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희망을 품다Ⅱ] 발달장애서 음악영재로…대구 세명학교 남호성군

  • 백경열,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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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7 07:53  |  수정 2015-04-27 07:58  |  발행일 2015-04-27 제15면
침묵의 소년, 음악으로 세상과 이야기하다
영남일보는 올해 역시 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아이들 희망을 품다-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정규 교육과정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앓고 있는 청소년, 다문화 가정 아이들, 학업중단 위기에 빠졌던 청소년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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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때부터 일반인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휴대폰 진동소리에도 반응
남다른 청각 음악 접하며 재능 발휘

일반학교→특수학급→특수학교
세번의 전학 끝에 안정·웃음 찾아
피아노이어 6학년때 바이올린 입문
7개월만에 전국장애학생콩쿠르 입상
최근 평창페스티벌 오디션에도 합격

 

지난 21일 오후 대구세명학교 2학년3반 교실. 책상 가운데 놓인 주스를 두고 한 학생과 교사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학생은 갈색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에 빨간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패션이 조금 특이할 뿐 여느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내 독특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교사는 “어제 어떤 곡 연주했어?”라고 물었다. 학생은 대답은 않고 주스가 담긴 종이컵을 아쉬운 듯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린다. 이에 교사가 “그럼 종이에다가 써 볼까?”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학생은 한참을 주저하다 흰색 종이와 연필을 꺼내더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캐논 변주곡’ ‘봄동요 메들리’라고 적는다.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입꼬리가 슥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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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대구세명학교 한 교실에서 남호성군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아들은 말이 없었다

남호성군(14)에게 ‘발달장애 2급’이라는 딱지가 붙은 건 불과 네 살 때이다. 그의 부모는 말수가 적다 못해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들 걱정에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내린 판정이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 좀 더 자라봐야 알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부모는 제발 잘못된 결과이길 바라며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서울에 있는 이름난 병원에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녀의 고통을 마주해야만 하는 부모에게 세상은 원망스럽다.

온갖 치료법이 동원됐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어렵다는 생각에 호성군의 부모가 데려간 곳은 한의원. 용하다는 곳에서 침을 맞게 하고 한약도 2년 정도 먹였다. 하다못해 효험이 있다는 점집에 가서 굿도 했을 정도다.

이후 남호성군은 여섯 살 때 어렵게 정규 교육과정에 첫발을 내디뎠다.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이곳에서 호성군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과 처음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호성군이 여덟 살이 되자 보통의 아이들처럼 일반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들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다르게’ 키우기는 싫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적응은 힘들었다.

호성군 어머니는 “어느날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냥 밝기만 한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 조용히 지내는 아들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지켜볼 수가 없었죠”라고 회상했다.

전학. 3학년이 된 호성이는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로 결국 전학을 가게 된다. 그의 부모는 일반학교에서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하며 호성이가 특수학급에서 잘 적응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소박한 바람마저 무너지게 된다.

집에서 내려다보일 정도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녔던 남호성군은 어느날 등굣길에 또래 친구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4~5명의 아이들이 길을 가던 호성이를 뱅 둘러싸고는 신발주머니를 발로 차고 놀리며 때렸던 것. 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호성군의 어머니는 당장 학교로 달려가 그를 감싸 안아야만 했다.

그렇게 또 전학. 다른 초등학교로 옮겨 특수학급에서 배움을 계속했지만 호성군의 부모는 이전 학교에서 받은 큰 충격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는 “한번 몹쓸 일을 경험하고 나니까 계속 불안했어요. 겉보기엔 잘 다니는 것 같아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괜히 부모 욕심에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 번 전학. 호성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결국 특수학교인 덕희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학교를 방문한 부모는 호성이와 비슷한 환경의 학생들이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게 된다. 호성이도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았는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하게 됐다. 이때부터 호성이는 말수도 점점 많아지고 밝게 웃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호성군은 유난히 말수가 적고 소심한 행동을 보인다. 발달장애를 앓는 대개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성이 가장 부족하다. 그런 호성이가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이었다.

그는 유아 때부터 유난히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코를 고는 소리, 청소기 소리, TV 소리 등에 자지러질 정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멀리서 들리는 휴대폰 진동소리마저도 호성이의 귀에는 들렸다. 청각이 유달리 발달되어 있다고 생각한 부모는 그때부터 호성이에게 음악을 접하게 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동네 피아노 학원이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호성군의 어머니는 “날카로운 소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자 싶었어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강사분이 연주는 물론이고 악보도 잘 보고 배운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참 기뻤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호성군은 6학년이 되던 해에 바이올린을 잡게 된다. 바이올린은 호성이가 다니던 예술심리치료센터의 한 교수가 추천해 준 악기였다. 소심한 성격이 변할 수 있고 심리적인 안정도 줄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하게 된 것.

자신만이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생겨서 기뻤던 걸까. 호성이는 짧은 기간임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주위를 밝히기 시작한다.

2013년 대전방송국에서 열린 장애학생콩쿠르 대회에 출전해 바이올린 앙상블 부문에서 동상을 받게 된 것.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어머니는 “대회에서 직접 보니까 전혀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자신의 몫을 잘 소화하더라고요. 사실 초보자가 화음을 넣어가며 연주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하며 웃었다.

내친 김에 지난해부터는 ‘부는 악기’도 시작했다. 클라리넷을 접하게 되면서 호성이는 그야말로 음악을 벗삼아 생활하게 됐단다. 호성이는 지난해에도 대전방송국이 주최하는 대회에 출전해 동상을 거머쥐었고, 한 대기업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진행하는 오케스트라 음악회의 연주단원 오디션에도 합격했다. 호암 아트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자격으로 당당히 공연도 마쳤다.

‘뽀꼬 아 뽀꼬(POCO A POCO)’라는 이름의 이 음악회는 음악에 재능있는 장애 청소년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것. 이탈리아 음악 용어로 뜻은 장애 청소년들이 음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노력해 발전해 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난 19일에는 평창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할 단원을 뽑는 오디션에도 합격했다. 140여명의 지원자 중에 합격자는 불과 50명. 오는 8월 4박5일간 장애를 앓고 있는 음악 영재들과 함께 마음껏 음악에 빠지는 시간을 갖게 됐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더 없는 기회일 터.

지금 호성군의 부모에게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예술계 고교에 보내는 것. 일반학생과의 생활에서 몇 차례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라 더욱 조심스럽다. 여건만 된다면 대학교에서도 바이올린을 배워 음악가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착한 심성이 호성이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이다. 호성군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길을 가다가 우는 아이를 보면 달려가서 눈물을 닦아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어요. 호성이는 그런 아이예요”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호성이 혼자 밖에 내보내지 못하겠어요. 자립심을 키워주려면 그래야 하는데 아직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세상은 아직 마음놓지 못할 곳”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남호성군이 교사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이 좋아, 바이올린이 좋아?” “XX가 좋아, 바이올린이 좋아?” “◇◇가 좋아, 바이올린이 좋아?” 호성이의 답은 한결 같았다. 질문은 비밀에 부칠까 한다. 남호성군의 바이올린 선율이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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