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두 번이나 믿어준 대안학교…말썽꾸러기 그는 180도 달라졌다

  • 백경열,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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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29 07:50  |  수정 2014-09-29 07:50  |  발행일 2014-09-29 제15면
[아이들 희망을 품다] 조일로봇고 이준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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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조일로봇고 한 실습실에서 이준범군이 범용밀링머신을 조작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한 아이가 있다. 공부는 뒷전이고, 학교 밖을 겉돌며 말썽만 부린다. 시시콜콜한 일에도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오고 시비를 건다. 범죄에도 손을 대 경찰서를 들락거린다. 또 한 아이가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번 돈으로 일터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명절이나 생신 때 선물도 하고 용돈도 드린다.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며 행복한 미래를 준비한다. 두 학생은 같은 인물이다. 소위 ‘문제아’로 찍힌 낙인을 스스로 지우기 위한 한 아이의 노력, 그리고 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격려해 준 교육 현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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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중에 이준범군이 파이팅을 외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 이상의 방황은 없다”
고교 진학 후
반장 맡아 모범생 변신
수업에도 적극적
가족·선생님 격려에
미래의 꿈 위해 비지땀

◆누가봐도 말썽꾸러기

이준범군(16·조일로봇고 1)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저 공부가 싫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공부를 꼭 해야하나’라는 생각에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길 강요하는 학교를 나와 당구장이나 PC방, 노래방을 전전했다.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신났다. 수업이 듣기 싫으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고, 아예 등교조차 않는 날도 늘어갔다.

이군은 “오토바이도 타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단순히 공부가 싫을 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범죄에 빠지기도 해 경찰로부터 보호관찰도 받는, 학교 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학교는 이런 이군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타이르고 다독여봤지만 역부족이라고만 여겼다.

학교는 그에게 대안학교를 권유하게 된다. 당시 개교를 앞두고 있던 이 학교는 이군처럼 말썽을 일으킨 학생을 데려와 수업 위주가 아닌 커리큘럼으로, 학습에 흥미를 찾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돕는 일종의 ‘힐링(Healing) 학교’였다. 지금의 ‘마음이 자라는 학교’(이하 마자학교)다. 시범 운영을 하던 시기, 이군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12년 겨울의 일이다.

이군은 개교 전, 7주간 운영되던 마자학교에서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머무르게 된다. 이때가 그에게는 전환점이 된다.

이군은 “처음엔 학교의 추천 때문에 마지못해 가게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큰 힘을 얻게 됐다”며 “가령, 종이에 분노의 대상을 적은 뒤 이를 찢으면서 분노를 누그러뜨리거나, 강아지를 기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다니던 중학교와 달랐던 점은 교사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이군은 이곳에서 교사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적지 않은 위안을 받게 된다. 공부가 아닌 춤과 노래를 처음 접하며 학교라는 곳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는 “선생님이 친구 또는 가족이 돼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고 기쁜 일은 함께 나눴다. 마자학교에 있는 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마자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김형섭 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 대안교육부장은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이군은 분노와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아이였다. 아무나 만나면 싸우고 싶고 때리고 싶어하던 그런 학생이었다”며 “하지만 7주간의 교육을 마쳤을 때 ‘이곳에 들어온 건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사 대부분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군은 마자학교 과정을 마친 후, 중학교 3학년을 다시 본래 학교에서 다니게 됐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또다시 문제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스스럼 없던 교사와 친구들이 없었다. 적어도 이군에게는 그랬다.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결과와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이군은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 좋아한다. 공부만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계속 강요하는 게 정말 싫었다”며 “PC방에서 온라인게임에 빠지거나 당구장과 친구집에서 놀았다. 부모님도 많이 혼내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군이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자학교의 교문을 또다시 노크하게 됐다.

◆기다림, 또 기다림

지난해 8월말부터 17주간 마련된 마자학교 1기생 정규과정. 커리큘럼은 한층 전문적으로 바뀌었다. 직업교육을 위한 과정도 개설됐다. 이군은 자신을 믿어주는 학교에서 듬직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자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에 민주적인 회의가 열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회의에서 서로의 요구사항을 말하고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공동체 내 각종 문제도 화제가 된다. 이때 사회는 학생이 맡는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학생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하기 위한 학교 측의 방침 중 하나였다.

이군이 회의를 이끌었던 어느 날, 학생끼리 벌인 싸움이 주제가 됐다. 조율이 쉽지 않은 문제였다.

문제는 이랬다. A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 모습을 B가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중, B가 속한 무리는 촬영한 장면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수상히 여긴 A가 놀리는 이유를 두고 따져 물었고, 급기야 패싸움까지 벌어지게 됐다. 경찰까지 출동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잘못은 A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A가 이유없이 시비를 걸었다며 B를 감쌌다. 모의법정을 연상케 했던 이날 회의에서 이군은 차분히 회의를 진행하며 공동체에 속한 모든 아이의 진술을 들었다. 결국 그 과정에서 B의 잘못이 드러났다.

김형섭 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 대안교육부장은 “이군은 사안에 대해 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건 물론, 설득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아마도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성적이 좋았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군은 누구보다 속정이 깊은 아이이기도 하다. 말썽을 부릴 때도 항상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가 눈에 밟혔다.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거나 폭행 등을 일삼을 때도 가출을 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시내 백화점 식당이나 집 근처 고깃집에서 번 돈으로 용돈을 마련했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맞춰 구두나 가방 등 선물을 사 드리거나 용돈을 드릴 정도였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

이군은 마자학교를 두 번 다녀온 뒤 조일로봇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반장을 맡는 등 중학교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호 담임교사는 이군에 대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야간에 있는 기능반에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라며 “얼마 전에는 반에서 싸우는 아이들을 뜯어 말리고는 담임에게 알리는 등 반장으로서의 책임감까지 보이더라. 수업 태도도 적극적인 분위기 메이커”라고 평했다. 또 “중학교 때와 달리 인정도 해 주고, 잘한다는 소리를 자주 하며 격려하니까 변하게 된 듯하다. 기대 이상”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가족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이군은 “공부를 해 보겠다는 내 결심에 형도 기능사 자격증 책을 주며 격려해 줬다. 또 식당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입학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았다. 책상에 재털이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며 “선생님들도 가족처럼 학생을 대해주시고, 진로를 잘 결정해 주신다. 이곳에서 정말 열심히 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군은 앞으로 컴퓨터 응용밀링기능사, 유공압기능사, 컴퓨터 응용 기계제도 기능사 등을 따서 강소기업이나 대기업 설계파트, 공기업에서 일을 하는 게 꿈이다. 그러고는 예쁜 아내를 만나 아이를 낳고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최종 목표다. 이군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이다.

이군은 “방황도 많이 해 봤으니 나중에 자식이 말썽을 일으킨다면 조금은 지켜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선을 넘어가기 전까지만 말이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학생을 인정하고 믿어주며, 조금 어긋나는 행동이 있더라도 지켜봐줘야 한다”며 “‘조금만 바꾸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변화된 모습에 칭찬해 주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재촉하지 말고 길게 보려는 노력이 우리 교육현장에 절실하다”고 말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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