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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을 주제로 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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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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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탄생 배경이 된 곳은 부산 아닌 대구 교동시장


‘목포’ 하면 생각나는 것은? 목포 사람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대다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을 꼽을 것이다. 목포의 눈물 속에 나오는 ‘유달산’도 당연히 잊지 못할 명소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경주’ 하면 ‘신라의 달밤’만큼 강렬한 힘을 가진 경주 거점 노래가 있을까.

그럼 ‘대구’ 하면 생각나는 노래는? 다들 머뭇거릴 것이다. 우리 가요에 좀 조예가 깊으면 단번에 현인이 부른 ‘비내리는 고모령’이라 대답할 것이다. 고모령(顧母嶺)은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남쪽 길에서 팔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1991년 거기에 노래비가 세워진다.

유행가와 지명은 실과 바늘 사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아리랑은 지역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단순한 음률에 불과하다.

최백호가 부른 ‘영일만 친구’를 그냥 ‘바다 친구’로 해버리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 앞에 ‘영일만’을 붙여놓음으로 인해 포항권 주민에겐 살가운 추억의 노래가 될 수밖에 없다.


시대 사로잡은 저음 국민가수 배호
영남일보 주최 서라벌가요대상에서
1968·69년 연속 최우수 남자가수상


◆ 박시춘·강사랑·현인 교동시장서 냉면 먹고 나오다 ‘굳세어라 금순아’ 만들어

많은 사람은 현인이 불러 6·25전쟁 중 최고의 가요에 등극한 노래 중 한 곡인 ‘굳세어라 금순아’가 부산을 배경으로 태어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51년 여름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강사랑, 가수 현인이 교동시장 내 강산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나오던 중 즉석에서 의기투합해 만든 노래다.

그 노래는 대구시 중구 화전동 자유극장 동편 옆 박시춘의 아내가 꾸려갔던 오리엔트 다방 자리에서 당시 전국 유일의 대구 오리엔트 레코드에서 녹음해 SP 음반으로 제작한다.

그 무렵 오리엔트레코드는 작곡가 이재호와 작사가 손로원이 ‘꿈꾸는 백마강’을 잘 불렀던 이인권을 불러 ‘귀국선’을 취입한다. 하지만 원판에 문제가 생겨 재녹음을 해야 하는데 이인권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오리엔트 전속가수 1호이자 영남고 출신인 신세영의 목소리로 ‘전선야곡’을 녹음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곡도 신세영의 목소리다.

71년 11월8일 오후 2시.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낀 장춘단 공원 등으로 국민가수로 등극한 저음이 매력적이었던 가수 배호가 죽었다.

사실 배호의 뒤에는 지역 출신의 작곡, 작사가가 있었다. 배호의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성주 출신 작곡가 배상태였다. 배상태는 배호의 삼종숙이었다. 그는 성광중 1회 졸업생이었고 한때 KBS 대구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다가 60년대 서울 오아시스 레코드사 전속 작곡가가 되기 전 대구시 중구 남산파출소 옆에서 작곡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배상태가 군대 시절 군용열차를 기다리며 만든 작품이다. 오후 7시 서울 용산발 부산행 군용열차, 그는 당시 휴가 나오면 대구시 중구 칠성동 형님(배상진) 집에 주로 머물렀다. 시간이 많이 남아 삼각지로터리 근처 빗소리 들리는 선술집에서 그 곡을 작곡했다. 그는 원래 그 곡을 남진한테 주려고 했지만 퇴짜를 맞는다. 결국 배호의 곡이 된다.

배호는 68년과 69년 영남일보 주최 제2·3회 서라벌가요대상 최우수 남자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배호의 마지막 히트곡인 ‘마지막 잎새’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출신인 작사가 정귀문의 노랫말이다. 노래에 나오는 마지막 잎새는 경주 현곡초등학교 교정에 지금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플라타너스. 2003년 현곡면 남사 저수지 앞에 마지막 잎새 노래비가 세워진다. 정귀문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등 1천여곡의 노랫말을 짓는다.

영남 민요의 정수를 보여주는 1936년 밀리온레코드사가 출시한 대구아리랑 SP판. 노래를 부른 조선권번 출신 예기 최계란은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태어났고 그의 오빠 최영환도 동생과 비슷한 율조의 ‘아라리요’를 83년 녹음했다.
◆ 1936년 최계란이 취입한 ‘대구아리랑’ 포함…대구 테마로 한 노래 CD로 출시

사람들은 유행가를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그런 유행가도 시대별로 묶으면 ‘문화재’가 된다. 최근 대구시가 아주 소중한 CD 두 장을 제작했다. 옛가요를 사랑하는 전국 동호회인 유정천리 이동순 회장(시인·영남대 국문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만들었는데 대구와 관련된 노래 40곡을 발굴했다. 그중에는 대구시 동구 봉무동에서 태어난 명창 최계란이 1936년 취입한 ‘대구아리랑’도 있다.

이번 주에는 대구를 테마로 한 노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대구아리랑, 영천아리랑 등 대구·경북 관련 아리랑 비사를 알아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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