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끝나지 않는 공포, 전염병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08-12 07:47  |  수정 2014-08-12 07:47  |  발행일 2014-08-12 제22면
[문화산책] 끝나지 않는 공포, 전염병

398년 전인 1616년 오늘(음력 7월16일), 예안에 사는 김택룡은 지역에서 발생한 돌림병 소식을 듣는다. 친척 정희생의 집에도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 정희생이 갑자기 김택룡의 집에 뛰어들어 발광을 하며 난동을 부렸다. 전염병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하면서 상대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사람들의 외면으로 약도 구할 수 없어 치료조차 힘드니,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김택룡은 더욱 처참한 소식을 듣는다. 정희생의 어머니가 밤나무에 목매어 자살한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아들에게 피해를 덜 주고 싶은 모성애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김택룡은 슬픔을 가눌 길 없었지만, 한편으로 이 일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창졸지간에 어머니를 잃은 정희생이 다시 광란을 일으킬 것은 자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는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김택룡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비상대책 회의를 거쳐, 우선 정희생을 묶어 꼼짝 못하게 한 후 모친의 시신을 염하고 입관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다행히 정희생도 큰 광란을 일으키지 않아 순조롭게 장례 절차는 진행됐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염병은 전쟁보다 더 무서웠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수많은 사람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전전긍긍해야 했다.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하면 인정도 동정심도 뒷전일 수밖에 없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치거나 병이 옮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택룡이 친척임에도 불구하고 정희생에게 작은 도움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이유이다.

398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은 또 하나의 전염병으로 인해 떨고 있다. 예방약도 없고 치사율이 90%나 되며, 현재 희생자만 해도 1천여 명에 달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국제적인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아프리카로의 여행이 금지되고, 아프리카 사람들의 다른 나라 여행도 제한을 받고 있다. 비약적인 의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곧 백신과 치료제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겪고 있을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인류 사회의 이해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정희생 어머니의 선택이 지금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 사람들의 선택이 되지 않도록 막는 인류의 성숙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상호<한국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센터 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