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상주 화북면 상오리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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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9   |  발행일 2014-08-29 제38면   |  수정 2014-08-29
솔숲의 보랏빛 물결…저높이 구름도 멈춰 구경하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상주 화북면 상오리
상오리의 맥문동 솔숲. 맥문동 꽃은 9월 초까지 핀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상주 화북면 상오리
상오리 장각동의 장각폭포. 높이는 6m, 폭포 아래 소가 깊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상주 화북면 상오리
상오리 칠층석탑. 보물 제6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숲은 액체다. 숲으로 들어가면, 물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잠긴다. 그리고 물속의 물고기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폐는 커지고 뺨은 건강해진다. 모두의 얼굴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이 조각된다. 구름은 나무의 가장 먼 이파리 뒤에 숨어서 자리를 옮겨가며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오리 맥문동 솔숲

상오리는 상주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충북 보은과, 동쪽으로는 문경과 접한다. 속리산의 주봉인 천황봉이 상오리에 있고, 마을의 절반 이상이 국립공원이다. 상오1리 표석 맞은편에 너른 솔숲이 자리한다. 상오리를 남북으로 지나는 49번 국도가 솔숲의 한쪽을 베어 물고 가는데, 그 모습이 영천 화북면 자천리의 오리장림과 비슷하다. 솔숲의 내력은 알 수 없다. 속리산의 힘인지, 마을을 비호하려 했던 사람들의 힘인지.


소나무들은 수령이 200년에서 3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아름드리 거송들은 넘실넘실 쑥쑥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나무들 간의 간격이 큰데도 하늘은 적다. 쩍쩍 갈라진 표피는 목탄 같기도 하고, 코르크 같기도 하고, 역청탄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옥빛의 보석 같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인위적인 상처들이 발견되는데, 일제시대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라 한다.



지금 솔숲의 눈 아래에는 보랏빛 맥문동 꽃이 부드러운 물결처럼 펼쳐져 있다. 2012년 경관작물로 심어 매해 여름 환상의 자태로 나타난다. 솔잎 사이로 내려온 빛은 화강석처럼 흰 바위에 가장 강하게 밀착하지만, 맥문동 꽃잎들은 하나하나가 빛을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쏟아낸다. 보랏빛의 달콤한 공기가 신선한 흙내와 청량한 솔 향과 뒤섞여 은은하게 퍼진다. 저절로 깊이 호흡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장각폭포와 금란정

솔숲의 맞은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상오리의 골짜기 마을 장각동이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시작된 계류가 이곳에서 절벽을 타고 떨어진다. 장각폭포다. 높이는 6m, 그리 높지는 않지만 물줄기는 시원스럽게 거세고, 그 아래 소는 아주 깊다. 소의 둘레는 둥근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얕고 투명하기 그지없으니, 소는 우물처럼 위험하다. 폭포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자리한다. 폭포와 정자가 하나가 되어 소박한 선경을 만든다. 여기서 영화 ‘낭만자객’과 사극 ‘무인시대’ ‘태양인 이제마’가 촬영되었다.



정자는 ‘금란정(金蘭亭)’이다. 금란은 ‘쇠보다 견고하고, 난초보다 향기롭다’는 뜻이다. ‘역경’에 나오는 말로 두터운 우정을 이른다. 이곳에서 금란의 우의를 다졌던 분들은 1900년대 상오리 위, 아랫마을에 살았던 12분이다. 정자 옆 기념비에 금란정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대추나무를 깎아 여섯 개 기둥을 세우고, 잣나무를 다듬어 대들보를 올렸으며, 소나무 서까래를 걸쳐 흙으로 빚어 가마에서 구워낸 옛적 기와를 이고 송판으로 마루를 깔아 넓이가 두어 칸으로 1962년 봄에 준공하였다.’



폭포 위에 그물이 쳐져있다. 물가에는 한 아저씨가 양산을 친 테이블에 확성기를 놓고 금란정의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신다. “아들이 자꾸 뛰어내려서요. 밤새도록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보기는 안 좋아도 한철이요. 이제 좀 선선해지면 걷어야죠.” 피서를 온 한 떼의 아이들, 저 불타는 청춘과 아저씨 사이에 즐거운 긴장이 오고간다.



◆상오리 칠층석탑

장각폭포에서 더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간다. 심심골짝에 밭도 있고 집들도 있다. 그러다 ‘신선마을’이라는 표석을 지나 비바람에 물러버린 작은 옥수수 밭이 나오면 오른쪽 하늘을 봐야 한다. 높다란 계단이 하늘을 오르고 그 위에 탑이 하나 서 있다. 상오리 칠층석탑이다.



계단을 오르면 손바닥만 한 깨밭과 수수밭 사이로 일직선 길이 짧게 이어지고 그 선상에 탑이 서있다. 이곳에 고려시대에 창건한 장각사 혹은 비천사라는 사찰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 불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실증할 수 있는 자료는 없고, 다만 법당 자리로 추측되는 6개의 주초석과 고려 초기 양식의 탑이 남아 있다. 탑은 일제시대 일본 헌병이 도굴을 위해 낭인을 동원하여 허물었다고 한다. 1975년에는 김천 직지사에서 가져가려고 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했고, 77년에 상주시가 정교하게 복원했다. 탑신의 동쪽에 문이 하나 새겨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 지극히 수수한 모습이지만 당당하고 장중한 느낌이 있다. 상오리의 칠층탑은 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간다. 김천 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선산, 상주 방향으로 가다가 낙동 분기점에서 30번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탄다. 화서IC에 내려 49번 도로로 속리산 문장대 방향으로 가면 된다. 솔숲과 장각폭포 옆에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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