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發 프랜차이즈 ‘행복한 찌짐포차, 전국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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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9   |  발행일 2014-08-29 제41면   |  수정 2014-08-29
모둠전 시켰더니 14가지 찌짐 ‘전·후반전’ 나뉘어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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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 14종의 찌짐을 최대로 식감이 좋을 때 먹도록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 내놓고 있다. 현재 42호 가맹점을 내고 있는 전국지는 대구에 본사가 있고 찌짐을 갖고 프랜차이즈사업을 벌인 전국 1호 브랜드이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음식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음식을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게 식당정신에 영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생각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 싶다. 프랜차이즈만이 갖고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위생과 친절, 그리고 푸드스토리텔링 콘텐츠이다.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가맹점에 실시간으로 재료를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메뉴 표준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또한 프랜차이즈 홀서버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다수 친절함이 몸에 스며 있다. 또한 간판과 실내인테리어 감각도 여느 식당보다 더 펀하고 심플하다. 맛은 다들 한 맛을 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듯싶다. 시쳇말로 ‘이 집 음식 맛이 죽인다’고 해도 그게 상당수 양념, 조미료, 향신료, 소스의 조작된 맛이라는 걸 일반인은 잘 분별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맛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게 아니다. 맛 세포인 미뢰(Taste bud)에 의존한다. 조미료를 절대 넣지 않고 맹물로 국을 끓이면서 재료는 최고급을 사용해도 요즘 젊은이는 ‘헐, 이게 무슨 맛’이라면서 수저를 놓고 만다. 맞벌이 엄마가 착한표 식재료로 요리할 틈이 없어 패스트푸드로 아이의 입을 초토화시켜 놓았으니 당연히 그 아이도 자극적이고 풍미가 짙은 걸 좋아할 수밖에 없다.


◆ 행복한 찌짐포차…전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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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에서 취급하는 전국 유명 막걸리.

최근 흥미롭게 지켜본 한 대구발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

바로 ‘행복한 찌짐포차’란 제목을 단 ‘전국지(煎國地)’다. ‘전국지(戰國地)’를 패러디한 것이다. 한마디로 별의별 찌짐(부침개)을 갖고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한 것이다. 이게 잘 되자 전총무가 쏜다, 전선생 등도 힘을 받고 있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통신골목 초입에 있는 전국지 동성로 본점을 찾았다.

식탁에 앉자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다. 수저통 뚜껑 위에 ‘사장나와’란 카피의 안내 스티커였다. 음식을 먹다가 불만스러운 게 있으면 직접 사장 카카오톡으로 불만 사항, 가맹점과 테이블 번호를 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일명 ‘초고속 서비스’ 아이템이다.


‘30세 총각’ 정연곤 대표
전국 엄선 20여종 막걸리
별의별 찌짐안주로 승부
할인가격 테이크아웃도


별의별 찌짐에 별의별 막걸리도 집결시켰다. 현재 전국 막걸리 브랜드는 무려 1천여개. 양조장은 800여개. 팔도에서 엄선된 20여종의 막걸리를 골라냈다. 벽에 대한민국 전통주 지도를 벽화로 그려놓았다. 울산시 울주군 복순도가의 수제 샴페인 ‘손 막걸리’, 전남 함평의 전통주 명인 백록담씨가 만든 ‘자희향탁주’, 충북 옥천의 양반이 먹던 ‘고택찹쌀생주’, 서울 느린마을양조장에서 만든 ‘느린막걸리’,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노무현 대통령이 즐겼던 충북 소백산 ‘대강막걸리’, 전남 고흥의 ‘유자막걸리’, 충남 공주의 ‘알밤막걸리’, 강원도 원주의 ‘옥수수막걸리’, 충북 논산의 딸기로 만든 ‘딸구막걸리’, 제주도 ‘한라봉막걸리’, 조선 3대 명주인 ‘죽력고’, ‘안동소주’, 전북 대표명주인 ‘이강주’, 경기도 대표 ‘문배주’ 등이다.


◆ 30세의 솔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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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발 모둠 찌짐의 신기원을 펼쳐나가고 있는 정연곤 전국지 사장. 전국지는 예전 찌짐집을 퓨전식으로 리모델링했으며 전국 유명 막걸리와 기발한 찌짐을 결합해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42호 가맹점을 낸 전국지 대표는 30세의 정연곤씨.

그는 20대 초반부터 인생의 단맛 쓴맛을 골고루 맛봤다. 대학 초입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생업전선으로 떠밀려 나왔다. 인생 초입에서 강력한 먹구름을 만난다. 3세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생활 기반을 잃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대학생활을 해보기도 전에 어머니가 2008년 그가 24세 때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22세에 덜컥 가장이 됐고 여동생도 대학생이었다. 고교 때는 원없이 놀았다. 대학은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군대에 가서 철이 든다. 더 폼나게 놀기 위해선 대학은 필수란 결론을 내린다. 경북대 사대교육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돈을 벌지 않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 여동생과 자신의 등록금과 아버지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한다. 일단 대학은 접고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경북대 북문 앞에서 ‘고니’라는 주먹밥 전문 분식집을 열었다. 22세 때 알바를 했던 호프집 사장이 메뉴를 짜주었다. 2009년 그 사장과 동업을 한다. 2년간 나름 열심히 했고 돈도 들어온 것 같은데 정산해 보면 적자였다. 그는 경영학에 대한 기본기가 없어 원가분석에 실패했다.

