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프란시스 하·파이어스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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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18   |  발행일 2014-07-18 제42면   |  수정 2014-07-18

프란시스 하 (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돈 없고 백 없지만…27살 뉴요커의 당당한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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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27살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뉴욕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둘도 없는 단짝 친구 소피(믹키 섬너)와 살고 있다. 아직은 정식 무대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수습생 신세지만 무용수로 성공해 세계를 접수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애인과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헤어졌고,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소피는 독립을 선언하며 그녀를 떠났다. 급기야 연말 순회공연까지 불투명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그녀. 이제 꿈은 사치일 뿐, 당장 월세를 갚을 능력이 안되는 프란시스는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처량한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프란시스 하’는 변변한 직업도, 사랑도, 우정도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프란시스의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돈 없고 백 없고 능력도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당당하다. “뉴욕에선 부자가 아니면 예술 못 해. 그래도 난 예술을 하고 있다”며 친구에게 설파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단짝 친구 소피는 그런 프란시스를 일찌감치 “희귀종”으로 치부해 버리긴 했지만.

프란시스는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27살이다. 한편으론 모든 게 기대처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나이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나이의 평범한 젊은이들처럼 꿈과 현실, 우정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프란시스의 독특한 매력에 맞춰져 있다.

‘프란시스 하’는 ‘오징어와 고래’(2005)로 미국 인디 영화계의 스타로 급부상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신작이다. 뉴요커 출신인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인 뉴욕을 흑백의 화면 속에 담아냄으로써 동시대적이지만 날 것의 느낌을 최대한 감각적으로 살려냈다. 덕분에 화려했던 뉴욕의 이미지는 모노톤의 낭만적인 풍경으로 탈바꿈했고, 당당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프란시스의 여정을 채워가는 미장센 역시 마치 누벨바그 영화 속 풍경처럼 여유로운 기품으로 넘쳐난다.

특히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프란시스를 포착해가는 과정이다.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보여주는 즐겁고 슬픈 갖가지 표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화면에 녹아든다. 프란시스 역의 그레타 거윅은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녀의 과거 기억은 따라서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새크라멘토 출신이라는 이력부터 어린 시절 발레를 배운 경험,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함께 살았던 일화까지 그녀의 성장통과 같았던 기억들은 프란시스를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다. 누구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한 매력을 말이다.

‘프란시스 하’는 프란시스 캐릭터에 전적으로 기댄 영화다. 자연스러움이 강조된 촬영도 그녀의 존재감에서 기인했다. “프란시스를 통해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젊은 날의 통과의례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노아 바움백 감독은 촬영을 떠나 그녀와 친구들이 즐겁게 놀아주기만을 바랐다. 때문에 그들이 극 중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그걸 잘하고 있는지 주문하거나 확인하는 절차는 상당 부분 생략했다. 대신 그들이 진짜 친구처럼 며칠 동안 아파트에 모여 지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로마 위드 러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그레타 거윅은 이미 인디영화계에선 ‘여신’으로 통하는 배우다. 이 영화에서 그레타 거윅은 많은 비중을 연기하고 동시에 비중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모든 이들을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긴 엉뚱하지만 낭만적이고, 독특하지만 신선한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파이어스톰 (장르:액션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반갑다 홍콩 누아르…50대 유덕화 녹슬지 않은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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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도심을 질주하던 현금 수송 차량이 백주에 통째로 괴한들에 의해 납치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수송 차량을 호위하던 경찰과 가면을 쓴 괴한들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오래전부터 테러조직의 리더 차오(후준)를 쫓던 수사팀 책임자 루이(유덕화)는 팀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한다.

루이는 증거불충분으로 몇 차례 차오의 검거에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건현장에서 발생한 뜻밖의 교통사고로 인해 거의 잡을 뻔했던 차오를 놓치고 만다. 공교롭게도 교통사고 용의자는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이의 옛 친구 봉(임가동)이다. 봉은 오랫동안 자신만을 바라보며 기다려준 여자친구 얀 빙(야오 천)과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차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파이어스톰’은 80~90년대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림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영화다. 당대의 허무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남성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전형적인 범죄물에 녹여낸 홍콩 누아르의 뼈대는 유지하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속도감 넘치는 대규모 액션과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에 방점을 찍었다. 동시에 우정과 의리, 배신을 키워드 삼아 좁고 어두운 골목을 누볐던 마초적 남성들을 소환해 보다 크고 확장된 홍콩의 마천루를 그들의 활동무대로 제공했다. 이른바 홍콩 액션블록버스터의 등장이다.

커진 외형만큼이나 이야기 역시 탄탄한 편이다.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모범경찰 루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작자 빌 콩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연출은 ‘뉴 폴리스 스토리’ ‘화이트 스톰’ 등의 각본을 담당했던 원금린이 맡았다. 사상 최악의 도심 테러와 정보원 가족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루이는 고뇌와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다. 결국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하는 봉을 범죄조직의 언더커버로 심어놓고, 범인을 잡기 위해 증거조작까지 감행한다. 이들간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심리묘사는 홍콩영화 특유의 비장감으로 넘쳐나지만, 의리와 우정보다는 자식을 향한 뜨거운 부정(父情)과 드라마가 그 자리를 채워간다.

액션 누아르에 관한한 오랜 경험과 능력이 축적돼 있는 만큼 ‘파이어스톰’은 홍콩 제작시스템이라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순조로운 출항을 알렸다. 특히 테러의 위기에 노출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이들의 처절한 사투는 영화 제목 그대로 폭발적이다. ‘파이어스톰’은 이를 위해 홍콩의 랜드마크인 그랜드 밀레니엄 플라자를 위시해, IFC몰, 청마대교, 패더빌딩, 소호 거리 등 국내관객에게도 익숙한 장소를 테러의 주요 무대로 삼았다.

‘파이어스톰’은 지난해 12월 중국 개봉 후 4일 만에 2천700만달러의 흥행수익을 냈다. 이는 당시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4주간 누적 매출액을 단 4일 만에 따라잡는 기록이다. 이러한 흥행 돌풍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역시 이전의 홍콩영화와 차별화 된 스타일리시하고 현대적인 액션 시퀀스에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숨 가쁘게 전개되는 시가지 총격전과 카 체이싱, 대규모 도심 폭발 등은 할리우드와 견줄 만큼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그 중 인상적인 건 유덕화와 임가동이 펼치는 아슬아슬한 고층액션이다. 지상 10층 높이의 건물 사이에 걸쳐져 있는 얇은 철망 위에서 두 배우는 타격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맨몸 액션을 대역 없이 촬영했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장면까지 소화해냈다. 유덕화는 이 영화의 주연과 제작자로 참여했다. 루이 역을 맡아 정의실현과 현실적인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섬세한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5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한 화끈한 액션까지 선보였다. 그의 상대역인 봉 역의 임가동은 ‘흑사회’ ‘엽문’ ‘콜드 워’를 통해 빛나는 조연으로 존재감을 보여준 바 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홍콩 영화가 ‘파이어스톰’을 시작으로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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