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0돌 한글날…씁쓸한 자화상

  • 최미애
  • |
  • 입력 2015-10-09  |  수정 2015-10-09 09:44  |  발행일 2015-10-09 제1면
‘외계어’에 빠진 자녀들’ 대화는 좀 통하십니까?’
20151009

 

초성 줄임말 유행처럼 확산돼
휴대폰 앱엔 해석기까지 등장

“언어장벽·단절 등 우려되지만
끼리문화의 수단으로 여기니
무작정 야단칠 수도 없어 답답”


스마트폰과 SNS 등을 타고 한글파괴 문화가 어린 학생들에게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한글 반포 569주년, 한글날 90돌을 맞았지만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고 사용해야 할 초·중학생마저 은어와 줄임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어, 한글의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초·중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줄임말은 ‘ㄱㅅ(감사)’ ‘ㅇㅇ(응응)’처럼 초성을 이용하는 것. 온라인에서 금방 입력하고, 인터넷 게시판의 욕설 사용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 영향으로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에는 ‘초성해석기’까지 등장했다. 또 ‘버카충(버스카드충전)’ ‘안물안궁(안 물음, 안 궁금)’ 등 단어 자체를 줄여 사용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었던 외국어를 조합한 국적불명의 말도 어린 학생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 ‘빼도 박도 못하다’와 영어의 ‘can’t(할 수 없다)’를 결합한 ‘빼박캔트’가 그 예다. ‘낫닝겐’은 영어의 ‘Not’과 일본어의 ‘닝겐(사람)’이 합성된 단어다. 줄임말 사용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줄임말을 맞혀보는 ‘줄임말 영역 테스트’라는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다.

초·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 김모씨(49)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메시지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런 말을 끼리문화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언어 장벽으로 인한 세대 단절, 한글의 정체성 상실을 불러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용하지 말라고 아이를 무작정 야단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7월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의뢰해 실시된 만 13세 이상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언어 사용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청소년의 비속어, 신조어 사용’(52.5%)이 지적됐다.

김선정 계명대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는 “초성을 이용한 줄임말은 한국어 특성을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다. 교육 만으로 바른 우리말 사용을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교육현장에서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최미애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