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군도:민란의 시대’로 4년만에 컴백한 강동원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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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25   |  발행일 2014-07-25 제37면   |  수정 2014-07-25
“내 목표는 할리우드 진출이 아니라 할리우드 코 납작하게 할 영화를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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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인신사해가 모두 들어있으니 귀한 곳에서 태어나면 제왕이 될 운명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엔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될 고달픈 운명이다.” 전라 나주의 한 색주가에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조윤은 안타깝게도 후자의 운명을 타고 났다. 나주 대부호인 조대감의 서자로 약관 19세에 조선 최고의 무관이 된 조윤이지만 적자인 어린 동생의 탄생은 그를 한순간에 “근본도 없는 놈”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는 엄혹한 시대와 환경. 그는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해 아버지에게 바치는 것뿐이라고. 점쟁이의 말처럼 조윤은 그렇게 백성의 적이 됐다.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배우 강동원에게 흥미로운 지점에 있는 영화다. 충무로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들로 구성된 멀티캐스팅, 유일한 악역, 게다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닌 서브 역할. 강동원의 조윤은 4년 만의 화려한 컴백을 기대한 대중에겐 의외의 선택이었다. 걱정과 우려가 잇따랐다. “그들 틈바구니에서 네가 보이기나 하겠냐”는 것.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과 윤종빈 감독을 믿었다. “연기자로 지금까지 일한 게 몇 년인가. 내가 놀면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다.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었고 나름 자신도 있었다.”

액션 활극을 표방한 ‘군도’는 위대한 영웅이나 지도자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했던 남자와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군도 무리의 대결로 압축된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하정우(도치 역)와 그 대척점에 있는 절대고수 강동원이다. 그만큼 액션에 방점이 찍혀있는 이 영화에서 강동원은 특유의 아우라로 다수의 군도 무리를 일거에 제압한다. 마치 한 마리의 학을 보듯 그 모습은 우아한 기품으로 넘쳐난다. 쉽게 마주할 수 없었던 서늘하고 아름다운 악역의 탄생이다. 특유의 신비로움에 더해 리얼리티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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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복귀다. 느낌이 어떤가.

“그동안 관객들을 너무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에 반가운 한편으로, 오랜만에 찍은 영화라 어떤 평가를 해주실지 긴장되고 떨리는 건 있다. 일단 나도 신나게 (영화를) 봤고, 주위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연기적으로도, 복귀작으로도 나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작품이다.”


복귀작…악역이자 서브役
“왜 모험을 하느냐”
처음엔 주위서 반대
“원톱이 뭐가 중요한가,
내 연기열정 확인하고
좋은 영화 참여 행복”

상대 배우 ‘하정우’는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배우
삭발투혼에 큰 감동받아

인상적인 액션연기
조선 최고 무관役 위해
액션스쿨서 5개월 훈련
대부분 대역없이 연기

여전한 동안, 비결은
담배 끊은 지 3년 반
피부관리에 큰 도움


-공백이 긴 편인데 나름 적응을 빨리 한 것 같다.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호흡이 안 돌아와서 굉장히 힘들었다. 대사도 잘 안 되고, 호흡도 느려지고, 뒷목도 뻣뻣해져 있고. 아무튼 답답해 죽겠더라. 정말 신인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도 데뷔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겨우 이제 ‘사람답게 뭔가 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웃음) 호흡이 돌아오는 데에만 몇 개월이 걸렸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일단 제일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사실 그 전에 윤종빈 감독님을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났다. 감독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당시에 생각하고 있는 작품(군도)이 있다고 하셨고 같이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길래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 단편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이걸 빨리 찍고 나서 시나리오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시나리오가 왔다. 나를 만나고 나서 도저히 그 작품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만큼 윤종빈 감독을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우유부단하지 않고 자기 주관과 색깔이 뚜렷했다. 그렇게 자기 세계가 확실한 분이니 ‘영화 잘 찍으시겠구나’ 생각했고 믿었다.”

-선하고 착한 당신의 기존 이미지가 워낙 강해선지 악역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몇 명을 더 죽였어야 했는데.(웃음) 조윤이 처한 시대 상황과 신분적 한계 때문에 연민이 느껴진다는 여성관객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의문이다. 연민이 느껴진다고 해서 나쁜짓이 다 용서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사회의 범죄자 중에서도 사연은 대부분 있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용서해야하는 건 아니다. 조윤은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하는 나쁜 인물이다. 반면 군도는 백성을 위해서 탐관오리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나눠주니 뚜렷한 명분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조윤은 당연히 악인이다.”

-사실 조윤은 악인이고 비중도 크지 않은 역할이다. 그럼에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일단 시나리오가 좋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캐릭터의 매력이 확실히 보였다. 사실 ‘군도’는 나에게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분량도 적고 어쨌든 군도 무리가 이야기를 다 끌고 나가는 데 비해 나는 약간 서브 역할이다. 그래서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군도 무리 안에 들어가봐야 소모만 될 텐데 왜 모험을 하냐고. 게다가 복귀작인데 원톱영화를 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반문했다. 복귀작이라고 특별한 걸 해야 하나? 그리고 원톱이 뭐가 중요한가. 좋은 영화를 하는 게 중요하지.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으니까 나중에는 오기가 생기더라. 뭐야, 나도 잘할 수 있다고.”(웃음)

-이번에는 남자 배우가 많이 등장한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특유의 에너지가 형성되더라. 남자들만 있어서 아무래도 삭막한 건 있는데 대신 다들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재미있었다. 왜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연배가 다들 비슷했다. 정우 형과는 세 살 차이고, 이경영 선배와 이성민 선배 등을 제외하면 모두 비슷한 나이대다. 그 점에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하정우와는 첫 연기호흡이다. 어떤 느낌을 받았나.

