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캠페인 ‘책읽는 도시 행복한 시민’ 책 읽어주는 남자] 김수영 전집2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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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11   |  발행일 2015-07-11 제1면   |  수정 20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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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시보다 산문이 좋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산문보다는 역시 시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아마 그의 시가 난해하고 편차가 큰 탓이리라. 나는 김수영의 좋은 시 몇 편만으로 산문 전체를 감당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시는 동봉에, 산문은 서봉에 올라있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그가 최고봉-그 이름이 비로봉이든 천왕봉이든-에 오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의 시대가 최고봉 등정을 금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문학으로는 최고봉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간’ 김수영이 동봉과 서봉에 앉아서 금지된 봉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겠는가. 앞에서 한 말을 고쳐야겠다. 김수영의 글은 최고봉 바로 아래 둘러친 철조망에 걸려 있다. 시는 동봉 쪽에 산문은 서봉 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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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산문을 읽으면 우선 글에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토록 거침없이 쓸 수 있는 것은 화살이 박힐 과녁 앞에 자신의 ‘온몸’을 미리 갖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말을 꾸미려 하거나 잔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미건조하고 거친 글이다. 그 대신 딴짓 하느라 리듬을 놓치는 경우가 없어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독자들은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낄낄거리기도 하다가 마지막에 올라오는 묵직한 감동에 빠져든다. 그리고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책을 덮게 만든다. 자신과 현실을 반성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김수영 전집 2 산문’(2003, 민음사)은 1981년에 처음 출간돼 23쇄를 찍은 초판의 개정판이다. 글의 주제에 따라 1부 일상과 현실, 2부 창작과 사회의 자유, 3부 시론과 문학론, 4부 시작노트·편지·일기초, 5부 시월평, 6부 미완의 장편소설 앞부분 ‘의용군’, 7부 번역 작품 목록으로 구성돼 있다. 개정판에 추가로 수록된 것은 초판 간행 후 발굴된 산문 원고 10여편과 번역 작품 목록이다.

 

최근에 뉴스를 보고 화가 나거나 서글퍼지는 일이 많았다. 세상일과 거리 두는 법을 제법 터득한 줄 알았는데, 아직 한참 멀었나 보다. 이럴 때 술을 마시면 꼭 주량을 넘기게 된다. 숙취보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다. 다시 김수영을 읽었다. 나침반의 지침이 자성을 잃었을 때 강력한 영구자석에 붙여 놓으면 다시 자화된다. 그러면 또 얼마간은 제대로 방향을 가리킬 수 있게 된다. 나에게 김수영 전집은 영구자석 같은 책이다.

김광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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