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히포크라테스의 두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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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01 07:47  |  수정 2015-06-01 07:47  |  발행일 2015-06-01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히포크라테스의 두뇌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장

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뇌의 기능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의 최고 지성들은 뇌에 대한 고민을 꽤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BC 460~BC 370)는 ‘뇌는 지능과 감정을 관장하는 곳’이라 주장했습니다. 아무런 최첨단 장비도 없는 2500년 전에 뇌에 대한 이런 정확한 정의를 내린 히포크라테스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심장이 생각을 조절하며 뇌는 단순히 심장으로부터 나온 피를 식히는 곳’이라 주장합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요즘 대구처럼 날씨가 무척이나 더운 날, 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다 머리를 식히지 못하고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약 400년이나 지나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AD 129~AD 199)라는 로마 의학자에 의해 반박되는데, 갈레노스는 ‘뇌가 사람의 생각과 정서, 기억을 조절하는 곳’이라 주장합니다. 갈레노스는 로마 황제의 시의로 우리 역사로 말하자면 허준 같은 분입니다. 허준 선생처럼 의학적 호기심이 충만해 생체 해부는 물론이고 특히 신경계에 관련된 실험적 연구를 많이 수행합니다. 이러한 투철한 실험정신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인 만큼 탄탄한 지지를 얻게 됩니다.

그로부터 근 1700년이 지난 어느 날, 개인에게는 매우 비극이나 인류에게는 복음 같은 사건을 통해 뇌연구는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됩니다. 미국의 한 철도 노동자였던 게이지는 1848년 9월13일 선로를 놓는 공사 중 폭약이 폭발하여 쇠막대기가 뇌의 앞부분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게이지의 두개골과 쇠막대기는 하버드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사고를 당하고도 도리어 자신을 허둥대며 치료하는 의사를 위로할 정도로 게이지는 착하고 남을 배려하길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게이지가 죽지 않은 것은 물론 기억도 온전하고 말도 이상이 없으며 신체 어느 부위도 마비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이지가 회복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성격이 변해갔습니다. 마을사람들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고 대낮에 부녀자를 희롱하며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례를 통해 뇌가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조절하며 뇌의 특정 부위가 인성을 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후속 연구를 통해 게이지는 사고로 손상된 곳이 전두엽이며, 전두엽은 인간과 영장류를 구별하는 곳으로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부위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그럼 심장이 기억을 관장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정말 더위먹은 철학자의 헛소리일까요? 헛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최근 애리조나주립대학의 게리 슈왈츠교수의 ‘세포기억설(장기 이식 수혜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이 기증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알려집니다. 슈왈츠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들이 심장을 제공한 사람의 기억이나 재능, 그리고 품성까지 닮는다고 합니다. 아직 의학계와 과학계는 슈왈츠교수의 이론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2천500여년 전에 이미 ‘세포기억설’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 속을 들여다보고 생각의 뇌신호를 측정하는 온갖 첨단장비로 무장한 현대의 뇌연구자들도 여전히 인류 최고의 지성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이론은 내놓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뇌가 뇌를 연구하는 뇌연구자의 길,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철학자들의 길과 다르지 않다 생각됩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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