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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북대 합동강의동에서 이정우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퇴임 공개강연을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11일 오후 고별강연을 가졌다. 이날 마지막 강연은 ‘불평등의 경제학’ 제13강 ‘한국의 불평등’. 이 교수는 한국은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복지기피 국가인 미국과 토건국가인 일본을 혼합한 정책으로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노조 활성화, 기업 공개와 종업원 지주제 확대, 임금격차 축소, 부(富)와 불로소득 중과세(종합부동산세), 서민주택의 개선, 교육제도의 개혁, 사회보장의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경쟁지상주의가 대학을 죽이고 있어, 대학에서 전인교육이 가능한지, 선비의 길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는 말을 인용하며 ‘경쟁보다 협력’을 당부하고 강의를 마쳤다. 이에 앞서 10일 이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美서 공부 시카고학파, 대기업 이해와 맞물려 정책 펴
50년간 성장지상주의에, 17년간 시장만능주의에 매몰
극단적 이 두 방식은 인간이 편하게 살아가는데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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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북대 합동강의동에서 열린 이정우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퇴임 공개강연에 앞서 학생대표가 이 교수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감개무량합니다. 38년간 경제학 가르쳤는데 마지막 10년은 총알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2005년 학교에 다시 복귀하니 정년이 10년 남았습니다.(이 교수는 2003년 노무현정부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냈다) 5년이 후딱 지나가더니, 눈 두 번 깜짝하는 사이 10년이 지나갔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경세제민(經世濟民)입니다. 조부·부친 두 분 다 법학 교수(조부는 경북대 통합 전 경북대 농대에서 법학을 가르치셨고, 부친은 영남대 법대에서 노동법을 가르친 이종하 교수)였기 때문에 저는 어릴 때 당연히 법학을 전공해 교수가 되거나 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경북고) 2학년 사회수업시간에 김종호 선생님께서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苦難(고난)에서 救濟(구제)함-이 말이 줄어서 經濟(경제)라는 말이 나옴)을 설명하시는 것을 듣고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40년 베스트셀러 서울대 조순 교수의 ‘경제학원론’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소위 오수재(五秀才)의 한 명인데 공부를 잘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가서 3년 동안 방황했습니다. 이 학문으로는 경세제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망으로 전공 공부보다는 소설과 철학 서적을 읽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3학년 겨울방학 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등 경제학 고전을 읽고 재미를 붙였습니다. 4학년 때부터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첫 강단에 섰을 때와 지금의 느낌은.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온 경제학자들이 5년은 열심히 합니다. 그 뒤로는 활동을 별로 안 합니다. 학자 5년의 생명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받고 돌아와 강단에 서면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제는 백수로 좀 쉬어도 되겠죠. 퇴임 후 특별한 계획도 없습니다.”
-지난 연말 ‘경제학원론’ 발간 40주년 행사 때 조순 교수가 이 교수를 극찬했다던데요. 조 교수의 ‘경제학원론’ 출간 의미와 5수재는 어떤 분입니까.
“당시 경제학원론 서적은 모두 일본식 교과서였습니다. 조순 교수님 경제학원론이 우리나라 최초의 영미형 경제교과서입니다. 오수재는 저술과정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인데 강호진 고대 명예교수, 김승진 전 한국외대 대학원장, 김중수 전 한은총재, 박종안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저입니다. 네 분은 저보다 2년 선배인 66학번입니다. 제가 1977년에 경북대에 왔는데, 5수재라고 해서 지금까지 편안하게 교수생활 했습니다.”(웃음)
-그리고 이 교수는 소위 조순학파의 제자이기도 하고, 진보 경제학자인 변형윤 교수가 이끄는 학현사단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서울대,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경제학파에 모두 소속되는 유일한 경제학자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매우 드문데요.
“네, 그렇게 됐네요. 두 분은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변형윤 선생님은 재야 진보 경제학자이십니다. 분배를 강조하시죠. 저는 매월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스케일이 크죠. 그리고 약자를 돕는다는 정의감도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 적용을 연구합니다. 반면에 스케일이 너무 커 실용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교수의 경제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성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해 왔습니다. 분배와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북유럽형 복지국가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까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좀 더 왼쪽으로 와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우리나라는 50년간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됐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17년간 시장만능주의에 빠졌습니다. 둘 다 극단적인 방식입니다. 인간이 편하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됩니다. 두 극단의 철학을 극복하고 수정해야 됩니다. 지나치게 우측으로 편향된 것을 중간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여전히 성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정부 정책의 골간인데요.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이끄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소위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시카고학파가 많습니다. 이들이 대기업 이해와 맞물려 현재의 경제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작고한 미국 MIT대 앨리스 암스덴 교수는 이들을 ATKEs(America-Trained Korean Economists)라며 “못 쓴다”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양극화가 심각한데.
“빨리 복지국가로 가야 합니다. 천천히 가면 추락할지 모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고령사회로 접어들면 성장동력이 상실돼 경제활력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수도권 집중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이 커지면 커질수록 흡인력이 더 생깁니다. 서울에 가야 1등이고, 지방은 2류라는 자괴감을 갖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도시 간 균형발전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수도권 집중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계속돼야 합니다. 정부가 지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것도 매우 잘못됐습니다.”
-경북대가 많이 어렵습니다. 총장 공백이 너무 길어지고 있고 교수·학생 모두 대학생활이 힘든 것 같습니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남기실 말씀은.
“교육부가 빨리 절차에 따라 총장을 임명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대학은 교수와 학생 모두 너무 지나친 경쟁주의에 매몰돼 시달리고 있는데 경쟁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교수평가를 논문으로 하니 무의미한 논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시간 낭비를 합니다. 이런 헛된 경쟁을 하느라 교수도 학생도 책을 안 읽습니다. 잘못된 경쟁지상주의입니다.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학교를 떠나야 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이상희 전 대구시장이 경북대에서 특강을 할 때 이 교수가 경청하는 걸 봤습니다. 두 분이 교류가 잦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두 분 다 전형적인 영남 선비 스타일인데 어떤 인연으로 교류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네. 이상희 시장님하고는 헌책방 인연입니다. 저는 서울 가서 시간이 나면 헌책방을 돌아다니는데, 몇 년 전 헌책방에서 우연히 여러 번 마주쳤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고서 마니아입니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존경받았던 관료 출신이고, 선비 같은 분이죠.”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 이정우 교수 약력 | |
1950년 | 대구 출생 |
1968년 | 경북고 졸업 |
1968~72년 | 서울대 경제학사 |
1972~74년 |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78~83년 |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1977년 | 경북대 경상대학 경제학과 교수 |
2002년 | 대통령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 |
2003년 | 대통령 정책실장 |
2003~2005년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
2003~2006년 | 대통령 정책특보 |
2005년 | 한국경제발전학회장 |
현재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위원회 공동대표 |

박종문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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