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촬영 명소 대구 .6] 그 한 컷, 바로 이곳(上)

  • 이지용
  • |
  • 입력 2014-12-17   |  발행일 2014-12-17 제8면   |  수정 2014-12-17
‘용의자X’ 전국을 헤맨 끝에 찾았다던 그 아파트 만촌동에 있었네
100% 완벽한 로케이션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제작진의 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촬영 현장은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받는 장소다.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섭외가 돼야 하고, 섭외가 된다 하더라도 현장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발목을 잡는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통제불가능한 것들이 상시 잠복해 있는 로케이션 촬영, 화면 속에 감춰져 있는 그것을 그들은 ‘눈물의 로케이션’이라 부른다.


영화 ‘용의자 X’(2012)- 수성구 만촌동 아진아파트

20141217

20141217
영화 ‘용의자X’는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고 계속해서 부딪히며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인 아파트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감독은 계단과 마당을 갖춘 복도식 아파트를 원했고, 제작진은 전국을 찾아 헤맨 끝에 모든 조건을 갖춘 오래된 맨션을 발견한다. 그곳이 바로 수성구 만촌동의 아진아파트다. 아진아파트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의 한 장면(왼쪽)과 현재의 모습.
수학 교사인 석고(류승범)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그 자체로 어둠이다. 그런 그의 옆집으로 이사 온 화선(이요원)과 그녀의 조카. 석고에게 그들은 빛이고 그들로 인해 석고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선은 집으로 찾아 온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된 석고는 그들을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스스로가 범인이 되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방은진 감독의 2012년 영화 ‘용의자 X’는 현대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화했다. 주요 배경은 주인공 석고와 화선이 사는 아파트. 아파트를 찾는 것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고 계속해서 부딪히며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인 아파트는 매우 중요했다. 감독은 계단과 마당을 갖춘 복도식 아파트를 원했고, 제작진은 전국을 찾아 헤맨 끝에 조건을 모두 갖춘 오래된 맨션을 발견한다. 그곳이 수성구 만촌동의 아진아파트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는 극심했다고 한다.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살인사건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촬영 허락을 받아냈다. 또 다른 변수는 빛이었다. 아파트 외벽에는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직사광선이 건물을 바로 비추고 있어 빛을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특히 석고 앞에 화선이 나타났을 때, 이철오 조명감독은 인물들에게 닿는 빛이 조금 더 따뜻하게 보이길 원했다. 제작진은 특수한 천을 사용해 빛의 색과 양을 조절하기로 한다. 작은 조각의 금색 천을 일일이 박음질해 하나의 큰 천으로 만든 뒤 아파트와 맞은편 아파트 사이를 씌워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빛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써 인물들의 감정과 공간의 깊이를 담은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2007) - 남부경찰서와 성서 경찰서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딘가 많이 모자란 세 남자 도범(강성진), 근영(유해진), 종만(유건)이 합심해 ‘국밥 재벌’ 권순분(나문희) 여사를 납치한다. 도범은 교도소에 수감된 채 출산이 임박한 아내의 보석금을 위해, 근영은 어머니의 틀니 값을 위해, 종만은 백수의 품위유지비를 위해서다. 그런데 이 유괴범들, 아무리 봐도 속 터진다. 보다 못한 권순분 여사가 직접 나선다. 내가 몸값을 챙겨주마. 김상진 감독의 2007년 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인질과 유괴범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다.

경찰서장 안재도(박상면)의 수사지휘 장면은 대구 남부 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사무실과 강당, 그리고 성서 경찰서 서장실 등에서 촬영됐다. 죽전네거리와 성서지구대 사이 교차로의 교통사고 장면 등도 성서 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촬영했다. 제작진은 2005년에 완공해 당시로서는 말쑥한 새 건물이던 성서 경찰서가 밝은 코미디에 잘 어울려 섭외를 결정했다고 한다. 영화에는 대구 MBC 아나운서가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반창꼬’(2012)와 ‘감기’(2013) - 대구 지하철 공사 현장

