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은행나무 斷想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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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0   |  발행일 2014-10-20 제31면   |  수정 2014-10-20
[자유성] 은행나무 斷想

가을볕을 받은 도심 거리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민은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를 통해 가을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느끼고, 잠시나마 기억의 저편에 있던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이런 은행나무가 최근 ‘골칫거리’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골칫거리가 된 대상은 은행나무 암나무이고, 시기는 열매가 익어서 떨어지는 대략 10월이다. 이쯤 되면 눈치 있는 사람이면 무슨 일인지 짐작할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문제라는 것을.

2013년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로수 중 가장 많이 심긴 나무는 은행나무로, 전체 가로수 중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벚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양버즘나무 등의 순이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인기 있는 이유는 공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공기정화능력이 좋고, 병충해에 강해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또한, 수명도 길고 수형(樹形)도 아름답다. 잎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불리는 은행나무는 열매의 겉껍질과 속껍질 사이가 하얘서 은빛의 은(銀)자와, 열매가 살구같이 생겼다 하여 살구 행(杏)자를 합하여 은행(銀杏)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암나무는 수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있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그 열매가 문제다. 이 열매의 바깥 껍질에 있는 은행산과 빌로볼 성분이 악취를 풍겨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는 민원이 이어지자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로의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수나무로 교체해도 문제는 없지만, 겨울을 이겨낸 은행나무가 봄에 파릇파릇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뒤이어 가을에 잎이 노랗게 변해가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변화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게 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은행나무가 주는 여러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열매가 맺혀 떨어지는 한 달 정도의 불편함을 참지 못해 수나무 교체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인간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이지용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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