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3] 어육장을 담그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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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7   |  발행일 2015-03-27 제39면   |  수정 2015-03-27
어육장엔 100년 이상 된 옻나무를 넣는다…내 평생 땅에서 못 파낼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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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생선, 그리고 된장과 간장, 채소와 각종 식재료를 교향악단 단원처럼 갈무리해 만든 어육장. 어육장에 넣는 옻은 발효균을 강화시켜 우세균을 만드는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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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육장을 담그기 위해 땅을 정비하고 있는 필자. 장 맛의 깊이는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이 아니라 항아리 속 세라믹의 구조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매년 정월이 되면 장을 담근다. 옻샘마을에서는 두 종류의 옻을 이용한 장을 담근다. 그중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땅을 파고 항아리는 묻는 ‘어육장’이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의 기운을 합쳐서 만드는 어육장이 낯설기 때문이다. 옛날 궁중이나 반가에서 담았다는 어육장. 옻샘마을의 어육장은 좀 특별한 방법이 동원된다. 옻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장물을 만드는 소금은 옻 세라믹을 이용해 발효시킨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장 담그기 방법은 내 아버지의 육포 제조법과 방송현장에서 터득한 경험이 어우러져 나온 방법이다. 사냥꾼이었던 아버지는 겨울철 사냥물을 보관하는 방법으로 육포를 활용했다. 아버지의 육포 제조법은 소 한 마리 분량의 고기도 한 사람의 등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육질 속에 있는 수분을 증발시켜 그 무게를 3분의 1로 줄이는 것이다.

방송 현장에서 배운 장의 비법은 덧장과 항아리 관리에 관련된 것이다.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골동 장류 붐의 배경이 된 방법이다. 한 독에 1억원이나 하는 명품 장을 추진했던 김진흥 박사와 함께 진행했다. 이제는 죽고 없는 김 박사와 나는 우리 장을 다른 시선에서 해석하여 역사와 함께 살아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자는 운동을 진행했었다. ‘씨간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전국에 흩어져 있던 오래된 장을 찾아내는 발굴 행사를 했다.

우리 전통장은 항아리마다 각기 다른 맛을 가진다. 같은 방법과 같은 메주로 한 사람이 장을 담가도 항아리마다 ‘우세균’이 달라 생기는 현상이다. 항아리마다 다른 맛을 가지게 되는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장을 만들어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미각의 세계를 상품화하자는 것이다. 와인과 치즈가 수십년의 세월을 상품화하듯이 같은 발효식품인 우리 장을 수십년과 수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골동식품으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내가 장에 대하여 이런 개념을 가지게 된 것에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 장은 우리 음식 문화의 기둥이다. 그 바탕이 되는 작물인 콩은 한민족 역사와 더불어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민족만이 가지는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는 신념이다. 물고기로 장을 담그는 남방의 어장이나, 고기를 이용한 중국인의 육장을 뛰어 넘는 맛을 우리는 콩을 이용한 두장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어육장을 땅속에 묻으면
발효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옻의 항균성은
발효균을 강화시키고
항균성을 이긴 우세균이
자신들만의 맛을 만든다

◆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콩

콩은 한민족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작물이다.

콩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콩의 원산지로 삼는다. 사실 콩을 재료로 하여 가장 많은 음식이 발달한 지역도 이곳이다. 장을 비롯해 콩비지, 콩 반대기, 두부 등이 북쪽 지역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콩을 나물로 만들어 먹고 콩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민족뿐이다. 콩은 천지인을 뜻하는 세 개의 둥근 알곡이 껍질에 쌓여 있어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작물이었다.

콩은 경작에 어려움이 없는 작물이다. 가뭄에 강하고, 스스로 질소를 생산하여 땅을 비옥하게 하는 특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상당한 식물이다. ‘태평성대’라는 말은 콩이 잘 되어 백성들의 먹거리가 풍부해졌다는 말이다. 이런 콩이 세계 5대 작물이면서도 모든 이들에게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약점 탓이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섭취 할 때 생기는 문제였다. 바로 알르젠이란 성분이다. 콩이 가진 일부 성분은 소화 효소에 영향을 미쳐 위장 장애와 소화불량을 만든다. 콩의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발효시켜 먹거나 조리할 때 다른 재료를 넣어 섭취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장 이상의 좋은 것은 없다.

콩과 관련된 세계사는 더욱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만든다.

