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운의 오페라와 인생] 부퐁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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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18   |  발행일 2014-06-18 제30면   |  수정 2014-06-18
[박지운의 오페라와 인생] 부퐁논쟁
<오페라지휘자 ·작곡가>

철학가이자 문학가인 장 자크 루소를 아는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란 명언으로 잘 알려진 그는 ‘시골점쟁이’란 오페라를 남길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음악인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먼저 통일왕국을 이룬 1600년대 이후의 프랑스인들은 자기네들이 문화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앞선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늘 지니고 살아왔다. 예를 들어 1600년에 탄생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가 전 유럽을 강타하는 와중에도 프랑스만은 자신들만의 다양한 형태의 음악극을 발전시켜왔다.

이탈리아인들을 통일도 이루지 못한 수준 낮은 민족이라고 폄훼하던 중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말이 거칠기로 유명한, 나폴리에서 탄생한 한 음악 장르가 파리에 상륙해 프랑스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약관 26세로 죽은 페르골레지(G. P. Pergolesi)가 쓴 ‘마님이 된 하녀’라는 짧은 코믹오페라가 그것이다. 당시에 ‘인테르메조(Intermezzo)’라고 불렸던, 노래 부르는 등장인물이 2명밖에 되지 않은 이 오페라에 문화의 선두주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프랑스 대중이 열광한다는 사실은 일단의 문화적 골수 애국자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때 루소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미 ‘참회록’이나 ‘에밀’ 같은 작품으로 국민적 찬사를 받아오던 그가 ‘조악한’ 이 나폴리식 코믹오페라를 오히려 두둔하면서 찬양하고 나선 것이다. 루소는 더 나아가 코믹오페라에 너무나 잘 조합되는 이탈리아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면서, 오페라에서만큼은 프랑스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무용론(無用論)까지 폈다. 급기야 당시 파리의 지식계층이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해 ‘안티’와 ‘찬티’로 나뉘어 말 그대로 ‘피 튀기는 말의 싸움’을 하는, 그 유명한 ‘부퐁논쟁’을 일으키고 만다. ‘부퐁’이란 이탈리아 말 ‘오페라 부파(Opera Buffa)’에서 가져온 것인데 ‘바보스러운’ ‘익살스러운’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무튼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자기 나라 문화를 옹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나라 말이 오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겠는가. 그런데 250년이 지난 오늘날의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금 전 세계에서 절찬리에 무대에 오르는 인기 오페라, 특히 코믹오페라는 거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말로 된 것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등을 빼면 우리가 무얼 즐길 수 있다는 말인가. 본인이 직접 오페라를 쓸 정도로 역량을 가진 종합예술인이었던 루소의 예지(銳智)는 이렇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아무 현상에나 ‘애국’이란 말을 맹목적 잣대로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가 2006년 귀국 직후 가졌던 어느 식사자리에서 2002년 월드컵 때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납득할 수 없는 심판의 판정이 있었다는 견해를 내었다가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냐”고. 그 축구논쟁에서 펼친 필자의 견해가 250년 뒤에는 어떻게 평가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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