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패러다임의 전환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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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8   |  발행일 2014-08-28 제25면   |  수정 2014-08-28
[기고] 패러다임의 전환과 교육

청소년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쓴 숀 코비가 ‘패러다임의 전환’ 사례로 소개한 일화이다. 한 여성이 공항대기실 테이블에서 신문을 보면서 쿠키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테이블의 남성이 봉지 속의 쿠키를 태연히 집어서 먹었다. 즉각적인 반응을 참으며 그녀는 보란 듯이 쿠키를 집어갔지만, 그 남자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지막 쿠키를 반쪽으로 쪼갠 후 한 쪽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고 나머지는 먹으면서 자리를 떴다. 더없이 황당한 기분을 안고 탑승 수속을 위해 그녀가 손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에 자신의 쿠키 봉지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이 일화는 극적인 인식의 전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기보다는 감동 요소를 내포한 착각, 곧 잘못된 인식에서 참된 인식으로의 전환 사례이다.

40여 년 전 토마스 쿤이 지금은 일상에서 통용되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어 놓음으로써 20세기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객관적 이론이 세상을 규정해 나가던 시대에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주관적 선택과 취향, 유행을 따르는 판단준거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쿤이 이 개념을 착상하게 된 과정은 그 개념 자체만큼이나 전환적이다.

2차 대전 후 하버드대에서 자연과학 교재 편집 일을 맡은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 읽어도 탁월한데 왜 물리학에서는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고수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쿤은 자기 스스로 ‘맞다/틀리다’의 준거에 갇혀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이 의문을 풀 수 없음을 한 순간 깨닫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근대물리학과 사고방식이 ‘달랐음’을 개종의 수준에서 통찰을 하고는 패러다임 개념을 정립하였다. 근대물리학의 사고 틀을 버리고 과거의 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더할 수 없이 합리적임을 체감하였던 것이다.

쿤의 이 전환적 경험은 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그동안의 교육은 너무 ‘맞다/틀리다’에 매몰되어 왔다. 경쟁이 심할수록, 서열을 매겨야 할수록 교육은 ‘맞다/틀리다’를 중심으로 진행되게 된다. 그럴수록 사고는 경직되고 편협해지며 단절적이 된다. 지식중심, 암기위주의 교수학습이 이루어지게 될 소지가 많다. 학교공부가 재미없고 힘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 대안은 ‘다름’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상을 ‘다름’의 관점에서 인식하면 자연히 결과보다는 과정을 살피게 되고 탐구로 나아가게 되며 공부에서 보람과 재미를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창의성이 화두가 되고 있는 정보시대에는 의례적인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적 요구이다. 창의성은 문제를 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구성하는 데 있다. 전자에는 ‘맞다/틀리다’가 관건이지만 후자에는 차이에 대한 인식이 관건이다.

이런 논의를 하다보면, 자연과학 교과에서는 여전히 ‘맞다/틀리다’가 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하고 반문하게 된다. ‘21세기의 토마스 쿤’이라는 평을 받은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물은 100℃에서 끓는다’는 명제적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합의된 과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투적인 관념과 습관이 일상의 과학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정과 다름을 봄으로써 토마스 쿤이 경험한 ‘아하!’ 체험을 학생들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 이상이 아닌가 한다.
신재영 <위덕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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