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위안부 문제 다룬 영화 ‘귀향’ 조정래 감독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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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5   |  발행일 2015-09-25 제36면   |  수정 2015-09-25
“美 혼다 하원의원 ‘귀향’요약본 관람…눈물 흘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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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이 지난 18일 열린 대구 동성아트홀 재개관식에 참석했다. 조 감독은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그가 “오랜만에 동성로에 왔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지난 18일 오후 예술영화전용관인 대구 동성아트홀(대구시 중구 동성로)이 재개관식을 했다. 메르스 여파로 두 달간 문을 닫고 내부공사를 진행해 왔던 동성아트홀은 새로운 모습으로 깔끔하게 단장돼 손님을 맞이했다. 이날 행사에선 영화 ‘귀향(鬼鄕)’을 만든 조정래 감독(43)이 초청돼 영화와 관련한 토크콘서트를 했다. 또 귀향의 시놉시스(6분)와 미니다큐(17분)도 상영했다. 영화 귀향은 강제위안부 강일출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극영화로 오는 11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8월15일 시사회를 열어 영화를 개봉할 계획이었으나 투자와 배급이 난항을 겪으면서 개봉일이 늦춰졌다. 크라우드펀딩(웹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후원을 받음) 제작 방식으로 시작에서부터 주목을 끌었던 귀향은 조 감독이 2002년부터 구상한 회심의 작품이다. 올봄 대구에서 귀향 후원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날 오후 재개관식에 초청된 시민들이 시놉시스를 감상하는 가운데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 감독은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에서 태어나 4학년 때 대구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어 대건중과 대구고를 나와 중앙대 연극영화과(92학번)를 졸업한 뒤 줄곧 영화계에 몸담고 있다. 꽉 다문 입술에서 영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영화 상영할 때마다
한 영혼을 고향으로
모셔와야겠다고 생각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歸鄕 아닌 鬼鄕으로 했다

편집 작업 70% 진행
크리스마스 전 개봉

제작비 후원 4만여명
배우 손숙 무료 출연

동성아트홀
무기한 상영 선언
대구서 흥행 불붙어
모든 국민이 봤으면…


▲영화 제목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향(鬼鄕)’이다. 왜 귀신 ‘귀(鬼)’로 했나.

“이국만리 타향에서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이 원인도 모른 채 전장으로 끌려가 속절없이 죽임을 당하고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나이가 16세 전후다. 심지어 11세 소녀도 있었다고 하는데 초경도 하지 않은 어린이다. 남한과 북한을 포함해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 통계로는 그 수가 20만명 가까이 된다. 이 가운데 정확하진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살아 돌아 온 강제위안부는 겨우 238명이라고 알려진다. 할머니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영화에 담으려고 제작했다. 한편의 영화를 상영할 때마다 한 영혼을 고향으로 모셔와야겠다는 생각을 담았다. 그런 의미에서 귀(鬼)로 했다.”

▲영화를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강제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사람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다른 할머니들은 가족의 반대 등으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한 뒤 판소리 고수(鼓手)로 활동했다. 2002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국악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할머니의 증언집을 읽었다. 특히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본 뒤 반드시 영화화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牡丹江) 위안소에서 집단으로 학살당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림을 보고 많이 울었다. 이후 매달 한번 이상 할머니를 찾아뵙고 공연을 한 다음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했다.”

▲불편한 진실을 영화로 만들어 까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그런 영화는 투자자와 배급사도 투자를 꺼리지 않는가.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했을 때 주변에서 ‘누가 그런 걸 좋아하겠느냐. 또 누가 그런 영화를 보겠느냐’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했다. 투자·배급사가 좋아할 리 있겠는가. 그래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시작했다. 인터넷 다음에서 2억5천만원, 외부에서 2억5천만원 등 5억원이 모였다. 지금까지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후원을 하고 있다. 집을 팔아 후원을 한 분, 차를 팔고 적금을 깬 후원자도 있다. 대구를 비롯해 서울, 청주, 춘천 등지에서 전국콘서트를 열어 후원한 가수도 있다. 이러한 성원들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가 되고 심지어 뉴욕타임스에도 게재됐다. 그것을 본 일본 우익으로부터 악플을 받기도 했다. 출연자와 스태프의 재능기부까지 합하면 25억원이 넘는다. 충무로식 계산으론 40억~50억원이 든 작품이다. 배우 손숙 선생님은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며 노 개런티를 선언해 감동을 줬다. 재일교포 배우의 경우 자비로 와서 촬영에 임했다. 제작비를 후원한 4만명의 후원자가 가장 큰 힘이 됐다. 귀향은 국민 1%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정인기, 오지혜 등 유명 배우와 영화 ‘명량’ ‘암살’ ‘도가니’ 제작에 참여했던 유명 스태프도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영화제작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전체 공정률은 70% 정도다. 지난 6월에 정말 기적적으로 촬영을 잘 끝냈다. 가장 중요한 후반작업이 남아있다. 사운드, 음악, CG와 같은 편집작업인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후반작업 비용이 부족해 고전을 하고 있는데 11월말까지 완성시킬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개봉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광복절에 개봉하려고 했지 않았나.

“그랬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개봉에 목을 매지 않겠다. 많은 국민이 보는 게 중요하다. 성원에 힘입어 광복절 때 나눔의 집에서 시사회를 열고 영화 하이라이트와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묶은 30분 분량의 편집본을 상영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상영한 걸로 알고 있다.

