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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폭탄’ 공약 주효한
정권실세 李, 전남서 승리
‘개인기’로만 선전한
야당후보 金, 대구서 패배
예산 없는 野후보도 뽑힐까
우리나라의 현행 헌정(憲政)은 ‘87체제’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대권주자였던 ‘1노(노태우)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 외에 국회의원 소(小)선거구제 전환 등을 담은 헌법개정에 합의한 이후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다. 이 가운데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는 지역구도를 고착시켰다. 영남과 호남 모두 자기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의 후보만 고집했다. 두 명을 선출하는 중(中)선거구 시절엔 2등 당선자가 다른 지역을 텃밭으로 하는 정당에서 나오곤 했지만 그럴 일이 없어졌다.
먼저 대구·경북을 보자.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압승을 거둔 후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을 거쳐 현재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보수정당이 지역의 맹주로 군림했다. 15대 총선 때 김영삼 정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JP가 이끄는 자민련 후보를 대거 선택했지만 그들의 뿌리는 민자당이었다. 87체제 초기인 13대 총선 때는 안동에서 오경의, 점촌-문경에서 신영국 통일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15대 총선에서도 권오을 통합민주당 후보가 안동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두 정당은 호남이 뿌리인 DJ계열이 아니라 부산·경남에 근거한 YS계열이었다. 그나마 대구에선 YS계열 정당 후보자조차 단 한 차례도 당선되지 못했다.
극심한 영남-호남 지역구도 속에서도 부산·경남은 대구·경북과는 조금 달랐다. 비록 경남 출신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계열이긴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인 열린우리당(부산 조경태), 심지어 민주노동당 후보(경남 권영길·강기갑)에게도 표를 몰아줬다. 전북에서도 1996년 강현욱 후보가 신한국당 간판을 달고 당선됐다. 결국 그동안 영남 중 대구, 호남 중 광주·전남만이 상대방 지역에 기반을 둔 후보들에게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27년 세월을 살아온 셈이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양쪽에서 동시에 문이 열릴 뻔했다.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김부겸 후보, 광주 서구을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돌풍을 일으켜 당선 기대가 컸다. 그러나 각각 40,4%, 39.7%의 득표율로 가능성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김부겸은 6·4 대구시장선거에서도 새정치연합 후보로 나서 40.3%를 얻었다. 양 지역 모두 “사람은 좋은데 투표장에서 막상 손이 안 가더라”는 말이 나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7·30 재보궐선거. 마침내 전남 순천-곡성 유권자 가운데 49.4%가 투표장에서도 실제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기표란에 도장을 찍어 당선시키는 일대 이변을 일으켰다. 승리의 원동력은 복합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정현 의원의 ‘예산폭탄’ 공약이 주효했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실력자이기 때문에 지역현안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 결과였다.
‘지역발전론’으로 지역구도를 깨려는 시도는 대구에서도 있었다. 노무현정권 시절 핵심 실세였던 이강철 후보가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2005년 10·26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나섰을 때다. 그는 지역 최대 현안이었던 혁신도시 동구 유치를 공약하며 표심을 파고들었으나 44.0%라는 엄청난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예산을 몰아줄 수 있는 정권을 등에 업었던 당시 여당 후보 이강철과 비교하면 개인기로만 뛴 야당 후보 김부겸의 두 차례 선전이 더욱 빛을 발한다. 다음 선거에선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예산폭탄이 불가능한 야당 후보라도 순수하게 인물만 보고 선택할까. 그렇게 되면 예산폭탄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여당 후보를 뽑은 순천-곡성 유권자들보다 마음의 문을 더 크게 활짝 여는 결과가 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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