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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섭 대구 수성구 의원 당선자가 풀뿌리민주주의와 봉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당선자는 유권자에게 감사하고, 낙선자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즈음 다시 정치인의 덕목을 생각해 본다. 정치인이든 정치 지망생이든 둘 다 시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 청렴이 가장 큰 기준이 될 터이다. 태생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도 정치판에 들어오면 ‘건달’이 돼버리는 현실에서 ‘신사’라는 닉네임을 유지하긴 어렵다.
김희섭 대구 수성구의원 당선자(55·만촌1, 범어2·3동선거구).
그를 두고 주변사람은 ‘신사’라고 부른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모르게 꾸준히 봉사를 실천했던 인물이다. 대학시절에는 야학, 청년시절에는 대구지역 시민단체의 간사를 했다. 한때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정당인으로도 활동했으나 이번 지방선거 때 기초의원 무공천 약속을 저버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이해에 맞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이전 대구경북지역 여론은 기초의원 무공천을 환영했다. 하지만 무공천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대구지역 기초의원 선거구 102개(비례대표 제외) 가운데 새누리당은 77석, 새정치민주연합 9석, 정의당 2석, 노동당 1석, 무소속 13석이다. 경북은 247개(비례대표 제외) 가운데 새누리당 182석, 새정치민주연합 2석, 무소속 59석이다.
김희섭 당선자는 이 가운데 마이너리티다. 지난 7일, 그를 만났다.
-먼저 축하한다. 당선소감과 결의는.
“선택해준 지역주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특히 중앙초등 학부모, 만촌1동 성당 교우, 초·중·고 대학동문, 메트로팔레스 주민, 범어 2·3동주민 등에게 감사하다. 선거기간 내내 구의원이 필요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왜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니겠나. 거창한 목표보다 주민의 작은 고충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구의원이 되고 싶다.”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역임했는데 스펙에 비해 체급을 낮춰서 도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아니다. 깜냥에 맞다. 구의원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2012년 4월 총선이 끝날 즈음이었다. 당시 지역구가 수성갑이었는데, 대구시장 후보였던 김부겸 전 의원이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대구에 왔기에 그 대의에 공감해 양보했다. 그는 나보다 더 훌륭한 정치인이다. 또 수성구가 대구정치의 중심이 아닌가. 구의원 출마의 직접적인 이유는 민주당 수성갑지역위원장과 대구시당 위원장을 거치면서 그 위상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면서 구의원 출마를 결심하지 않았나.
“양당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지만 결국 둘 다 약속을 못 지켰다. 이미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태에서 약속을 했고, 민주당은 당원투표를 통해서 먼저 결정하고 문재인 대통령후보가 공약을 했다는 점이 다르다.”
-민주당은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 주도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합당 정신 중 하나가 기초의회 무공천이었는데 그걸 믿었나.
“믿었다. 내 소신도 무공천이다. 기초의원은 주민에 봉사하면서 구청장 살림살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좋은 정책은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생활정치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무공천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으나 호남과 수도권 등지에서 공약을 흔들었다. 시기적으로 선거 80일 전쯤이었는데, 당장 선거준비를 해야 하는 후보자 입장으로선 무척 당황스러웠다. 열흘 동안 지켜보다 동네주민에게 경위를 설명한 뒤 탈당계를 내고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을 달고 출마하라는 요청은 없었나.
“있었다. 득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정치 공학적 손익계산보다 지역주민 100명과의 약속이 우선이었다.”
-당에 지원 요청을 했나.
“조금도 안 했다. 자력으로 노력해 당선되고 싶었다. 홍보물에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이나 수성갑지역위원장 경력도 경우에 맞지 않아 뺐다. 결과론적으로 쓰는 게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선거결과, 수성구에선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기초의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2명, 정의당 1명 등 무소속 등 비여당 후보가 7명이나 당선됐다.
“그게 주민의 뜻이다.”
-야권의 경우 수성구에선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의 후광으로 3인선거구가 유리했다고들 한다. 3인선거구로 주소를 바꿔 출마할 생각은 없었는지.
“3인선거구에 출마할 야권인사가 줄을 섰다. 하지만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곳에 출마하고 싶었다. 그게 정직한 것이고, 지역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풀뿌리정치에선 동네에 누가 뭘 하는지, 동네사정을 꿰고 있어야 한다.”
-대구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꾸준히 했다던데.
“1991년부터 10여년간 대구민주시민운동협의회가 민주시민대학을 운영했는데 사무국장과 대표를 했다. 당시엔 대구에 제대로 된 시민단체가 없었다. 진보적 지식인을 초청해 1년에 2번 정도 10개의 강좌를 했다. 그후 우리복지시민연합 창립멤버로 운영위원을 했다. 지금은 평회원이다.”
-시민단체 활동경험이 있는 사람이 선량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주민과 소통하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해야 의미가 있다. 예컨대 아파트 동 대표를 해도 진짜 봉사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단체 후보자가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면 거부한다. 군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 활동 말고도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다고 들었다. 또 선거 전 대구지역시민단체가 선정한 ‘무소속 좋은 후보’에도 뽑혔는데.