“우선 조윤 캐릭터와 전혀 상반된 형의 캐릭터가 부러웠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형이 진짜로 머리를 밀고 분장하고 나왔을 때는 많은 생각이 들더라.(웃음) 형은 현장 상황에 정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촬영할 때마다 형의 연기를 인상깊게 봤다.”

-그와의 액션호흡은 어땠나.

“뭐, 안맞을 것도, 잘 맞을 것도 없는 게 워낙 작은 칼과 큰 칼의 싸움이라 차이가 컸다. 나야 큰 칼이니 힘든 게 없었다면 형은 너무 힘들어했다. 이 자리를 빌려 형에게 미안하고 고생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캐릭터 접근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면.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내가 스스로 검의 달인이 되면 조윤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워졌다. 컷들이 쌓이면서 중반으로 넘어가면서는 나는 그냥 조윤이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먼저 봤는데 탄탄한 시나리오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군더더기 없이 잘 쓰시는 것도 있지만 특유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연출력이 대단하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상투가 잘린다. 풀어헤쳐진다. 무섭다.’ 이정도다. 이렇다, 저렇다라는 캐릭터 묘사가 없고, 군도의 배경설명도 단순하게 ‘산속에 그들의 산채가 있다’고만 묘사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감독님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한 그림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점이 놀라웠다.”

-사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산채 부분이 어떻게 그려질지 제일 궁금하긴 했다.

“CG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실제로 채석장에다 세트를 지었다. 그래서 완전 리얼하다. 솔직히 나도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이 다 깎여 있으니 너무 신기했던 거지.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했다.”

-조윤을 보면 ‘형사 Duelist’의 슬픈 눈 캐릭터가 떠오른다. 둘 다 악역인데 차이가 있다면 뭔가.

“슬픈 눈은 굉장히 수동적인 반면 조윤은 능동적이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슬픈 눈과 달리 조윤은 아무 거리낌없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인물이다. 액션도 비교하자면 ‘형사’ 때는 ‘검’을 썼고, 이번에는 ‘도’를 사용했다. 보통 1자 칼을 ‘검’이라 부르고 휘어 있는 칼을 ‘도’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때 액션이 좀 우아했다면 이번에는 힘이 실려있는 액션이라고 볼 수 있다.”

-액션이 인상적이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조윤이 조선 최고의 무관이고 군도 무리를 하나씩 상대해 힘으로 물리쳐야 했다. 이를 위해 액션스쿨에서 5개월 맹연습을 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100% 만족할 수는 없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당신이 국내 배우 중에서 검을 가장 잘 쓰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그건 아닐 것이다. 내가 정식으로 검을 배운 것도 아니고. 단지 훈련을 많이 했을 뿐이다. 일단 칼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집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목검도 하루에 몇 백 번씩 휘두르고 그랬다. 제어가 된다고 생각되면 무게를 늘렸고, 그러다가 양손으로 하게 됐다. 액션장면은 대역없이 거의 내가 했다. 감독님이 뒷모습도 선이 달라질 수 있다며 내가 하길 원하셨다. 다만 이번 영화의 액션의 방점은 딱딱 끊어지는 절도감과 힘인데 도포를 입어선지 여전히 무용하는 것처럼 유연하게 보였다고 하더라. 그 점이 아쉬웠다. 좀 더 힘있게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지리산 추설(이성민)과의 대결에서 조윤의 상투가 잘림과 동시에 긴 머리가 풀어헤쳐지는 장면에서 여성관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크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감독님은 그 장면에서 ‘백발마녀전’의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솔직히 난 그 장면을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분장팀장님은 가장 기대를 하셨다더라. 사실 감독님도 모니터를 보면서 ‘어! 이거 멋있는데’라고 나중에 느끼신 거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든 장면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찍고 보니 멋있게 나오긴 했다.”(웃음)

-그렇다면 가장 신경써서 찍었던 장면은 뭔가.

“내가 30명과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우리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액션 시퀀스였다. 촬영에 앞서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이 장면이 특별해지려면 롱테이크로 가야 하는데 해줄 수 있겠냐고. 사실 어려운 주문은 아니었다. 내가 액션신을 위해 오랫동안 훈련을 해왔으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11일을 찍었던 장면이다.”

-비록 악인이지만 ‘역시나 강동원’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시종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내가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했는지 안 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렇게 본다면 조윤이 아닌, 군도 무리안에 들어가 있었어도 상관은 없었다.”

-10년 전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는 건 그만큼 잘하고 싶다는 포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대 때도 항상 얘기했는데 연기적인 내 목표는 할리우드에 가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에 대항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다. 과거보다 월등히 커진 아시아 시장을 보면 내 꿈이 점차 실현돼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면서 신기하다.”

-여전히 동안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이 뭔가.

“담배를 끊었다. 끊은 지 3년 반이 됐는데 그게 주효한 것 같다.”

-극 중과 달리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가.

“경상도 집안이라 그냥 그렇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한 번도 아버지와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 주위를 둘러봐도 경상도 남자들이 부자지간에 여행을 같이 가봤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전보다 말수가 늘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다 보니 나아진 건 있다. 그리고 예전 인터뷰는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솔직히 무서웠다면 지금은 되게 편안하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겠지.”

-마지막 인사말을 부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현장에 돌아와서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말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느꼈던 시간들이었고, 열심히 했다. 많은 분들에게 꼭 사랑받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고 그럴 거라 믿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황인규(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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