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9) 방천시장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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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6   |  발행일 2014-08-26 제8면   |  수정 2014-08-26
20140826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시끌벅적한 그 시장에서/사람들 구경도 하고 내가 좋아하던 떡볶이도 먹던/그 시절 그때가 가끔씩 생각나/그 시절 그때가 가끔씩 그리워질 때면 난 뚜벅뚜벅 가네. 그곳으로/…변하지 않는 것들이 그리워질 때면, 변해버린 것들이 아쉬워지면 그곳으로/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돌아올 수 없는 마음이/모든 게 변해가네. (방천시장 컴필레이션 음반 중 건훈씨 ‘그곳에서’)

 

쇠퇴한 전통시장에 예술을 접목시킨다는 파격적인 발상과, 상인과 예술인들의 윈윈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던 문전성시 사업은 방천시장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죽어가던 상권이 살아났고, 우범지대였던 주변 거리도 생기를 얻었다. 김광석 추모객이 몰려들고 예술인들은 공연을 위한 공간과 관객을 얻었다. 시장은 이제, 누군가의 말처럼 ‘쓰레기더미에서 건져 올린 보석’이 된 것이다.


번개전파사 아들 김광석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이곳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고

 

가방 팔던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온
어린 양준혁에게 방천시장은
마음놓고 뛰놀던 놀이터였다

 

도시화 물결 속에 쇠락해갔지만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며
시장과 예술은 상생의 꿈을 꾸었다

 

기울어진 시장을 바로 세우는 꿈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쓰레기더미에서 건져올린 보석

방천시장은 신천변을 따라 자리잡은 천막 점포들이 쌀과 소금, 식재료 등을 팔던 도소매 시장이었다. 한때 1천여개의 점포가 두부공장, 콩나물공장 등과 함께 문전성시를 이루며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이곳에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아침마다 신문을 팔았고, 번개전파사 아들 김광석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가방 장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온 양준혁에게 방천시장은 마음놓고 뛰놀던 재미있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 달구벌대로와 신천대로가 뚫리고 도심 아파트가 잇따라 개발되면서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하나의 섬처럼 고립되었고 60여개의 점포가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가던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로 시작한 1차 사업과 뒤를 이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전통시장을 지역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문전성시’ 2차 사업 덕분이다. 이 사업을 통해 시장 안 비어있던 가게에 지역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었고 ‘시장’과 ‘예술’은 상생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후 회화, 국악, 목공예, 금속공예, 조각,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빈 점포를 전시장으로, 작업실로 꾸민 20여명의 예술가는 기존 상인과 손을 잡고 콘크리트 벽면을 예술작품으로 바꾸었다.

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속닥속닥 수다방, 아트스페이스 방천, 리뉴얼 도미노 상점, 방천시장 사진전, 예비작가 아카데미, 방천신문, 방천 라디오 스타 등 유·무형의 문화상품을 개발하면서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작업실을 체험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상인들이 찍은 대형사진이 걸리고, 미니 카페와 쉼터 등도 갖춰지면서 시장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창출됐다.


◆ 자본의 논리, 예술의 논리를 뛰어넘어

퇴락해가는 시장에서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과제를 이뤄냈지만, 방천시장의 남은 숙제는 적지 않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만들었던 ‘김광석 길’이 전국적인 명소가 되고 카페나 슈퍼 등 주변 상권도 살아났지만, 방천시장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중구 대봉동 일대의 상권은 살아났지만 정작 처음 의도한 전통시장은 그만큼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빈 창고를 마음대로 쓰라던 건물주들은 이제 예술인이 재계약을 하려 하면 임차료를 올려 받으려 하거나 나가라고 한다. 예산 지원이 끊기면서 시장과 연계할 만한 작업이 없어 시장을 나간 예술인도 많다.

시장에 입주했던 예술가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2009년 예술가 상인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입주했던 예술가 20여명 중 지금 남아있는 이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치솟은 임차료 때문에 예술가들은 시장을 떠났고, 그 자리에는 술집과 고깃집이 들어섰다.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이정호 경북대 교수는 이를 두고 ‘절반의 성공’이라 평했다.

“시장 살리기라는 취지는 여전히 달성하지 못한 목표로 남았지만, 활성화의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이 교수는 “도시화로 생긴 방치된 시장에 새롭고 특색있는 지역 명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장소성’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인디053 이창원 대표는 방천시장의 또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

“방천시장과 김광석 길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이 대표는 방천시장과 대봉동이라는 큰 틀에서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고민 중이다. 그 첫 번째 시도로 민·관 공동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운영위원회’를 설립했다.

“하루 10명도 다니지 않던 시장에 주말이면 5천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그는 김광석을 뛰어넘는 아티스트를 이곳 방천시장에서 배출해 내는 것이 꿈이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브랜드사업을 통해 관련 상품을 개발하고, 수익을 창출할 예정이다. 김광석 거리에 아카이브 센터를 구축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 예술의 논리를 뛰어넘어 시장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인디053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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