“시민단체가 잘 봐줘서 고맙다. 늦둥이 딸이 지역구 내 중앙초등(6학년)에 다닌다. 딸아이가 2학년이었을 때부터 매주 화요일, 20여명의 어머니와 함께 오전 20분간 책읽기 봉사를 했다. ‘화요 이야기나라’라는 모임인데 20여명의 어머니 중 남성은 나 혼자다.(웃음) 2012년부터는 월~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30분간 교통봉사를 했다. 선거 때만 되면 거리에 나와 인사하는 후보자와 다르다고 주민이 평가했을 것이다.”
-선거를 의식하고 한 것은 아닌가.
“그건 차후의 일이다. 핵심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하는 것이다. 요즘 세태가 개인적이지 않나. 내 아이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내가 봉사하면 수백 명의 학부모가 안심할 수 있다.”
-구의원으로 의회활동을 하면 못할 텐데.
“딸아이가 내년에 졸업을 한다. 2학기가 되면 운영위원장 이름으로 교통지도에 동참할 아버지를 찾아보겠다. 혼자서 매일 하는 것보다 같이 하면 나도 중간중간 할 수 있을 것 같다.”
-봉사는 언제부터 했나.
“계성고(64회 졸업) 시절 가톨릭학생 서클 ‘로고스 셀’에서, 대학(경북대) 시절에는 남대구로타렉트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백골부대 포병장교로 복무한 뒤 대학원에 다니면서 야학선생이 됐다. 대학원 졸업 후 봉화에 있는 영풍광업<주> 연화광업소에서 4년간 근무했는데 직원자녀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공든 탑을 많이 쌓은 것 같다. 그 밖에는 없나.
“대구 서구 평리동에 있는 한 불교복지법인위탁 무료급식소에서 4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반찬 만들기를 비롯해 설거지 등 잡일을 했다. 지역구에 관계없이 갔다. 선거기간에는 바빠 두 번밖에 못 갔다. 수성구 만촌1동성당 내 명도신앙대학에서 2년째 매주 금요일마다 ‘밥퍼봉사’를 했다. 아내와 함께 4년 전부터 네팔 정착인을 돕고 있다.”
-가톨릭 교인임에도 사찰에서 4년간 봉사활동을 했다.
“사랑을 실천하는데 종교와 지역구가 무슨 소용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참된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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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봉사왕’
대학땐 봉사 동아리에
대학원땐 야학교사로
늦둥이 딸 초등학교 앞
매일 교통봉사하고
불교관련 무료급식소
4년째 봉사활동 이어와
아내와 함께 4년전부터
네팔 정착인에 도움손길
기초의원 무공천
기초의회=생활정치 소신
주민에게 경위 설명한 뒤
당적 포기하고 무소속으로
어떤 기초의원으로…
“정치가 내 옆에 있네”
주민이 실감할 수 있게
주민 전화 많이 받고
해결 가능한 민원은
능동적으로 처리할 것
-경력에 있는 국립대구박물관 도슨트는 무엇인가.
“박물관유물해설사로 일주일에 한 번 갔다. 4년째다.”
-스펙 좋고, 봉사활동, 시민단체 활동 이렇게도 많이 했음에도 2등으로 겨우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기존의 벽이 너무도 높다는 것을 절감했다. 심지어 같이 출마한 한 여당후보가 제 명함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더라.(웃음)”
-이번 선거에 누가 가장 도움을 주었나.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역시 가족이다. 교직생활을 하는 아내가 13일간 휴가를 냈다. 나보다 몇 배로 더 운동을 많이 했다. 큰아이, 둘째 아이는 물론 막내딸까지 도움을 줬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보듯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평소 남편과 아빠의 역할은 어느 정도 했나.
“반성할 점이 많다. 특히 막내를 키우면서 가장으로서 반성을 많이 했다. 우리의 사회문제가 대부분 가정에서 출발한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가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회시스템이 중요하다. 적어도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만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차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입당할 계획은 있는지.
“4년 뒤에 고민할 일이다. 주민에게 4년간 무소속으로 일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때 가서 결정할 것이다.”
-어떤 기초의원이 되고 싶나.
“주민이 전화를 많이 해줬으면 싶다. 해결 가능한 민원은 적극적으로 하고, 해결 안 되는 것도 어떤 이유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할 것이다. 주민들이 정치가 바로 내 옆에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
-금품선거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 선거와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명한 수성구민이라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나를 제외한 4명의 후보자가 모두 유세차량을 가지고 운동을 했는데 나 혼자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며 유세를 했다. 유효투표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사용한 선거비용과 기탁금을 전액 되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게 다 국민세금이 아닌가. 홍보물과 명함 등 최소한의 비용으로 선거를 치렀다.”
-선거를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이번에도 대구의 투표율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낮았다.
“투표하러 가는 것은 옷을 맞추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 놓은 옷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선택하러 가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3만원짜리 옷을 사러 가도, 5천원짜리 식사를 해도 꼼꼼히 고르는데, 나의 삶에 관계되는 정치인에 대해 무관심해선 안 된다.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으로 평등하게 대우받을 때는 투표하는 그 순간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최악을 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낙선해 아쉽다.”
-앞으로 각오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다산 정약용의 ‘견여가’라는 시 가운데 ‘사람들이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사람의 괴로움은 모르네’라는 구절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심정으로 일을 해보겠다는 각오다. 또 큰 차가 유턴하려면 회전 반경이 크다. 이제 우직하고 의리 있는 대구시민이 변화의 터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에서도 여야 정치인이 균형 있게 포진돼 대구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 좋겠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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