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우리와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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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06   |  발행일 2015-04-06 제30면   |  수정 2015-04-06
20150406

국가간 문화장벽 허물어지고
선진국일수록 관용 폭도 넓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멸시·조롱한다면
울타리안 동물성 자인하는 꼴

한국인은 ‘우리’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인 듯하다. 우리 아이,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우리라는 단어를 넣으면 뜻이 이상(?)해지는 말까지 우리를 갖다 붙인다.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 따위가 그것이다. 도대체 마누라와 남편을 누구와 공유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우리’라는 단어의 어원이 자못 재미있다.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즉 돼지우리, 소우리라고 할 때의 그 ‘우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울타리(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 우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 말로 사소한 허물은 다 덮어주는 ‘우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한 울타리 안에 사는 동물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인의 우리 안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우리와는 모습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적잖이 우리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가 한국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사람들이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 100명 중 5명, 전체 초중고생의 1% 이상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다. 군대에도 1천명 이상이 복무하고 있다고 한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그만큼이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전체 외국인은 얼마나 더 많겠는가.

필자가 일을 하고 있는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를 보면 더욱 뚜렷이 알 수 있다. 우리 병원은 특성상 산업재해 환자들이 많은데 산재 사고로 팔과 다리에 심한 외상을 입어 오는 경우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소위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네팔, 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그러한 외국인근로자와 다문화가정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세상은 급격히 국제화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던 동물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이 비일비재하며 우리 병원에서도 외국인 근로자가 입원할 경우 그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입원실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한국 환자가 적지 않다.

이쯤에서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울타리에 다른 울타리의 사람들이 들어오듯 우리도 다른 울타리로 옮겨간 경우가 많다. ‘꼬리빵즈’(중국)와 ‘애니캥’(멕시코), ‘카레이스키’(옛 소련), 조센징(일본) 등은 구한말 먹고살기 위해 전 세계로 흩어졌던 우리 선조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들었던 호칭들이다. 어디 그때뿐인가? 우리의 형과 누나, 아버지들이 오로지 가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의 사막으로 떠났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10여 년 전에 미국과 독일의 새로운 수술 기법을 배우기 위해 그 나라에서 공부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고, 바로 오늘에도 취업과 유학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을 현지사람들이 단지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조롱하고 김치 냄새가 난다며 병실까지 차별하면 그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현재는 하루가 다르게 국가간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선진국일수록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이 넓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그들이 단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멸시하고 조롱한다면 이는 국제화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이며 스스로 동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우상현 W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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