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레스토랑 긴급진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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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8   |  발행일 2014-07-18 제41면   |  수정 2014-07-18
대구 럭셔리 레스토랑 ‘줄폐업’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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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모던함과 고품격 격조를 더한 ‘더 파리스’의 메인 다이닝 홀. 하절기 서쪽 창으로 보이는 낙조는 레드와인 빛이다. 최근 문을 닫아 마니아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사진=이병재씨 제공>

한때 대구에서 가장 시설이 좋았던 프랑스 레스토랑 ‘세페우스’.

시내 2·28공원 바로 옆에 있었던 이 레스토랑은 2006년 문을 열 무렵 지역에선 가장 럭셔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80년대 중반 현재 시내 금곡삼계탕 자리에 문을 열었던 프랑스 레스토랑 ‘아비뇽’ 못지않은 호화로운 출발이었다.

김훤자 사장은 대구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 시대를 열겠다면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현지에서 상아빛 고급 대리석을 수입해 벽체를 치장했다. 천장에도 궁중풍 벽화를 그렸다. 메인 셰프 3명을 서울의 최고급 오너셰프에게 보내 제대로 된 요리술을 배우게 했다. 1인분 10만원 시대를 열었다. 김 사장은 제대로 된 메뉴라인을 형성하기 위해 식자재도 대량 서울에서 공수해 왔다. 당시 대구에서 괜찮은 식재료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전 재료의 70%를 서울에서 갖고 왔다. 처음엔 대학총장, 의사, 교수, 기관단체장 등이 단골로 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고가 메뉴를 먹을 오피니언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 적자가 누적됐다. 결국 2년 전에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이를 안 마니아들은 ‘대구에도 이런 레스토랑 하나쯤 있어야 하는데’라면서 모두 아쉬워했다.


모두들 싸고 맛있는 메뉴 선호
저가 혼합치즈·조미료 등 남용
웬만한 레스토랑 맛 거의 비슷
고급식당 식재료·인건비 압박
고액 임차료 겹쳐 폐업 불보듯


어렵게 김 사장과 전화통화가 됐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동안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제 레스토랑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었습니다. 대구에서 고품격 레스토랑은 아직 시기상조란 생각이에요. 고급 레스토랑은 누구의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명물이란 인식을 가지지 않는 한 대구에서 국제적 레스토랑을 갖추기 힘들 겁니다. 우리 집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잦았어요. 왜 비싼지에 대한 분석은 없죠. 그냥 다른 집보다 비싸다고 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메뉴와 분위기, 서비스를 갖춰놓아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단골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죠. 대구는 인맥 중심이고, 소문 중심이고, 비교 중심이니 프로는 더더욱 이 바닥을 못 견디죠.”


지역 유명 레스토랑의 줄도산

세페우스의 폐점 후유증이 채 가시기 전에 한때 대구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던 TBC대구방송 바로 남측에 있는 ‘더 파리스(The Paris)’도 최근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대구에서 미국 뉴욕 맨해튼급 전망을 자랑하는 고품격 레스토랑 시대를 열어보겠다던 양근석 사장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양 사장은 이전에 20~30대 양식 마니아로부터 대구에서 가장 캐주얼하면서도 귀족스러운 인테리어 레스토랑으로 손꼽혔던 두산오거리 근처 ‘라 벨라 쿠치나’도 경영했는데 이것 역시 갈무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매각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내 동성로에서 실력파 레스토랑이자 가격 대비 만족도가 가장 높은 레스토랑으로, 특히 대구에 살고 있는 외국인한테 인기 짱이었던 ‘디종’도 문을 닫아버렸다. 지역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좋은 재료를 쓰는 만큼 가장 비싼 스테이크 시대를 열겠다면서 열정의 행보를 보여주었던 대구 어린이회관 근처 ‘테이블 13’의 홍재만 오너셰프도 올해 폐업을 해버렸다.


국제급 레스토랑 없이 국제도시 어려워

현재 대구는 메디시티(Medicity)로 치닫고 있고 내년에 세계물포럼 대회를 앞두고 있다. 또한 대구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수는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해 다양한 양식당(올해 6월 말 기준 1만9천369개 회원업소 중 양식당은 모두 259개)이 포진해 있지만 실제 영업구조와 식당의 규모 및 서비스 수준을 감안하면 이들의 미래가 암담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자기 건물에 입주하지 못하고 고액의 임차료를 내고 있는 레스토랑은 장기적으로 폐업을 강요당하고 있다.

대구 양식당 셰프 중 최고참급인 앞산순환도로상에 있는 뷔페식 레스토랑 ‘르네상스’의 김영수 사장, 25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수성구 범어동 프랑스 레스토랑 ‘아트리움’의 김동환 사장, 중구 대봉1동 신라갤러리 부속 ‘신라 유기농 이탈리안 레스토랑’ 박수진, 미국식 캐주얼 레스토랑의 선두주자인 옛 수성하와이 옆 ‘뉴욕뉴욕’의 박세환 사장, 치과 의사를 그만두고 한국형 레스토랑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팔공산 파계사 아랫동네에 둥지를 튼 ‘나무 906’의 박윤옥 사장, 2009년 포멀 갤러리 레스토랑의 기치를 내걸면서 대구 스타디움 근처에 생긴 ‘누오보’ 최영범 사장 등은 자신이 레스토랑 건물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래도 난관을 버텨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럼 절벽으로 내몰린 레스토랑이 어떤 승부수를 던져야 할까.

올해 22년째 셰프의 길을 걷고 있는 남정율 셰프.

