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요구는 배상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과거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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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8   |  발행일 2014-08-08 제36면   |  수정 2014-08-08
“우리의 요구는 배상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과거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푸옌성 뚜이호아시 언덕에 있는 위령탑에서 바라본 쏭바강. 쏭바강은 뚜이호아에서 베트남 동해와 만나는데,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베트남어로,‘쏭’은 강이고 ‘바’는 어머니다.
“우리의 요구는 배상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과거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1972년 베트남참전군인이었던 류진춘 경북대 명예교수(정면)와 응우옌 틴 꽝 전 푸옌성 당서기장이 뜨겁게 포옹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평화기행단은 푸옌성 박물관을 방문해 베트남참전군인과 함께 하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베트남 측에선 ‘응우옌 틴 꽝’ 전 푸옌성 당서기장 및 인민위원회 주석과 ‘응우옌 반 찐’ 전 푸옌성 당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다. 특히 꽝은 ‘아버지 꽝’이란 뜻으로 ‘박꽝’으로 불리며 푸옌성 시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평화기행단 측에선 1972년 백마부대 대원으로 참전했던 류진춘 경북대 명예교수 등이 참석했다.

박꽝 전 당서기장과 찐 상임위원은 베트남민족해방전선 유격대원(베트콩)으로 참전했다. 박꽝 전 당서기장은 목에 총상을 입은 상이군인이기도 하다. 처음엔 무거운 분위기 속에 대화가 시작됐으나 행사가 끝난 뒤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특히 충북대 국어교육과에 2년6개월간 유학한 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꽝 전 서기장의 딸이 참석해 의미가 깊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푸옌성에서는 약 3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의 요구는 배상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과거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응우옌 틴 꽝

△응우옌 틴 꽝=평화기행단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전쟁 때 한국군과 직접 싸웠습니다. 평화의 시기에 만나 반갑습니다. 저랑 악수 한번 할까요.(류진춘 교수가 박꽝과 악수를 한 뒤 뜨겁게 끌어안았다)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지났습니다만 그 상처가 큽니다. 하지만 베트남과 한국은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한국은 전략적 동맹관계입니다. 베트남은 현재 ‘과거를 닫고 미래를 향하자’는 슬로건으로 대내·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남겼던 모든 슬픈 유산을 극복해 갑시다.

“우리의 요구는 배상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과거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응우옌 반 찐

△류진춘=1972년 3월부터 73년 2월까지 백마부대 대원으로 참전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72년 말 딱 한 번 작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다시 생존자를 만나 증언을 들으면서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민간인학살과 전쟁후유증 치유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집에 호찌민 선생의 작은 흉상이 있습니다. 그의 전기도 읽었습니다.

△응우옌 반 찐=베트남의 슬로건, ‘과거를 닫는다’는 ‘전쟁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쟁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조국의 상처도 있지만 개인의 상처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한국군의 학살로 돌아가셨습니다. 아픈 과거를 들추는 것은 증오심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슬픔을 극복해야 합니다. (목소리와 손이 떨렸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여러분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한 분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과거의 한국인은 잔인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갔던 저의 전우가 한국 참전군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아군과 적군이 구별 안 되는 상황에서 민간인 학살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당당히 말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진정한 군인이 아닙니다. 참군인은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젖먹이 아기와 70~80세 노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인은 거짓군인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사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양국이 같이 걸어가기 위해 사과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증거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요구는 배상이나 사죄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실을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응우옌 틴 꽝=한국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참전군인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국립현충원에 가서 헌화와 참배를 할 수 있냐고 하기에 참배와 헌화를 했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5천명이 죽고 3만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물론 베트남의 피해가 더 큽니다. 푸옌성만 해도 1만4천여명이 전사하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베트남상이군경의 날’입니다. 여러분이 푸옌성에 와서 위령탑에 참배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쟁배상에 대한 질의

△응우옌 틴 꽝=베트남은 미국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실 조금은 받았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은 손을 잡은 지 얼마 안 됩니다. 외교관계에 따라 배상논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국 정부도 안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베트남과 분단한국에 대한 질의

△응우옌 틴 꽝=베트남은 동족끼리 싸웠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의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는 것도 사실 동족끼리 과거를 묻지 말자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됐습니다. 북한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임진강에 가서 북한을 바라보았고, 판문점 북쪽에서 남한을 바라보기도 한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사진=베트남에서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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