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의 비상! 경북도청 이전 풀 스토리 .6] 멀어지는 도청이전 논의

  • 심충택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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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17   |  발행일 2014-09-17 제10면   |  수정 2014-10-17
첫 민선 이의근 경북도지사 “도민이 갈등에 빠져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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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첫 민선단체장으로 당선된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96년 7월1일 도청강당에서 열린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도지사는 도청이전문제와 관련해 “재임중 도청이전이라는 업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도민들에게 갈등을 가져오거나 혼란을 자초하는 누를 범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영남일보 DB>

제4대 경북도의회가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95년 5월11일 도청이전 후보지로 6개지역(영천 북안, 경주 천북, 포항 기계, 구미 해평, 의성 단북, 안동 풍산)을 선정해 경북도에 통보함으로써, 도청이전 과제는 집행부 손에 넘겨졌다.

그해 6월27일에는 광역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제1회 4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이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인 지방자치제도가 외형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첫 민선 경북도지사는 대통령 행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의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관선 경북도지사를 역임했던 이 도지사는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도청이전이라는 현안에 직면해야 했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지방선거 직후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는 사고를 겪게 된다. 선거 이틀후인 6월29일 멀쩡했던 서울 강남의 최고급 백화점(삼풍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고객과 종업원 1천500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사상 유례없는 참사였다.

설상가상 한 해전부터 계속되어 온 가뭄으로 농민들의 가슴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당선의 축배를 들 새도 없이 가뭄현장을 방문하면서 업무를 시작한 이 도지사는 도정의 초점을 민생안정에 맞췄다. 도청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긴 했지만 도청이전 문제는 자연적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1.경북도의회 개원하자마자 도청이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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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30일 ‘경북북부지역 도청유치 주민연합’이 안동역 광장에서 도청이전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가진 후 영남일보에 실은 광고. 궐기대회에는 안동을 비롯해 경북 북부지역 주민 1만5천여명이 참가했으며, 그 중 30여명은 삭발을 하기도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제5대 경북도의회는 7월14일 개원하자마자 도청이전문제를 거론했다.

8월14일 개원 후 처음으로 열린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재선에 성공한 포항 기업인 출신 이동대 의원은 “우리는 언제까지 연간 1조7천억원이라는 값비싼 임차료를 지불하면서 대구에 셋방살이를 해야 하나”라며 집행부를 향해 도청이전을 촉구하는 포문(砲門)을 열었다. 이 의원은 “도청이전 논의는 더 이상 지연돼선 안된다. 정치권의 입김으로 도청이전 문제가 지연되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도지사는 도청이전추진 의지와 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이 도지사는 “도청이전 문제 때문에 300만 도민이 갈등속에 빠지거나, 또는 결정된 것에 대해 수용을 하지 않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 가장 염려스럽다. 임기중에 반드시 입지선정을 해야된다고는 생각하지만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적어도 어느 한 지역이 선정되면 대다수 도민들이 공감을 하고 또 선정되지 않은 지역도 수용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된다. 후보지를 선정했는데 다른 지역이 수용을 하지 않고 데모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도내에 벌어지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이 도지사는 “저도 300만 도민의 지지에 의해서 당선된 민선 도지사이기 때문에 재임중에 도청이전이라는 업적을 한번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 그러나 개인 욕심을 앞세워 우리 도민에게 갈등을 가져오거나 혼란을 자초하는 그런 누를 범하지는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도청이전을 전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도의회 도정질의에 우려의 답변
“공감하고 수용하는 분위기 필요”
밀어붙이기식 전격 추진 부정적

유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웠지만
시·도 통합 문제 불거져 새 국면


#2.도청유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져

그러나 도청이전에 대한 경북도민들의 열망은 식지 않고 있었다.

1996년 3월30일 ‘경북북부지역 도청유치 주민연합’이 안동역 광장에서 도청이전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안동을 비롯한 북부지역 주민들은 상가를 철시할 정도로 단결된 힘을 보였다. 집회에는 1만5천여명이 참가했으며, 그 중 30여명은 삭발을 하기도 했다.