콩을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대표적인 자가 바로 칭기즈칸이다. 만주족은 청국장을 무기로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세계의 패권이 유럽으로 넘어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가 번성할 무렵인 18세기 유럽에 등장한다. 그 뒤에 영국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 오늘날 세계 대두 시장은 미국인들이 관리하는 지역에서 생산되어 사료와 식용유 시장을 지배하는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

◆ 사계절이 동원되는 어육장 담그기

콩을 이용해 장을 담그는 일은 우리나라 사계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메주를 만드는 가을철에서 겨울까지는 온도가 낮아 콩 단백질의 부패를 막아서 발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장이 익는 동안에는 온도가 올라가 소금과 결합된 메주가 발효·숙성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장발효를 통해서 생성된 간장과 된장은 체내 나트륨 공급과 단백질을 공급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우리 생활 속에 만들어 준다.

내가 옻이 들어가는 어육장에 매달린 이유 중에 하나는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을 결합시키는 발효기술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 항아리의 관리방법과 새로운 소스 문화를 탄생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어육장에 들어가는 꿩, 양지머리, 전복, 조기 등 육류와 해산물을 부패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균일한 발효 온도를 유지하여야 하는데 항아리를 땅속에 묻음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더욱이 일반 장처럼 항아리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적은 인력으로 효과적인 장을 생산할 수 있다.

어육장을 담그면서 나는 항아리가 숨을 쉬어서 장맛을 깊게 만든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믿지 않게 되었다. 땅속에 묻은 항아리의 장맛이 더 깊은 맛을 냈기 때문이다. 장맛의 깊이는 항아리가 숨을 쉬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항아리를 만드는 세라믹의 구조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세라믹의 공명효과가 항아리 속 물분자를 잘게 쪼개고 발효균을 증폭시켜 특이한 맛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어육장에 넣는 옻의 항균성은 발효균을 강화시켜 항균성을 이긴 우세균이 자신들만의 맛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유별난 장을 담그는 데는 까닭이 있다. 사람들의 미각은 오감을 통해서 섭취하는 단계가 지나면 문화로 즐기는 특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빈곤의 시대는 포만감을 위해 음식을 먹고 풍요의 시대는 미각과 시각, 후각 등 감각을 활용하기 위하여 먹지만 여유의 시대가 되면 음식의 사연을 먹는다. 음식과 자신을 일치시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럴 때 식재료는 스토리를 가져야 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완연히 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재료에서부터 가공하는 과정을 차별화시킨 것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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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육장 재료 찾아 전국 유람

나는 어육장을 담그는 원료부터 이야기를 담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구한 것이 100년 이상 된 옻나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한국에 옻이 잘 되는 지역을 찾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 실험 재배를 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산골지역에 남아 있다. 마을 주위에 있는 거목들이다. 그 거목 중에는 베어져야 할 운명에 처한 나무가 있다. 집 마당 한쪽을 지키다가 주택개량 사업으로 인해 베어져야 하는 나무가 그것이다.

그런 나무를 원료로 어육장을 만들어 땅 속에 파묻는다. 그중에 어떤 것은 내 평생 파내지 못할 것도 있다. 땅 속에서 한 50년 발효되고 숙성되어 그만의 특별한 맛을 간직하게 되면 내 후대의 누군가가 파서 새로운 음식의 역사를 만들어 내길 원한다. 한 세기의 자연과 반세기의 사람 손길이 만나서 특이한 맛을 빚게 되면 그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수단이 될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농부들에게 강소농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농사와 가공을 겸해서 매출 1억원 이상 되는 농부를 전국적으로 10만명이나 양성하겠다고 한다. 귀농 붐과 더불어 시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양성 정책을 보면 회의적이다. 단기적인 전략으로 컨설팅하고 지원책을 펼쳐서 농부는 강해지지 않는다. 농부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후대를 생각하는 농사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것을 발굴하고 진행하는 것은 미온적이다.

특용작물이나 단순 가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숱한 실패자를 양산하고 농부를 유행따라 가는 방랑객으로 만든다. 유기농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유기농의 대부들은 30~40년 전에 비료와 기계화로 대량 생산을 주장할 때 전통농법과 자연농업을 개량하고 미래를 걱정한 사람들이었다. 도식화되고 생산량 중심의 농사는 결코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말한다. 유기농이 우리 농업을 살리지 못한다고. 중국과의 FTA가 되면 유기농은 붕괴될 수 있다고. 그들은 우리처럼 비싼 유기농이 아닌 생활화된 유기농산물을 생산한다고. 사실 그렇다. 중국의 넓은 농지는 돈을 들여서 비료를 쓰는 것보다 자연상태로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한겨울에 비싼 난방비를 활용해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동안 중국인은 지열을 이용해 난방비 없는 딸기를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농사의 근본 바탕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 농산물에 대한 잘못된 시각도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 농산물이 질적인 하락을 보이는 것은 수입업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하급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전문가들은 알고 있다. 옻만 해도 그렇다. 원산지에서 생산된 중국 옻은 그 품질이 국산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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