔들다

20140530

폴(다니엘 오테유)과 루시(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넓은 정원이 딸린 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다. 특히 폴은 실력과 인품을 갖춘 성공한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또 사랑스러운 여인을 아내로 둔 성공한 가장으로서 스스로 완벽한 삶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두 사람의 일상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장미꽃 다발이 병원과 집으로 배달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거듭되는 꽃 배달에 부부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그 무렵 폴은 우연히 알게 된 젊은 여인 루(라일라 벡터)를 의심하며 피하려 하지만,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그녀에게 차츰 호감을 느끼게 된다.

‘차가운 장미’는 사회와 가정에서 성공한(듯 보이는) 평범한 중산층 부부의 평온하고 고요했던 일상의 흔들림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완벽한 삶은 환상이고 불완전한 삶은 실제’라는 말을 역설이라도 하듯 외형적으로 비쳐진 그들 삶 이면에 가려졌던 진실된 감정과 욕망이다. 성공한 남편 덕에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루시는 실상 이웃 하나 없는 외딴 집에 갇혀 넓은 정원을 돌보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일 만큼 단조로운 일상을 이어왔다. 이제 그녀가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 놓는다. “당신은 수술로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한가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이는 풍족하고 향기로워 보이는 삶 이면에 내재된 그녀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폴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삶을 살아오긴 마찬가지다.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정작 자신은 어떤 것도 꿈꿔 본적이 없다.

사실 너무 완벽해 보여서 불안했던 두 사람이다. 지금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공을 향해 달려왔을 남자와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공허함을 감춰 온 여자의 투명하고 명확한 삶.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소중하게 일궈놓은 삶의 터전에서도 읽혀진다. 드넓은 정원 한가운데 지어진 통유리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언제 시들지 알 수 없는 유리병속의 장미처럼, 두 사람의 관계를 건조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결국 견고한 철옹성 같았던 그들의 관계는 의문의 장미가 배달되면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촉매제가 된 건 루의 등장이다. 동시에 폴과 루시 부부의 평온한 일상을 따라가던 영화는 스릴러 장르와의 흥미로운 접점을 시도한다.

루의 등장이 누구보다 당황스러운 건 루시다. 루시는 이제껏 지켜온 삶이 무너질 것을 직감하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폴은 루에 대한 처음의 불편함과 긴장감이 차츰 호감과 호기심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가장 오래된 벗인 제라르(리차드 베리)는 그런 폴에게 실망한다. 그는 대학시절, 루시를 놓고 폴과 경쟁을 벌였을 만큼 여전히 그녀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제라드가 협조를 구하는 폴에게 “자넨 늙고 주름만 가득한 어리광쟁이가 돼버렸어. 마음은 메마르고 자기 생각밖에 안하지”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건 그래서다. ‘차가운 장미’는 영화 속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의미와 사실을 생략한다. 다소 불친절해 보이는 이런 접근 방식은 캐릭터들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관객 스스로 유추해보라는 감독의 의지로 읽혀진다.

‘차가운 장미’는 프랑스의 유명 인기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필립 클로델의 신작이다. ‘회색 영혼’ ‘무슈 린의 아기’ 등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강렬한 심리 묘사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다시 한 번 관습적인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삶과 섬세한 감정의 결을 포착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장르의 코드를 활용하고 섞는 필립 클로델만의 연출 방식은 빛을 발한다. 이 이야기에 깊이감을 더한 건 프랑스의 국민 배우 다니엘 오테유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다. 두 사람은 인물들이 겪고 있는 감정의 혼란과 충돌을 밀도 있는 연기력으로 소화하며 환상적인 연기 앙상블을 완성해냈다. 섬세하고 정교한 드라마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영상 역시 프랑스 영화 특유의 미학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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