“지난 7월29일 미국 연방 레이번 의원회관에서 열린 ‘위안부 결의안 통과 8주년 기념식’에 초청돼 6분짜리 요약본을 상영했다.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을 비롯해 연방의원 4명이 참석해 영화를 감상한 후 극찬을 하더라. 다들 충격적이고 파워풀하다고 했다. 사회를 보던 사람이 하도 울어 말을 잇지 못하더라. 미국 현지 언론은 물론 NHK, TBS, 후지TV,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도 참석해 취재경쟁을 벌였다. 요미우리 신문을 빼고는 다 왔다고 하던데, 행사 40분 전에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상영에 앞서 혼다 의원 개인집무실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1분 정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어 ‘일본 사람은 반드시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일본에서도 상영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귀향 원작품의 러닝 타임은 얼마인가.

“크레딧을 제외하고 120분 정도 된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보통 제대로 된 극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80~100차례 촬영을 한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총 44차례 촬영을 했다. 한 번 할 때마다 2회 분량을 찍어 실제로는 80차례가 넘는다. 밤을 새워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정신과 의사인 김한규 박사가 촬영장에 상주하면서 소녀로 출연한 배우에게 심리상담을 해주었다. 고마운 분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과 시대적 배경은 언제인가.

“주인공은 재일교포 4세로 현재 중학교 3학년이다. 강일출 할머니의 어린 시절 역할이다. 할머니 시절 배역은 손숙 선생님이 한다. 시대적 배경은 1943~45년, 그리고 1991년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녀 배역만 50명 정도이고 중요 배역이 10여명 된다. 스태프와 출연진 등 총 300여명이 참여했다.”

▲상업영화는 소재와 주제가 무겁더라도 오락성과 대중성이 있어야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 그 예로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암살’이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귀향이 신파조로 흘러 계몽적이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만 던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암살을 만든 최동환 감독과 전화통화를 했다. 독립운동은 한국에 마지막 남은 금광과 같은 소재인데 정말 잘 만들었다. 귀향은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13년간 준비한 영화다. 결코 신파조가 될 수 없다. 귀향은 오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힐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은 마음이 정화될 것이다.”

▲강제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가 있었는가.

“‘소리굽쇠’ ‘마지막 위안부’ 같은 극영화가 있었고,‘낮은 목소리’와 같은 다큐영화도 있었다. 유태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와 뮤지컬, 드라마는 수백 편인 데 비해 강제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극히 드물다. 중국에서도 강제위안부 관련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들었다. 영화 속 배경이 중국이라 중국에서도 개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흥행성적은 어떠했나.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상을 받으면 멀티플렉스에 걸린다. 소리굽쇠는 잘 만든 영화다. 대형배급사가 배급을 했지만 프라임타임을 빼고 아침에 한 번, 밤늦은 11시에 상영하고 그랬다. 영화 ‘연평해전’의 경우 전국 1천개관에서 상영됐다. 귀향이 100개관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그런가.

“한 대형배급사가 귀향이 ‘잘 돼도 문제, 안 돼도 문제’라고 했다. 강제위안부 문제는 일본과의 정치적인 이슈다. 전국에 거미줄 같은 영화관을 가진 기업과 배급사가 일본과 관련이 없겠나. 우리는 인권문제로 보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동성아트홀의 김주성 대표와 남태우 실장이 귀향의 ‘무기한 상영’을 선언해 고마울 따름이다. 수익을 떠나 대구에서 흥행의 불이 붙어 전 국민이 봤으면 좋겠다. 상영이 안 된다면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최근 일본이 안보법안을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회귀하려 한다. 이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귀향은 반일 영화가 아니라 반전 영화다.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일본이 강제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귀향은 그 문화적 증거가 될 것이다.”

▲청송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 마을 앞 갱빈(강변)에 가설극장이 가끔 차려지곤 했는데 그때 본 영화를 잊을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극단 ‘현대’에서 연극을 하고 교회에서 성극을 하며 배우가 되기 위한 자질을 키웠다. 문학책도 많이 읽었다. 고3 때 연극영화과를 가겠다고 하니 선생님과 부모님이 다 말렸다. 공부도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려 연극영화과에 갔다. 대학에 가선 연극배우를 하고 싶었으나 배우를 하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해서 영화를 선택했다(웃음). 3학년 때에는 영화학과 학생회장도 했다. ‘연풍연가’ ‘퇴마록’ ‘텔미썸딩’ 같은 상업영화의 연출부 스태프로 참여했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복학해 4학년 때 단편영화 ‘종기’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영화로 세계 단편필름페스티벌 우수상을 타고 프랑스 ‘코테 세계필름페스티벌’에 특별 초청돼 제주도도 못 가본 청송 촌놈이 프랑스에 갔다. 그때 관객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나.

그렇다. 2002년부터는 국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국악동아리 ‘다스름’의 전신인 ‘된장국’을 만들었다. 거기서 악기도 배우고 소리도 했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배우 오정해씨가 귀향 후원콘서트 때 노래를 해준 인연이 있다. 대학 졸업 후 판소리인간문화재 성우향 선생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다. 2년 넘게 촬영을 하면서 북을 치게 돼 ‘북 치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졌다.

▲직접 감독한 다른 작품은 없나.

“독립영화 두레소리와 극영화 파울볼 감독을 맡았다. 흥행은 별로였지만 평점은 잘 받았다(웃음).”

▲현장에서 본 영화산업은 어떠한가.

“예전엔 동네극장이 많았다. 예술영화의 위기는 곧 한국영화의 위기다.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가 판을 치고 있어 안타까워하는 분이 많다. 영화가 다양해야 하는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 돈이 없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게 현실이다.”

▲대구 출신 유명 영화감독이 그리 많지 않다. 대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제작할 생각은 없나. 생각해 놓은 후속 작품은 어떤 게 있나.

“대구고 선배인 이창동 감독이 있지 않은가. 부산이 배경인 국제시장처럼 대구가 배경인 영화도 만들고 싶다. 또 아리랑 등 국악을 소재로 하는 작품과 ‘동학’을 영화화 하고 싶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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