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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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6   |  발행일 2014-08-06 제30면   |  수정 2014-08-06
베트남 내 한국군 증오碑
80여군데 9천명 희생···불편한 진실 앞에 숙연
참전자 모두 희생자, 가창골에 평화공원을
[동대구로에서]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

가위에 눌리다 “악” 하고 잠을 깼다. 비몽사몽이었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채 검은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호텔 문 입구에 서 있었다. “헉” 숨이 막혔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니 흰 벽에 검은 공간밖에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약해진 탓에 헛것을 본 것이다. 침대 시트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전날 호찌민시에 있는 전쟁증적박물관을 다녀온 뒤 참혹한 학살사진을 너무 많이 봐서 그랬던 것 같다.

지난주 베트남으로 ‘다크투어(Dark Tour)’를 다녀왔다. 평화기행 형식이었으나 핵심은 베트남 중부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국군증오비와 베트남민간인희생자 위령비, 그리고 학살에 살아남은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정에는 미군에게 집단 학살된 밀라이학살박물관 참관도 있었지만, 한국군에 학살된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다크투어에 참여한 30명의 일행은 푸옌성 붕따우 마을, 꽝아이성 빈호아사 마을, 꽝남성 하미 마을과 퐁니 마을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오지마을을 돌아다니며 한국군에게 억울하게 죽어간 베트남 영령들을 맞이했다. 학살대상은 어린 아이, 부녀자,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임신부와 1살도 채 안 된 영아도 포함돼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증오비에 통계표까지 그려 넣었다. 비석에는 또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고 새겨 넣었다.

일행을 더 부끄럽게 한 건 따로 있었다. 1980년대 한 영국인 작가가 학살지역을 조사해 430명의 망자 이름이 적힌 위령비를 사비로 세웠다. 같은 시기 독일인들은 이 마을 주민에게 의수와 의족을 달아주었다. 게다가 90년대 초 이곳을 찾은 한 일본인은 그곳에 초등학교까지 설립해 마을주민의 상처를 위무하고 있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평화활동가로 일하는 구수정 박사에 따르면 학살지역은 위에서 언급한 지역 외에 지금까지 80여 군데에 이르렀고, 약 9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한다. 일행은 헌화, 분향, 참배를 7일간 계속하며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평화기행 참가자 모두 여정 내내 믿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 앞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가운데에는 백마부대 참전 군인도 있었다.

기실 전쟁에 대해 개인의 책임은 없다. 승리자나 패배자나 참전자 모두가 희생자일 뿐이다. 고엽제 후유증, 외상 후 스트레스 등 참전군인 역시 수십 년째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숙제를 안고 귀국하는 날, 공교롭게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 가창골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대구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받았다. ‘골로 간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남한 내 학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가창골 학살은 아직까지 제대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묻혀있다. 그나마 진전된 사실은 지난해 사상 처음 김범일 대구시장이 조화를 보내 유족을 위로했고, 올해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조화와 조사를 함께 보냈다는 점이다.

권 시장은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한다. 시민들이 10월항쟁을 바르게 알고 어려움을 함께 나눌 때 불행했던 과거를 넘어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위령비와 역사관, 평화공원이 설립돼야 할 당위성을 권 시장이 제대로 설파한 것이다. ‘우리는 왜 남이 저지른 만행만 기억하는가’라고 한 이정연 시인의 시구가 섬뜩하게 와 닿는다.

박진관 주말섹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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