도청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이처럼 거세지자 5월21일에는 같은 숙제를 안고 있는 경북과 전남, 충남 3개 광역단체장이 회동을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이날 회동은 ‘각 지방정부마다 사정이 다르고 획일적으로 같은 대안을 마련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이 도지사는 이날 모임과 관련해 경북도의회에서 “허경만 전남도지사와 심대평 충남도지사,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전남도지사의 제안으로 대전에서 만났는데 모두 도청이전 문제로 고민이 대단했다. 전남도지사의 경우에는 ‘광주에서 도청을 전남으로 옮겨야 되겠는데 무안으로 정해 놓고 지금 2년동안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도청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광주시와 통합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서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도청이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해 9월24일에는 안동사회문제연구소가 도청이전과 관련해 경북도지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경북도가 도청이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후보지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라는 취지의 고발이었다. 이에대해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혐의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안동사회문제연구소는 같은 해 11월7일에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도청이전의 법적행위자인 경북도지사가 정당한 사유없이 그 직무에 대한 부작위를 하고 있음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지방자치법 제6조 제1항에 근거하여 도청이전에 대한 의무이행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청구각하’라는 행정심판이 내려졌다.

1997년과 98년을 거치면서 비교적 잠잠했던 도청이전 논의는 제16대 총선(2000년 4월3일)을 앞둔 99년 들어 정치권에서 다시 이슈로 등장했다. 99년 7월2일 북부지역 도청유치 주민연합에서 유인물 2만부를 각 언론사와 시민에게 배포하고, 안동사랑운동본부에서는 도청이전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청와대를 비롯해 각계에 보냈다. 포항지역 발전협의회에서는 7월7일 경북도청을 영천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7월16일에는 영천시의회에서 도청유치 결의문을 채택했다.


#3.시·도통합논의로 도청이전문제는 표류

이러한 가운데 1999년 10월18일 진념 예산처장관이 “광역자치단체의 통합을 검토해 2000년 상반기 안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인해 경북도청이전 논의도 새로운 국면에 빠져들었다. 그해 11월29일 ‘도청소재지선정추진위원회 조례안’이 경북도의회에 제출됐으나 한달 뒤 열린 본회의에서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유보시켰다.

지역간에 첨예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도청이전 논의는 누구도 건드리기 힘든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2000년 들어 도청이전문제는 주로 안동과 영천지역에서 총선 쟁점사항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2000년 4월 행정자치부가 지방행정구조 개편 용역을 지방행정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국토연구원 3개기관에 의뢰하자 도청이전 논의가 또 쑥 들어갔다. 그해 12월27일에 열린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체계 개편 국민 대토론회에서 ‘시·도통합 등의 개편방안’이 논의됨으로써 학계와 시민단체, 정부에서도 시·도통합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001년 1월15일에는 행정자치부에 ‘자치제도개선 TF’가 구성돼 운영됐다. 경북경실련에서는 5월 29일 ‘대구·경북통합 추진협의체’ 구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9월26일 대구경북기자협회에서도 시·도통합 토론회를 개최했다.


#4.대구·경북통합 13인 준비위 발족

대구·경북 통합에 대한 각계의 논의 결과 2001년 12월17일 드디어 ‘대구경북통합추진위원회 준비위원회’가 발족됐다. 당시 준비위원장은 박찬석 경북대 총장이 맡았으며 대구·경북지역 대학총장과 언론사 사장, 대구은행장 등 13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구·경북 통합에 대한 여론은 강해져 갔다. 2002년 5월21일 대구사회연구소가 지역 지도층인사 19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대구·경북 통합에 찬성하는 의견이 67%나 나왔다.

2004년 5월28일 열린 경북도의회 본회의 도정질의에서 이의근 도지사는 “도청을 우리 지역에 이전하는 문제, 경북도와 대구시를 통합해서 광역화하는 문제, 그리고 통합하지 않더라도 경북도청을 그냥 대구에 두는 문제, 이 세 가지 안을 놓고 저 나름대로 장단점을 분석해 봤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실천이 불가능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 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하고 있다. 제가 선거에서 도청이전 공약을 했다고 해서 섣불리 결정하지는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그 결정이 잘 안 되어서 도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더라도 저 나름대로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판단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 도지사는 결국 도청이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는 퇴임하면서 “이전 후보지 결정을 시도했지만 결국 좌절돼 아쉬움으로 남는다. 경북의 경우 면적이 넓고 권역별 특성이 달라 충분한 의견통합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도청이전 문제를 쉽게 해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2004년 12월10일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대구·경북의 통합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는데 여기서도 통합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대구·경북 통합논의가 각각 독립적인 행정구역을 유지하면서 상호유기적으로 협력하자는 ‘경제통합’ 쪽으로 기울어 지면서 도청이전 문제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

2006년 민선 4기 단체장 출범과 함께 도청이전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글=심충택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공동기획 : 경상북도 개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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