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건강식품 집착 이대로 좋은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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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42면   |  수정 2015-08-28
“최악 식품은 탐욕…몸에 필요한 음식은 있어도 좋은 음식은 없다고 믿어라”
20150828
만병통치약 같은 음식이 있다고 믿는 게 한국의 민심인 것 같다. 골고루 맛있게 먹고 알맞게 운동하고 욕심을 내지 않는 성실한 삶을 살면 누구나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로컬푸드로 만든 제철 ‘엄마표 밥상’이 그리운 시절이다.

한국은 ‘과장·포장·오버공화국’. 입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다. 과장과 입소문이 합쳐지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 세 사람이 있으면 없는 호랑이를 만든다(三人成虎).

음식 부문으로 접어들면 더 섬뜩할 정도로 부풀려지고 관련 정보가 왜곡된다. 외국의 식품의학자가 한국을 볼 때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 일반인의 식품건강 관심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사실이다. 의사들도 연구에 연구, 확인에 확인을 거쳐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는 ‘식품효능론’을 소시민은 너무나 즉흥적·말초적으로 토해낸다는 사실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만 뗐다 하면 ‘이 음식은 여기에, 저 음식은 저기에 좋다’고 확신한다. 그 사실을 무용담처럼 지인에게 유포한다. 그런 정보가 이 순간에도 밥상에서 물물교환식으로 거래된다. 특히 중년은 보양·강장·보약 음식 대목에선 무조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자연 그 음식이 의약품처럼 무소불위의 파워를 뿜어낸다.


각 지자체의 농·수·축산물의 경우 ‘농어촌 청정 지역에서 생산된 거니 무조건 전국 최고’라면서 구성 성분과 효능론을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처럼 뿜어낸다. 특히 각종 풀과 약초, 열매 등에 설탕을 1대 1 비율로 섞어 숙성추출한 산야초효소 역시 ‘컵라면’처럼 취급된다. 지금도 그런 효소액 한두 병 냉장고 안에 없는 집이 없을 것이다. 숨도 못 쉬고 검은 곰팡이가 핀 된장도 시골 노인이 만든 거라면 무조건 좋단다. 농약통으로 사용하던 용기에서 추출한 감식초도 친구 할머니가 추출한 거라면 금세 ‘몸에 좋은 거겠지’ 하고 안심한다.

지리산 언저리에 사는 웬만한 농부는 거의 ‘민간의학자’ 수준이다. 무슨 약초를 먹으면 어디에 좋다는 걸 구구단 외듯 뇌까린다. 그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심마니들의 ‘산삼 효용론’까지 가세하면 점입가경이다. 말기암 선고를 받고 심산유곡에서 특정 풀뿌리를 장복해 완치되면 그 사람은 순간 자연치유 전문가로 둔갑해 종합편성채널 MBN ‘천기누설’과 ‘나는 자연인이다’ 등에 출연을 한다.


특정 식재료에 담긴 성분들이
다른 음식과 융·복합되면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있는 장비·전문가 없어

일반인 건강식품 관심 지나쳐
몸에 좋다면 무조건적인 집착

칼슘·칼륨을 제외하면
한국인 영양상태 나쁘지 않아
식이보충제는 필요 없을 정도
비타민C 섭취 부족 10∼30대
과일·채소 조금 더 먹으면 돼


기자도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해 봐 알지만 먹방과 쿡방의 식품효능론 정보도 너무나 ‘졸속적’으로 형성된다. 이들 원고는 음식과 식품영양학 등에 전혀 지식이 없는 20대 구성작가가 작성하는데, 이들은 방송에 내보낼 식재료 관련 정보를 인터넷에서 즉석 검색해 닭백숙을 먹으면 어디에 좋고 헛개나무 달인 물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는 식의 조잡한 효능론을 슬쩍 집어넣는다. 마치 기능성 사우나 룸에 붙어 있는 눈요기 수준을 못 넘어서는 원적외선 효능론 안내문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정보에 우리가 ‘일희일비’하고 있다.

의사들도 먹고살기 빠듯해 식품의학 쪽으로 슬금슬금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다이어트식품 판매에까지 눈길을 돌린다. 여기에 약선요리 전문가, 자연음식 전문가, 사찰요리 전문가, 푸드케어 전문가 등 별의별 식품의학 전문가가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 건강기능·보조식품은 ‘건강 망친식품’

지금 건강기능식품과 건강보조식품은 ‘건강망친식품’으로 추락 중이다.

기자의 책꽂이 앞에도 외국여행 갔다가 사 갖고 왔다는 건강 및 성기능향상제 두 병이 뒹굴고 있다. 독자의 집 곳곳에도 뜯지 않고 유통기한이 지난 몸에 좋다는 짝퉁 약 같은 건강식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을 것이다.

‘보약공화국’답게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3년 현재 시장규모가 1조7천920억원이라고 밝혔다. 180여 개 회원사를 둔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추산한 2013년 시장규모는 4조6천300억원대. 이 협회가 지난해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절반 이상이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식약처 허가를 받은 건강기능식품 원료는 243종, 품목은 1만4천282종이다. 건강기능식품 소매점은 10만개에 육박한다.

