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금호강 아양철교와 옛 기찻길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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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6   |  발행일 2014-12-26 제38면   |  수정 2014-12-26
기차 달리던 철교는 산책로가 되었다…걸음으로 잇는 사람의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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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양철교. 전망대를 가진 산책로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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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다리를 검색해 볼 수 있는 디지털 보드와 명상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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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내부의 카페다.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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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선이 이설된 뒤 문을 닫은 구 동촌역은 작은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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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양철교를 건너면 옛 철길이 이어진다.

겨울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 강의 무수한 조각들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아양교에서 아양철교를 바라보며 서 있는 동안 날카로운 얼음 조각에 온 피부가 벗겨져 물고기의 비늘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고기, 라고 생각하자 저것은 물 위로 튀어 오른 물고기처럼 보였다. 고래의 등 같기도 했고 난간을 꽉 잡은 아르마딜로 같기도 했다. 수정궁이 떠올랐고 공항의 라운지도 생각났다. 화석화되어가는 상상력을 깨운다는 점에서 저것은 일단 일종의 기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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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행복마을. 천장은 낮고 창은 작고 집들은 예쁘게 단장되어 옹기종기 기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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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옛 철길을 그림으로 남겨두었다. 봄이면 장미와 등나무 푸른 잎이 하늘을 덮을 것이다.

◆ 폐선된 아양 철교의 변신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 철교의 한가운데를 유리로 감쌌다. 그곳은 아케이드다. 카페가 있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명상원’이라 이름 지어진 격리된 공간도 있고, 세계의 다리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있고, 무엇보다도 푸르고 넓은 잎 식물이 자라며 겨울 강바람에 떨어져 나간 피부도 빠르게 재생된다.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 노트북을 펼쳐놓은 여학생,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학생, 느긋하고 우아하게 겨울 햇살과 강 풍경을 즐기는 중년의 아줌마들, 미도다방에서 뵀음직한 할아버지들, 아이를 캥거루처럼 품에 안은 젊은 엄마들이 있다. 그 중간으로 중무장을 한 할머니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밀며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한 아가씨가 후다닥 뛰듯 들어와 산발된 머리를 매만진다.

이 위를 기차가 달렸다. 1936년에 놓였다는 아양철교는 78년의 세월 동안 기차의 길이었다. 1917년 개통되어 동대구역에서부터 영천역까지를 이어주었던 대구선의 한 부분이었지만, 동구 지역을 관통하던 철길이 2008년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아양철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기존의 철길은 철거되어 공원 등으로 조성되었지만 그동안 아양철교는 늙고 병든 채로 남아 냉랭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철거의 논란이 일었다. 동구는 아양철교를 살리기로 한다. 힘들었다. 폐 철교를 살려 관광자원화한 선례도 드물었고, 자금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냈다.

철교는 산책로다. 일부분은 기존의 침목을 활용해 길을 만들었고, 몇몇 구간은 침목을 그대로 두고 유리를 덮어 금호강 물빛 위를 징검다리 걷듯 아찔하게 디자인하기도 했다. 철교의 가운데에는 유리로 감싼 아케이드형의 전망대를 만들었다. 대각선의 골조 디자인으로 풍압과 하중을 조절하고 유리 외피로 금호강과 먼 팔공산을 끌어들였다. 근대의 유산이면서 현대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이롭다. 지금 아양 철교는 금호강을 사이에 둔 동구 신암동과 지저동을 따박따박 걸음으로 잇는 사람의 다리다.

금호강 푸른물·팔공산 끌어들인
철교 가운데 유리로 감싼 전망대
카페·명상원·작은 박물관 등 갖춰

철길 가엔 파스텔색 동화같은 마을
원래 위치에서 조금 서쪽으로 옮긴
동촌역은 작은 도서관으로 바뀌어

◆ 옛 철길 따라 옹기종기 행복마을로

아양 철교를 건너, 2차로를 포르르 달려 건너면 ‘시와 산문이 있는 옛 철길’이란 이름으로 기찻길은 이어진다. 가지런한 침목도 미끈한 레일도 없지만 영화처럼 철길을 걷는 기분이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한 그들의 눈길이 따뜻하다.

길가에는 크고 작은 텃밭들이 많이 보인다. 철길이 있던 시절, 집들은 철로에서 한두 걸음 물러나 자리를 잡았을 테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한 뼘의 땅도 그냥 놀리지 않았을 게다. 집들은 천장이 낮고, 창들은 자그마하다. 기차소리 요란하면 아기들은 잘 잤을까. 바닥에 그려진 철길을 걷는 걸음이 사뿐해진다.

옛 철길 가에 파스텔 색으로 곱게 칠해진 동화 같은 마을이 있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들어선 마을이라 한다. 철길을 곁에 두고 지척에 K2 비행장이 있어 그 소음의 영향은 대단했다. 점점 슬럼화되어가던 마을은 철길을 걷어내고 산책로와 쉼터를 만들고 벽화로 단장하면서 ‘옹기종기 행복마을’이 되었다. 집들은 정말 옹기종기 이웃해 있다.

◆ 작은 도서관으로 거듭난 옛 동촌역

옹기종기 행복마을 앞의 하천을 건너 옛 철길의 흔적을 따라 조금 가면 옛 동촌역에 닿는다. 주변은 3, 4층 규모의 빌라들이 빙 둘러섰고 몇몇은 한창 공사 중이다. 그 어수선함 가운데 동촌역은 오롯이 서 있다. 예쁘다.

대구선 이설과 함께 문을 닫았던 동촌역은 원래 위치에서 조금 서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올해 ‘작은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역명판은 옛날 동촌역 시절의 것 그대로다. 마당에는 조그마한 철길과 기차의 좌석처럼 마주보는 벤치가 있다. 동촌 역사의 뽀얗게 김 서린 유리 너머로 아이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소박한 행복과 믿음직스러운 안전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아양교역에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면 아양교가 보인다. 그 왼쪽 옆에 아양철교가 있다. 강변길을 따라 걷다 아양철교가 가까워지면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양철교를 건너 동촌역까지, 두 개의 도로가 있지만 옛 기찻길의 흔적을 놓칠 일은 없을 것이다. 지하철 동촌역에 내려 반대로 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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