춘천시 최고급 레스토랑 ‘산토리니’, 스파밸리 부속 레스토랑 ‘그린비’, 팔공산 ‘선빌리지’, 수성구 범어동 ‘테라짜 인 시티’ 대봉동 ‘셰프 엔’ 등을 거친 뒤 최근 수성구 김대건성당 근처 유기농 레스토랑 ‘비채’의 셰프로 있는 그가 지역 레스토랑 업계의 현주소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가장 좋은 레스토랑이 대구에서 존속하기 힘든 이유는 일단 손님들의 성향을 분석하면 답이 나옵니다. 대구의 웬만한 레스토랑 메뉴를 맛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조리사의 요리 솜씨가 비슷해서 그럴까요? 절대 아닙니다. 싸고 많이 팔리는 메뉴를 선호하다 보니 저가의 비슷한 식재료를 구입해 오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요. 바로 손님입니다. 정말 좋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버팔로치즈의 경우 7천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5천~7천원 저가 파스타 만들 때 이런 재료는 절대 사용 못합니다. 생 버팔로치즈의 반값밖에 안 되는 냉동 버팔로치즈를 코스트코 같은 대형 식자재 코너에서 사옵니다. 거기에 저가 국산 혼합치즈류 등을 넣으면 어느 집에 가나 맛이 비슷해요. 요리에 더 자신이 없으면 치킨파우더, 화학조미료 등을 뿌리겠죠. 그럼 고급 식재료와 저급 식재료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고 맛에 둔감한 20대는 다들 어디로 가겠어요.”

그가 꽤 비싼 메뉴로 알려졌지만 실은 고품격이라고 평가받는 메뉴인 ‘더 셰프 파스타’의 원가를 공개했다.

횡성한우 안심 80g은 5천원, 버섯류(표고, 양송이, 느타리버섯)는 800~1천원, 생크림 120㏄는 1천원 선, 고르곤졸라치즈 20g에 600원, 각종 채소류는 300원, 유기농 파스타인 이탈리아 그라노로 110g은 400원. 코스를 시키면 유기농 녹즙, 수제 양파바게트와 호두곡물빵, 프로슈토와 카프레제, 살아 있는 전복 구이, 산 문어, 수프, 초콜릿 무스와 마카롱, 커피 등이 따라 나온다. 이 모든 걸 2만9천원에 판다? 이익은 어느 정도일까. 정가의 15%를 넘지 못한다. 예전에는 30%를 넘었는데 이젠 치솟는 식재료비, 인건비, 신용카드 결제 등으로 수익률은 10~15% 남짓.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대구 레스토랑 변신을 위한 제언
‘그 메뉴에 그 메뉴’ 탈피하고 젊은세대 변화한 입맛 잡아라

대구의 레스토랑도 변신할 때가 온 것 같다.

현재 대구 레스토랑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면초가에 놓여 있는지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 같다. 1인분 10만원 이상의 풀코스 포멀 정찬을 원하는 수요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새로운 감각의 단품요리를 원하는 젊은 층의 욕구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새로운 욕구의 손님을 다 놓치고 그냥 단골만 붙들고 있다.

분위기와 맛, 인테리어, 서비스 등을 놓고 볼 때 그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맛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 바닥에 나온 셰프는 다 한 가지 맛을 갖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특별한 맛은 없다. 상당수 레스토랑족은 그곳을 생각하는 순간 ‘아, 거기!’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독보적인 ‘색깔’을 원한다. 색깔을 원한다는 건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공간의 소프트웨어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레스토랑이 뭘 이야기하는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가 확실한 것이 색깔이 있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업자용 인테리어는 어딜 가나 비슷하니 특별한 감흥이 있을 수 없다.

여러 메뉴라인을 하나로 뭉쳐 내는 코스식은 너무 지쳐있다.

이미 시내엔 별의별 테마과일빙수가 득세를 하고 있다. 가볍게 식사하고 가족끼리 이런 데 모여 수다를 떤다. ‘투 섬 플레이스’는 몇 년 새 디저트카페 붐을 일으켰다. 빈스빈스 같은 곳은 와플 전문 카페로 특화돼 나오고 있다. 커피숍도 이젠 빵집과 카페, 뮤직홀을 합쳐 놓은 것 같다. 그냥 물에 물 탄 것 같은 추억의 메뉴만 앞세운 레스토랑은 최대 단골층인 20~30대의 변화한 입맛을 따라잡을 수 없다. ‘치맥 신드롬’을 이용한 멋진 테라스와 널찍한 홀의 치킨 호프바는 40~50대 단체모임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70~90년대는 그래도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디저트 라인이 먹혔다. 다른 데 그런 메뉴가 없어 장사가 괜찮았다. 이젠 레스토랑의 메뉴만 특화한 레스토랑 시대가 개막됐다. 차세대 카페형 레스토랑이 공룡 같은 레스토랑을 죽이고 있다.

산업사회형 레스토랑에서 벗어나 ‘정보사회형 레스토랑’ 시대로 건너가야 한다. 지역의 CEO들도 국제도시를 위한 레스토랑 만들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린 아직 폼은 잡아도 품격은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식재료, 최고가, 최고의 매니저, 최고의 시설은 흉내 내도 그 옆에 세상을 굽어볼 줄 아는 문화적 안목 가득한 총지배인과 감각 있고 세련된 홀서버의 지원사격이 없다면 더 이상 세계적 레스토랑도 없다. 이 원동력도 결국 그 레스토랑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안목에서 나온다. 단품 메뉴 전문 레스토랑도 필요하지만 이 모든 메뉴를 원스톱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종택 같은 레스토랑도 함께 발전해야 국제도시가 될 수 있다. 원가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싼 레스토랑만 찾는 지역의 CEO는 더욱 각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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