그런데 효능을 맹신하고 있는 독자에겐 말하기 뭣하지만 무해무득한 수준이 아니라 되레 ‘유해무득(有害無得)’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그 효능과 안전성은 믿을 만할까.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는 “비타민 C, 종합비타민제, 홍삼, 오메가3, 글루코사민, 프로바이오틱스 등은 99%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다.

2007년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실렸다. 종합비타민제에 든 베타카로틴, 비타민 A, 비타민 E가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망률을 높이며, 비타민 C와 셀레늄은 사망률을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는다는 내용이다. 16년간 발표된 68편의 임상시험(연구 대상자 23만명)을 메타분석한 결과였다. 하지만 관련 업자는 이런 흐름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검정을 노랑으로 믿게 할 수 있는 게 그들의 마케팅 수준이니까.

그렇다면 우린 지금 식이보충제가 필요할 만큼 영양상태가 나쁜 걸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2013 국민건강통계-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부족한 칼슘과 칼륨을 제외하면 그렇지 않다. 비타민 A와 비타민 B1(티아민), 비타민 B2(리보플라민)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 양이 권장량을 초과하고 있다. 비타민 C도 남자는 96.8%, 여자는 100.2% 섭취하고 있다. 다만 10~30대 젊은 층의 비타민 C 섭취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비타민 C가 부족하면 과일과 채소를 조금 더 신경 써서 먹으면 된다. 특정 비타민 보충제들이 과일과 채소를 대신할 수는 없단다.

‘보신문화’와 ‘건강염려증’.

제약회사 또는 식품회사들의 홍보전, 그리고 소비를 부추기는 ‘쇼닥터’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지적이다.

쇼닥터는 방송 등에 출연해 의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부 의사를 일컫는다. 이들이 TV 건강프로그램이나 홈쇼핑 등에 출연해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예찬하면 시청자들은 이를 믿고 무턱대고 구입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의료계 자정 차원에서 ‘의사 방송출연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선을 넘는 쇼닥터들을 걸러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에 제소하기로 했다. 정부 책임론도 거론된다. 국민건강보다 건강기능식품 산업 육성에 중점을 둔다는 주장이다. 산업에 기운 정부의 의지 때문에 국민보건을 우선하는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정말 무얼 먹을까?

세상에 맛있고 맛없는 음식은 있어도 ‘몸에 좋은 음식과 몸에 나쁜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자. ‘아무거나 골고루’가 답이 될 것 같다. 물론 천연음식이 인공음식보다 더 낫다는 것과 부패한 식재료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상식.

우린 지금 ‘계산’해서 먹는다. 이건 몸한테 ‘치명적’이다. 몸의 생리가 구미(口味)를 작동해 필요한 걸 섭취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 몸의 생리보다 맛있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다. 광고에 휘둘린 탓이다. 그러니 몸이 안 망가지겠나.

가능한 한 직접 제철 식재료를 장에서 사 와 요리하는 오너셰프 식당에서 먹는다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물이 기본이다. 산중에서 받아 온 약수면 좋겠지만 지금 산성비와 황사 등 온갖 분진 등이 지하수에 유입됐을 것이라고 본다면 가능하면 끓여 먹는 게 좋다. 이때 약초를 넣어 끓이자. 한 약초만 공략하기보다 철마다 바꾸는 것을 한의사와 상의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어떤 전문가는 김치도 발암식품으로 매도한다. 어떤 전문가는 삼시 세끼 돼지 비계를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어떤 말이 맞을까? 육식과 채식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

한 식재료에 담긴 성분이 다른 식재료의 성분과 융·복합되면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그걸 임상시험할 수 있는 첨단장비는 아직 지구에 없다. 전문가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고추를 먹으면 그 안의 캡사이신 성분 때문에 이런저런 효능이 있다. 그래서 고추를 먹어야 한다. 마늘에는 알리신이란 성분이 있어 이런저런 효과가 있다.’ 현재 방송용 멘트는 이 정도에서 그친다. 그럼 캡사이신과 알리신이 섞인다면? 그 성분이 수백, 수천, 수만 가지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게 몸의 각 장부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1주일, 1개월, 1년, 10년 뒤 어떤 영향을 줄지, 그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강도 운동을 할 경우 그게 그 성분과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맘이 편하다.

걱정하지 말자. 틈틈이 운동하고 폭음·폭식·폭연하지 않고, 제때 자고 안분자족하자. 나머지는 우주보다 더 신비로운 인체의 생리시스템이 알아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최악의 식품은 ‘탐욕’ 아닐까? 몸에 필요한 음식은 몰라도 절대 ‘좋은 음식은 없다’고 믿자. 먹어도 죽고 안 먹어도 죽으니 먹는 것에 너무 목숨을 안 걸어도 될 듯하다.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에 의해 삶이 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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