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진해의 갯마을 명동과 행암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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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0   |  발행일 2015-04-10 제38면   |  수정 2015-04-10
하루 두차례 물이 빠지면 ‘아이섬’에는 기적같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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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앞바다의 동섬. 하루 2회 물이 빠져 육지와 섬이 이어진다. 오른쪽은 명동과 다리로 이어져 있는 음지도. 섬 전체가 창원해양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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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암포구. 전형적인 어촌이었던 행암은 이제 낚시터로 유명하다. 옆으로 운행이 중단된 행암 기찻길이 있다.



명동의 바닷가에 서면 섬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손을 흔들고 진해만의 동쪽 행암은 연중 전국의 낚시꾼이 모여든다

다만 속도를 늦추어 스쳐지나가며 눈길의 끝자락까지 바라보게 되는 갯마을이란 텔레비전 화면 속의 사막과 비슷하다. 그러나 멈추어 단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오만한 안도감에 웃음이 날 지경이 된다. 거기에는 평범한 지상성과 익숙한 살 냄새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확인이다. 그것도 낯선 마을에서.

◆ 섬들이 모여드는 마을, 명동

그리고 그 낯선 마을이 두 손을 번쩍 들어 환영한다는 것을 느낄 때, 낯섦은 얼마나 벅찬 친밀감으로 바뀌는가. 명동에 들어서자 뭍에서 떨어져 나가 앉아있던 동섬이 벌떡 일어나 발꿈치까지 치켜들고 달려왔다. 이 기적 같은 상봉이 놀랍고 반갑다.

진해구의 남쪽 깊은 곳에 명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명동에는 동섬, 음지도, 우도, 소쿠도, 웅도 등 여러 섬이 속해 있다. 그중 뭍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동섬’이다. 곁에 있는 음지도보다 작아 ‘아우섬’으로 불리다 ‘아이섬’이 되었고 ‘동섬’이라 표기되었다 한다. 아이처럼 자그마한 것이 뭍과 떨어져 있다가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틈을 타 뭍과 만난다. 견우와 직녀만큼이나 애틋한 이 상봉을 어찌 기적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

동섬의 머리에는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는 관목의 숲이고, 더 아래에는 아기삿갓조개, 따개비, 작은 게, 미역 등이 산다. 섬을 빙 둘러 동그랗게 데크 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100m가 채 안되는 길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깝고 먼 섬들이 차례로 다가온다. 먼저 서쪽의 음지도가 다가온다. 섬 전체가 창원 해양공원이다. 그리고 곧 우도가 다가온다. 섬의 형상이 나비와 같아 나비섬으로 불리기도 하는 우도는 음지도와 보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도 저편에서부터 소쿠리를 닮은 소쿠도가 다가오고 그 뒤를 웅도가 뒤따른다.

명동의 바닷가에 서면 먼 데의 섬들을 끌어 모아 뭍으로 다가오는 동섬을 만난다. 섬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손을 흔든다. 곰솔 숲의 우듬지에 모여 앉은 바람일지도 모르고, 방파제와 갯바위에 선 낚시꾼의 손짓인지도 모른다. 명동으로 섬이 모여드는 일은 언제나 있는 일은 아니다. 멈추어 섰을 때만 그러하다. 다만 스치면 섬들은 흩어져 멀어진다.

◆ 부둣가 기찻길 나란한 행암

바닷가 선착장 기단 위에 기찻길이 놓여 있다. 갈빛으로 녹슨 철길 옆에 도로가 나란하다. 두 개의 길은 함께 마을과 바다를 갈라놓고, 함께 산자락을 자르며 멀어진다. 기차소리 들리지 않은지 오래 되었고 달리는 자동차들 뜸하다. 정오의 물빛은 맑디 맑고, 둥글게 휘어진 긴 선착장은 온건한 명랑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의 행암(行岩) 마을이다.

행암은 진해만 동쪽 장천부두와 탄약부두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동래정씨가 정착한 것이 500년 전, 처음 이름은 ‘갈바위’로 그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진해에서도 가장 오래된 어촌으로 꼽히는 행암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멸치잡이로 전성기를 누렸던 전통적인 어촌이었다. 1969년, 옆 마을 장천에 비료공장이었던 진해화학이 들어섰다. 73년에는 탄약부두와 연결되는 철로가 놓였다. 이로 인해 어촌이었던 행암은 주거지역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마을에는 빌라가 들어섰고, 대부분의 어부는 낚시꾼을 위해 배를 띄우는 뱃사람이 되었다. 행암에는 일 년 내내 전국의 낚시꾼이 몰려든다. 겨울에는 농어, 봄에는 도다리와 노래미, 여름에는 장어, 가을에는 돔과 볼락이 손맛을 보증한다. 그러나 여전히 공동으로 바지락을 양식하는 행암 어촌계가 건재해 있다. 아직은 어촌인 게다.

군부대와 마을을 분리하듯 작은 바위곶이 바다로 튀어나가 있다. 참꽃 흐드러진 곶의 허리를 목재 데크 산책로가 반쯤 휘감았다. 점점 바다로 나아가면 이윽고 마을은 보이지 않고, 뱃머리의 정점과 같은 막다른 전망대에 이른다. 한 사내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 있다. 만의 저 너머 도시의 실루엣이 가깝다. 사람들은 저편으로 지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바다로 나간 배들은 물속 사정을 이야기 한다. 아무리 잔잔한 물결에도 배들은 흔들리고, 삶은 바다와 함께 지속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남밀양IC로 나가 25번 국도를 타고 창원을 가로질러 진해구로 진입, 진해구청 방향으로 간다. 진해구청에서 남쪽으로 가 STX 조선소를 지나면 명동이다. 창원해양공원 이정표를 따르면 쉽다. 동섬의 바닷길 입구에 길이 열리는 시간표가 안내돼 있지만 해석은 힘들다. 국립해양조사원(khoa.go.kr)에 시간 안내가 날짜별로 쉽게 설명되어 있다. 명동에서 STX 조선소 뒷길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수치마을 지나 행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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