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더 기버:기억전달자·매직 인 더 문라이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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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2   |  발행일 2014-08-22 제42면   |  수정 2014-08-22

더 기버:기억전달자 (장르: SF 등급: 12세 관람가)
모두가 행복해한다는 그 곳…자유가 제거돼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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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상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더 기버: 기억전달자’(이하 더 기버)는 모든 것이 완벽해서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커뮤니티 시스템을 다룬다. 개인의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만큼 ‘커뮤니티’ 내에선 모두가 공평하다. 정확한 언어 사용, 배정된 의복 착용, 약물 투여, 통금시간 엄수, 거짓말 금지 등 나름의 규칙만 준수한다면 전쟁, 차별, 가난, 고통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16세 조너스(브렌튼 스웨이츠) 역시 그렇게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동등한 삶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따금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이긴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커뮤니티에서 굳이 알릴 이유도 없다. 이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대신 규칙은 철저히 따라야 한다. 그 일환으로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직위수여식에 참석해 원로들로부터 평생의 직업을 부여 받는다. 이를 통해 조너스의 친구들인 피오나(오데야 러시)와 애셔(카메론 모나한)는 각각 보육사와 무인정찰기 조종사라는 직업이 부여됐다. 그리고 조너스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단 한 사람을 의미하는 ‘기억보유자’로 지명된다. 그는 ‘기억전달자’(제프 브리지스)와의 훈련을 통해 사물의 색깔과 진짜 모습, 그리고 기억과 감정 등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영화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흑백화면으로 처리한다.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서 감정까지 통제 받고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단조롭고 획일화된 세계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면, 기억보유자는 예외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며, 어떤 질문도 가능하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 나름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던 커뮤니티에 분명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불씨다.

기억을 전달받은 조너스는 빨간색부터 시작해 차츰 색깔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색깔이 보인다는 건 잊혔던 감성과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다. 흑백에 대비되는 색깔의 존재가 드러나는 이 과정은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조너스와 ‘인간은 자유를 주면 늘 잘못된 선택을 한다’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통제해왔던 커뮤니티 유지 세력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분명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선택과 개성의 자율성을 제거한 사회의 모습에서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만드는 사유까지 담겼으니 말이다. 이는 감정이나 각 개인의 개성이 배제된 단일화된 사회, 인간성의 회복, 더 나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해야 할 가치 있는 사명과 철학을 역설적으로 일깨운다. 결국 지배계급에 의해 “모두가 행복하라”는 명령 아래 탄생된 신세계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지칭하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원작자 로이스 로리가 “모든 것이 영화에 담겼다. 내 책을 좋아했다면 분명 영화도 좋아할 것”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낼 만하다.

‘더 기버’는 로이스 로리의 세계적인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미국에선 필독서로 꼽히지만 영화화에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원작이 담고 있는 심오한 주제의식을 옮기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던 탓이다. 뛰어난 각색은 원작 그 자체를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지닌 정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면, ‘더 기버’는 탄탄한 원작의 이야기 안에 상업코드까지 적절히 녹여냈다.

화려한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영화의 제작자이자 배우로 참여한 제프 브리지스와 메릴 스트립, 그리고 브렌튼 스웨이츠와 오데야 러시 등 신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만족스러운 편. 다만, 관객의 또 다른 기대감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출연 비중이 작은 건 다소 아쉽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장르: 로맨스 등급: 12세 관람가)
우디 앨런이 그린 마술사와 심령술사의 마법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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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시선이 다시 한번 1920년대 프랑스로 향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2011)를 통해 이미 한 차례 낭만적인 시간 여행을 경험한 바 있지만,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는 듯 이번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남부 프랑스의 빼어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마술사와 심령술사의 로맨스라는 흥미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때는 1928년. 영국인 스탠리(콜린 퍼스)는 중국 마술사 웨이링수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마술계의 스타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동료 마술사 하워드(사이먼 맥버니)로부터 한 여자 심령술사의 실체를 밝혀줄 것을 부탁받는다. 산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읽어 내고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는 신기한 능력을 지닌 미녀 심령술사 소피(엠마 스톤)다.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남부 카트리지 가문의 상속자 브라이스(해미쉬 링클레이터)는 이미 그녀에게 프러포즈까지 한 상황.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믿지 않는 스탠리는 “사기도 예쁠수록 잘 먹힌다”며 소피가 사기꾼임을 입증하기 위해 그녀가 머물고 있는 남부 프랑스로 향한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마법과 환상을 자신의 주요한 영화적 테마로 삼아왔던 우디 앨런이 직접적으로 마술과 심령술을 다룬 영화다.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로맨틱한 감정을 느낀다는 건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정말 특별한 마법”이라고 생각한 그는 “사랑만이 모두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희망이자 마법”이라고 말해왔다. 이는 좀처럼 과거로 돌아가지 않던 그가 다시 1920년대 유럽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우디 앨런에게 당시 유럽은 시름을 잊고 판타지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마술과 심령술이 유행했던 1920년대는 마법과 환상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무대이긴 하다. 극 중 심령술사 소피가 주문을 통해 영혼을 불러내는 교령회가 실제로도 많이 행해졌고, 스탠리의 또 다른 실제 모델이자 그 시대 위대한 마술사였던 해리 후디니는 교령회에 참석해 가짜 심령술사를 잡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당시 사회상을 고발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마법에 더욱 흥미롭게 접근하기 위해 과거의 초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분위기를 끌어와 이야기의 입체감을 살리려는 의도가 짙다.

냉철한 이성주의자 마법사 스탠리와 따스한 감성을 지닌 심령술사 소피의 만남은 그 점에서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경 변화를 일으키는 스탠리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약혼녀가 있지만 사랑 따위의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까칠남의 전형인 그가 신통한 그녀의 능력을 직접 확인하고는 “마법보다 더 신비로운 인생을 당신이 보여주었다”며 홀딱 빠져든 모습이라니. 그 감정은 그녀가 사기꾼임이 밝혀진 후에도 변함없다.

영화는 1920년대 남부 프랑스의 눈부신 풍광이 시종 매혹적으로 펼쳐진다. 마치 그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 완벽하게 세팅된 의상과 소품들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며 예술적인 혼까지 담겨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음악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재즈 마니아로 잘 알려진 우디 앨런은 재즈음악의 황금기였던 당시의 대표곡들을 선정해 영화의 풍미를 더한다. 덕분에 고전적이지만 대담하고 화려했던 1920년대 낭만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스탠리와 소피의 아슬아슬한 만남이 더욱 마법처럼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소피 역을 맡은 엠마 스톤은 스칼렛 요한슨(스쿠프, 매치 포인트), 케이트 블란쳇(블루 재스민)에 이어 우디 앨런의 새로운 뮤즈가 됐다. 우디 앨런 특유의 유머러스한 대사와 사랑스러운 표정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내 기대에 부응한 그녀는 그의 차기작에도 캐스팅된 상태다. 마법 같은 사랑의 시작을 새롭게 마주하고 싶다면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후회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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