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 김천을 이야기하다 .8] 추풍령휴게소(上)

  • 임훈 박현주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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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26   |  발행일 2014-06-26 제9면   |  수정 2014-11-21
조국 근대화 땀과 눈물 어린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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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추풍령휴게소 서편의 언덕에는 경부고속도로의 준공을 기념하는 서울부산간고속도로준공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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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그렸다는 고속도로 분기점 스케치. 추풍령휴게소의 서울부산간고속도로준공기념탑 하단부와 매우 닮아있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1970년 7월7일,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의 전구간 개통식이 대구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는 416㎞의 길이에 왕복 4~8차로로 이뤄져 있다. 개통 5개월 뒤인 1970년 12월8일에는 경부고속도로의 준공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추풍령(상)휴게소의 언덕에 세워졌다. 1971년 8월31일에는 노선 이름이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고속국도1)로 지정됐다. 2002년 5월1일 변경된 새로운 구간체제에 따라 시점과 종점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다.

추풍령휴게소는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추풍령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의 휴게소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다. 근대화의 기반이었던 경부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기에 숱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29만7천여㎡의 대지 위에 세워진 추풍령휴게소는 40여년 동안 수많은 손님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현재까지 성업 중이다. 추풍령 휴게소는 백두대간의 길목에 위치, 경부고속도로 구간 중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동시에 추풍령휴게소 상·하행선 휴게소가 영업을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영업개시 시점은 1971년 1월1일이다. ‘스토리의 寶庫 김천을 가다’ 8·9편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의 중심, 추풍령휴게소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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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의 추풍령휴게소 전경. 목재로 지은 건물 오른편이 휴게소 개소 당시에 지어졌다. 지은 지 40년이 지났지만 건물에는 균열하나 없다.



#1. 근대화 시계 앞당긴 경부고속도로의 중심

‘마이카 시대’가 보편화되기 전인 1970년대, 고속도로 구경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주요 이동수단은 열차였고, 도로사정은 형편없었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상경하는 일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열차를 이용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국민의 삶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었다. 물자와 사람의 지역 간 이동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해졌다. 화장실에 여성 승무원까지 있는 미국산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의 편안함을 만끽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60대 이상의 국민이라면 한 번 쯤은 누려보았을 옛 추억이다. 그 중심에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김천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추풍령휴게소는 휴게소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입지다. 아주 오래전 추풍령을 지나던 한 스님이 “이곳에는 장차 전국에서도 이름난 놀이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님은 추풍령의 고개에 즐거움이 많다는 뜻의 ‘다락곡(多樂谷, ‘다락골’이라고도 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공교롭게도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인 다락곡에 추풍령휴게소가 들어섰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답게 추풍령(상행선)휴게소에는 경부고속도로의 준공을 기념하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기념탑으로 향하는 계단은 77계단인데, 고속도로 건설당시 목숨을 잃은 7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경부고속도로가 국가의 명운을 건 대역사였음을 상기시켜 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뽐내는 기념탑 하단은 네잎클로버와 비슷한 모양이다. 고속도로의 교차로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공사 당시 직접 그렸다는 스케치와 매우 흡사하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손수 기획하고, 건설상황을 진두지휘했을 정도로 고속도로에 열정을 쏟았다. 1964년 서독(독일) 방문 당시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념탑의 모양새가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기념탑 기단부에는 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이 부조로 표현돼 있다. 삽과 드릴 등의 장비를 들고 건설에 나선 노동자의 부조 사이에는 공장모양의 부조가 있다. 산업화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듯 공장 굴뚝 모양의 부조에서는 연기가 휘날린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반환경적인 작품으로도 오해받을 법하지만 산업화를 추진하는 당시의 사회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고된 작업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을 건설노동자의 땀방울과 눈물이 기념탑에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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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휴게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의 전용의자가 보관돼 있다. 원목에 금빛 천을 덧댄 의자의 모양새가 당시 대통령의 권위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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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휴게소의 VIP룸은 현재 편의점 창고로 쓰이고 있다.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휴게소에 들를 때 쉬어갔다고 하는 VIP룸에는 청와대와 연결되는 직통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2. 박정희 전용실, 근혜숲… 대통령들과의 인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추풍령휴게소의 단골 고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지방순시에 나설 때는 주로 헬기를 이용했지만, 육상에서 이동할 때는 경부고속도로의 추풍령휴게소를 꼭 찾았다. 이 때문에 추풍령휴게소에는 대통령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유물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동이 불편하던 시절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 대중적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현재 추풍령(하행선)휴게소의 식당으로 이용되는 목재건물에 대통령을 위한 VIP룸이 남아있다. 휴게소 직원들은 이곳을 ‘영빈관’으로도 부른다. 26.45㎡(8평) 남짓한 VIP룸은 현재 창고로 쓰인다. VIP룸에는 청와대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기, 이른바 ‘핫라인’이 설치돼 있었다.

VIP룸 근처의 휴게소 신관에는 박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이 앉았다는 의자가 보관돼 있다. 대통령의 의자와 사각형 모양의 고풍스러운 원목 탁자를 비롯해 수행원이나 각료들이 앉았을 법한 의자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원목에 금빛 천을 덧댄 의자의 모양새가 당시 대통령의 권위를 짐작하게 한다. 키가 별로 크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 의자의 등받이는 다소 낮은 편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의자는 박 대통령의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안락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추풍령휴게소를 찾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2기 동기인 이상국씨가 추풍령휴게소의 초대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경향신문의 ‘육사 2기 격동기 입교한 격동기 주역들’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이상국 사장은 예편 후 추풍령휴게소의 경영을 도맡았다. 이 사장은 5·16 당시 박정희 소장의 반대편에 섰기에 고초를 겪었지만, 후에 복권됐다. 6·25 전쟁 전사자를 뺀 육사 2기의 절반 가까이가 장군으로 진급했기에 박 대통령과 이 사장 간에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사장과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휴게소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이 사장은 휴게소의 문을 열면서 박 전 대통령의 조리사 중 한 명을 추풍령 휴게소에 영입했다. 개소 초창기 추풍령휴게소의 대통령 전용 조리사의 임무는 오직 대통령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추풍령휴게소의 직원들도 대통령을 대접하던 조리사의 존재를 알고 있다.

최경배 추풍령휴게소 관리과장(47)은 “90년대 초 입사 때까지도 박정희 전 대통령 조리사가 휴게소에 있었다. 우리들은 그분을 조리장 혹은 할아버지라 불렀는데, 90년대 후반 퇴직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 과장은 “할아버지는 대통령과의 인연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조리사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린시절 돈가스를 좋아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추풍령휴게소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육사 동기인 추풍령휴게소의 이 사장과 군시절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대통령의 추풍령휴게소 방문은 뜸해졌다. 추풍령휴게소의 VIP룸 역시 제 역할을 마감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이 추풍령휴게소에 남겼다는 친필액자 여러 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추풍령휴게소를 간간이 찾았고, 대통령 당선 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풍령휴게소를 찾은 후 대통령과 추풍령휴게소의 인연은 뜸하다고 한다.

추풍령휴게소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와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쉬어갔다는 일명 ‘근혜숲’이 있다고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최경배 추풍령휴게소 관리과장은 “(상행선) 휴게소 기념탑 뒤편의 숲인지, (하행선)휴게소 뒤편의 숲인지 모르겠지만, 숲이 무성히 우거진 하행선 쪽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께서 추풍령휴게소를 종종 찾으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참고문헌=‘경부고속도로 복합

역사문화테마파크 조성방안 연구’
공동 기획 :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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