20141217
강일(고수)는 매일 목숨을 걸고 사건 현장에 뛰어드는 소방관이다. 미수(한효주)는 거침없고 자신감에 차있는 의사다. 강일은 자신의 아내를 구하지 못한 상처를 간직한 채 마음을 닫고 살고, 미수는 한 번의 실수로 위기에 처한다. 소방관과 의사.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그러나 정작 강일과 미수는 자신들의 상처를 보지 않는다. 정기훈 감독의 2012년 영화 ‘반창꼬’는 강일과 미수가 서로를 통해 상처를 보듬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강일이 콘크리트 더미에 다리가 낀 인부를 구출하기 위해 붕괴 직전의 공사장에 홀로 남는 장면. 강일은 미수를 떠올린다. ‘당신, 나랑 약속 하나 하자. 몸 사리면서 일하기. 무서우면 도망가고, 위험하면 피하고, 막 그렇게 불나방처럼 뛰어들지 말고. 약속.’ 강일은 픽 웃으며 중얼거린다. “보고 싶네.’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이 대구 지하철 3호선 1공구 현장이었고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2013년에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에서도 대구 지하철 공사 현장이 등장한다. ‘감기’는 119 구조대원인 지구(장혁)와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싱글맘인 인애(수애)를 주인공으로 한 재난영화다.

영화 속 배경은 서울 외곽의 분당. 영화는 밀입국, 변종 바이러스, 무차별 격리, 집단 동요 등과 같은 민감한 키워드를 강력한 이미지로 그리면서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자세와 방식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대구 지하철 공사장은 인애가 운전하던 차가 공사장에 추락하면서 지구를 만나게 되는 첫 장면에 등장한다. 영화의 ‘분당선 연장 제 8공구’가 실제로는 대구 지하철 1~2호선 연장공사 현장인 것. 제작팀은 약 7일간 대구에 머물면서 지하철 공사 현장 외에 월배 차량기지, 화원고등학교 등에서 촬영했다.


영화 ‘신부수업’과 ‘박쥐’, 드라마 ‘서울1945’와 ‘각시탈’-성 유스티노 신학교

20141217
대구 중구 남산동에는 1914년 프랑스인 선교사가 세운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모태로 교구청,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 성모당 등이 한자리 모여있는 100년 전통의 ‘가톨릭 타운’이 있다. 신학교나 수녀원은 제약이 많은 곳이지만 이곳의 성 유스티노 신학교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 종교 건축물의 융통성과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2004년 개봉한 하지원, 권상우, 김인권 주연의 ‘신부수업’에서는 권상우와 김인권이 신부 서품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신학교 본연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원은 이때 금녀의 집인 기숙사에서 처음으로 밤을 지낸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영화 ‘박쥐’(2009)에서는 ‘붕대를 감은 성자’ 신부(송광호)와 노신부(박인환)가 대화를 나누는 성당으로 나왔고, 드라마 ‘서울1945’(2006)에서는 이화여자전문학교로 등장했다. 드라마 ‘각시탈’(2012)에서는 어린 슌지가 아픈 유모를 입원시키는 평양성모병원으로 변신했다. 여기서 슌지는 목단을 처음 만난다. 그곳이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아름다운 아치 회랑이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팔공산

20141217

20141217
배용균 감독의 데뷔작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팔공산의 한 괴석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팔공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동남쪽 아래 100m 지점에 이르면 우뚝 선 괴석이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젊은 승려 기봉이 동트는 하늘을 응시하며 딛고 섰던 바로 그 바위다.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였던 배용균 감독의 데뷔작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 영화는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노승 혜곡(이판용), 세속적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는 젊은 승려 기봉(신원섭), 그리고 아직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동자승 해진(황해진), 이 세 명의 승려를 통해 삶과 죽음, 해탈과 자유라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기획 단계 8년, 제작에만 4년이 걸린 영화로 배 감독 혼자 제작, 감독,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 영화에서의 전 과정을 맡아 작업했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60번을 넘게 찍기도 했고, 계절이 바뀌면 다음 해를 기다려 찍었다.

팔공산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820m 지점에서 선다. 그 동남쪽 아래 100여m 지점에 높이 5m의 괴석이 우뚝 솟아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젊은 승려 기봉이 동트는 하늘을 응시하며 딛고 섰던 바로 그 바위다. 이 영화는 제42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배 감독은 이후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을 만든 후 홀연히 영화계를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