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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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19   |  발행일 2014-09-19 제38면   |  수정 2014-09-19
굽이굽이 골물엔 옛 시인묵객의 풍류 흐른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선유동 계곡의 학천정과 선유구곡의 제9곡인 옥석대. 나들길 1코스에 속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선유동천 나들길 1코스의 시작점. 운강 이강년 기념관 바로 앞에서 시작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운강 이강년 기념관. 한말의 의병대장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인물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운강 이강년 생가. 기념관 서쪽에 위치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선유동천으로 향하는 길, 희양산의 백색 봉우리가 내내 따라온다.

문경의 가은 읍내를 지나 충북 괴산으로 향하는 한적한 길을 달리다 오른쪽 먼 하늘로부터 누군가 육박해온다는 느낌이 들어 멈칫한다. 사람을 가두어버리는 구름의 무리처럼 그렇게 나를 가두었다가, 또 이내 저만치 달려가 버리는 그것은, 희양산의 백색 봉우리. 마치 ‘선유동천으로 향하느냐?’ 묻는 듯했고, 그리하여 내 눈과 몸을 미리 씻어주는 듯했다. ‘신선이 노니는 아름다운 곳(仙遊洞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 문경 선유구곡

문경과 괴산을 경계 짓는 대야산에서 내려오는 골이 그 동쪽에 있는 둔덕산에서 내려오는 골과 만나 길고 아름다운 골짜기를 만든다. ‘여지도서’에 ‘대야산은 희양산으로부터 나오며 대야산 동쪽 6~7리에 선유동이 있다’고 했고, 거기에 ‘온 골짜기 모두가 흰 바위와 맑은 시내로 어우러져 그 안에 훌륭한 경치의 구곡이 있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야산 서쪽을 괴산 선유동, 동쪽을 문경 선유동이라 불렀다는데, ‘대동여지도’는 괴산 선유동을 내선유동, 문경 선유동을 외선유동이라 했다. 우복 정경세는 이곳에 와 감탄하며 외쳤다 한다.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可以浣腸云)’

삼국시대 말 고운 최치원이 이곳 선유동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니, 선유동의 경치가 진정 ‘선유동천’함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옛 시간 동안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고, 많은 학자들은 스며들어 왔다. 우복 정경세, 도암 이재, 손재 남한조, 병옹 신필정 등은 굽이를 오르내리며 저마다의 구곡을 경영하고 자취를 남겼다 한다. 그러나 그 이름들과 바위에 새겨진 자취의 주인이 누구인지, 선유 구곡의 완성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 알려져 있는 구곡의 이름은 고종 때 태어난 외재 정태진이 정리한 것이다. 큰물에 사라진 이름은 스스로 짓고, 계류에 숨기를 반복하는 이름은 건져내고, 이끼에 가려진 이름은 찾아내었다. 그것이 제1곡 옥하대, 2곡 영사석, 3곡 활청담, 4곡 세심대, 5곡 관란담, 6곡 탁청대, 7곡 영귀암, 8곡 난생뢰, 9곡 옥석대다.

◆선유동의 입구, 운강 기념관과 선유칠곡

선유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가은읍 완장리다. 우복 선생의 ‘가이완장운’에서 마을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지금 그 한자는 달라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고 본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완장리에서부터 선유구곡을 지나 대야산 용추계곡의 월영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계곡을 따라 숲속을 걷기도 하고, 숲 비탈에 놓인 나무 데크 위를 걷기도 하고,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걷는 길이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둔덕산 아래 운강 이강년 기념관 앞에서 시작된다. 1858년 이곳에서 태어난 운강 선생은 효령대군의 19세손이다. 그가 태어나기 며칠 전부터 둔덕산이 울기 시작하여 태어난 후 울음을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갑신정변 때 낙향하여 칩거했는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했고,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했을 때는 가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원주, 가평, 인제, 봉화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계속하다 결국 1908년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운강 선생의 기념관 바로 앞에 선유동천 나들길 표지석이 서 있다. 계곡 하류의 탁 트인 땅이다. 여기서부터 선유동으로 오르는 길에는 7개의 굽이가 있다. ‘선유칠곡’이다. 대한제국시절 가은에 살던 일곱 사람이 선유구곡 아래 7곡을 설정하고 경영한 곳이다. 선유칠곡의 제1곡은 칠우대다. 숲 위로 올라가면 칠우정도 자리한다. 정자의 이름은 의친왕이 내린 것이라 한다. 이어지는 2곡은 망화담, 3곡은 백석담, 4곡은 와룡담, 5곡은 홍류천, 6곡은 월파대, 7곡은 칠리계다. 어지러운 시절 저 7인의 벗들은 죽림칠현을 자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선이 노니는 열여섯 굽이, 용추로 솟아오르네

선유칠곡의 칠리계에 이르면 바로 인접하여 선유구곡의 1곡인 옥하대가 위치하고 다시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오르면 구곡의 마지막인 옥석대에 다다른다. 이곳이 선유동 계곡의 끝이다. 옥석은 ‘옥으로 만든 신발’이라는 뜻으로 ‘도를 얻은 자가 남긴 유물’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에 도암 이재 선생을 기리는 학천정이 자리한다. 조선 후기 노론 중에서도 준론(峻論)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그는 선유동 상류인 용추동에 둔산정사를 짓고 후학을 길렀다 한다. 이후 둔산정사는 퇴락했고 1906년에 향토 사림들이 옥석대 곁에 학천정을 지었다 한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여기서 상류로 향해 무당소와 용소암을 지나고 용추로 솟아올라 달그림자 어리는 월영대에서 끝난다. 전체 8㎞가 넘는 길이다. 도암 선생은 이렇게 썼다. ‘늦게야 이 산의 좋은 경치 알았으니/ 전생의 인연이 있었던 것 같구나.’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문경 방향 점촌·함창 IC에서 내린다. 3번 국도를 타고 충주·문경읍 방면으로 가다 901번 지방도로 가은읍으로 간 후 괴산읍 방면 913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된다. 석탄박물관 지나면 운강 이강년 기념관이 자리하고 조금 더 가면 생가가 있다. 운강 기념관 앞에서 선유동천 나들길 1코스가 시작된다. 학천정에서 1㎞ 더 가면 1코스가 끝나고 2코스는 월영대까지다. 1코스와 2코스 사이에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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