물러설 처지가 아니었다. 차도 팔고 달서구 용산동의 아파트도 팔았다. 가족이 모두 자기만 쳐다봤다. 동성로 상권을 분석하다가 통신골목 초입에 8개월간 놀고 있는 점포를 잡아 ‘쿡스(KUKS)’란 별의별 국수 전문점을 낸다. 2011년이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일본 나가사키 짬뽕, 베트남 쌀국수, 이탈리아 파스타 등 세계 면요리를 총출동시켰다. 영남대 식품공학과를 다니고 있는 여동생도 메뉴개발에 투입시켰다.

“다들 맥주를 내밀 때 저는 좀 독특하게 막걸리를 잡았습니다. 막걸리 붐을 역이용한 거죠. 막걸리는 영어로 ‘Rice wine’이잖아요. 그래서 와인잔에 막걸리를 부어주었습니다.”

그때 3개국 전 요리를 모둠 스타일로 내놓았다. 이탈리아 피자,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한국의 찌짐이었다. 이걸 삼국지를 패러디해서 ‘전국지’라 했다.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단골들은 이구동성으로 전반적으로 ‘찌짐보다 막걸리가 좋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1억원 이상 빚을 진 상태에 맹목적으로 한탕할 작정으로 쿡스를 열었는데 역시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빠른 시간 내에 사람들을 많이 끌고 오기 위해 소셜 커머스, 푸드 블로거 등을 동원했다. 처음엔 사람이 몰렸다. 하지만 소문처럼 맛이 없자 다시 재방문하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스스로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꼴’이라고 자탄했다.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 찌짐에 빙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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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각종 식재료를 사용해 안주 같으면서도 한 끼 반찬 같은 느낌이 드는 푸짐하면서도 오밀조밀한 푸드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전국지 한상 차림.

‘명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의 심정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쿡스에서의 교훈을 거름삼아 다시 도전을 했다. 반응 좋은 전국 팔도 막걸리, 그리고 찌짐을 갖고 재도전했다. 2011년 12월 현재 본점 자리에서 행복한 찌짐포차 전국지를 론칭했다. 일단 막걸리는 괜찮은데 찌짐만은 절정의 맛을 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는다. 서점으로 가서 국내에 나온 찌짐 관련 서적을 싹 사들고 와서 분석에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전국에선 처음으로 막걸리와 찌짐 전문 프랜차이즈를 탄생시킨다.

그는 온갖 식재료를 갖고 찌짐을 만들었다. 온도가 맞지 않아 식용유 양을 조절하지 못해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는다. 새로운 찌짐이 생기면 즉시 메뉴판을 바꿨다. 수십번 메뉴판이 업그레이드된다. 온도가 높으면 튀김처럼 너무 파삭거리고 온도가 낮으면 눅눅하게 흘러내렸다. 절묘한 포인트는 쉬 터득되지 못했다.

그가 만든 메뉴판을 읽어보았다. 웃음이 난다. 그 어떤 메뉴판보다 이야기가 풍부했다.

일단 여느 술집에선 약한 ‘밥거리’를 보강했다.여기에 오는 손님 대다수가 여성이다. 술을 먹기 전에 저녁을 먹고 싶어한다. 그런데 밥을 제대로 챙겨주는 술집이 별로 없다. 여기선 술과 밥을 동시에 충족시켜주었다. 안주 같은 밥을 추구했다. 2차 술집이 아니고 ‘1.5차 술집’으로 각인시켰다. 이 와중에 오후 7시 전까지만 주문 가능한 6천800원짜리 ‘전찌밥’이 탄생한다. 전과 김치찌개, 공기밥을 섞은 것이다. 전은 5종(쇠고기육전, 동태전, 애호박전, 두부전, 소시지전)이다.

대한민국 모둠전은 14가지 전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 낸다. 한꺼번에 나오면 나중에 먹는 전은 식어버려 맛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반전에는 쇠고기전, 육전, 전병, 부추전, 애호박전, 새송이버섯전, 감자전, 후반전에는 녹두빈대떡, 동태전, 오미산전, 두부전, 호박전, 완자전, 고추전이 나온다. 이 밖에 깻잎완자전과 동태전을 합친 ‘깨동전’, 샐러드 버전을 가미한 ‘육전샐러드’ 등이 개발됐다. 또한 예전 명절 뒤 남은 음식으로 해먹는 ‘거지탕’ 비슷한 ‘전찌개’도 개발했다. 심지어 주꾸미, 참치, 떡갈비, 떡볶이, 볶음밥 등과 매치시켰다.

패스트푸드점처럼 전도 10% 할인된 가격에 테이크아웃으로도 팔고 있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뼈있는 말을 전했다. 모든 예비 창업자가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월급은 제가 주는 게 아니고 손님이 주는 겁니다. 결국 식당이란 푸짐하고 맛있고 청결하고 깨끗한 음식을 머리 숙여 친절하게 대접하는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청결하고 머리는 숙일 줄 알았는데 푸짐하고 맛있게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균형을 잡은 것 같고 그래서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춘호 기자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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