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시대 포항, 주말&여기 어때? .15·(끝)]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호미곶’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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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13   |  발행일 2015-10-13 제17면   |  수정 2015-10-13
한반도 최동단의 거센 바람…그 바람은 虎尾처럼 해안을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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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해맞이광장 앞바다에 우뚝 서 있는 상생의 손. 거친 파도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 진취적이고 힘찬 맹호의 기운을 품은 듯하다. 상생의 손은 육지에는 왼손, 바다에는 오른손이 설치되어 있다.

호미곶은, 최초의 해를 밀어 올리는 바다를 지녔다. 피안과 같은 수평선 위로 높고 맑고 푸른 야생의 하늘이 펼쳐져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영원이다. 영원은, 무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유한하기에 고동치는 가슴으로 무심 속에 감춰진 신성을 믿게 된다. 그러면 바다는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기슭을 오르는 신들의 발걸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최초의 목격처럼 느껴진다.

◆ 호랑이 꼬리, 호미곶

공개산(孔開山) 봉우리가 동쪽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온다. 점점 속도를 줄이며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어지다 이윽고 바다에 닿아 곶을 이룬다. 옛날 고산자 김정호가 일곱 번이나 확인한 육지의 최동단,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 호미곶(虎尾串)이다. 원래는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長串)’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장기갑(長岬)으로 불리다 1995년 장기곶으로 환원되었고, 이후 2001년 12월 호미곶이 되었다.

호미란, 호랑이의 꼬리를 뜻한다. 이곳을 호랑이의 꼬리로 보는 시각은 1908년 최남선이 한반도를 호랑이로 묘사하면서부터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인 ‘소년’ 창간호에 한반도를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생기 있는 범의 모양”이라 했다. 이는 한·일 강제병합을 전후해 일제가 조선반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1903년 한반도의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보인다.


일제 ‘한반도는 토끼’ 비하 전부터
이 지역에는 ‘호미등’ 지명이 존재

등대 건립 계획에 주민들 크게 동요
“호랑이 꼬리 불붙이면 불바다 될 것”

구릉지대 바람은 맹호의 기운 품어
구만리 펼친 보리밭 거침없이 질주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 지역에는 ‘호미등’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1901년 동해 연안을 조사하던 일본의 배가 암초에 걸려 침몰, 전원 몰살하는 사고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의 해안 시설이 미비해 발생한 사고라며 책임을 물었고, 곧 등대 건립이 계획되었다. 이에 인근 주민들은 크게 동요하는데, 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이면 인근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은 최남선의 묘사 이전에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비정하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했던가. 일제는 토끼 꼬리라는 고약한 비하에도 불구하고 호미곶에 쇠말뚝을 박아 그 힘을 끊으려 했다.

◆ 동해를 향해 펼쳐진 해맞이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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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기념관에는 포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관과 화석박물관, 수석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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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광장의 해상탐방로가 수평선을 향해 나아간다. 데크 길을 걷다 뒤돌아보면 눈부신 광장이 영원을 향해 가슴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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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등대는 1908년에 세운 높이 26m의 팔각 등대다. 100년을 넘게 묵묵히 동해를 지키고 있다.

일본의 배를 침몰시킨 호미곶의 해안은 대부분 해식애가 발달한 암석해안이다. 해변에는 사고 발생의 책임을 지고 주민들의 반대 속에 1908년 첫 불을 밝힌 등대가 서있다. 호미곶 등대, 일명 대보등대다. 등대는 프랑스인이 설계한 팔각형의 근대식 건축물로 6층의 각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아름다운 배꽃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등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망망한 바다를 밝혀 동해안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등대 옆에는 1985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국립 등대박물관이 자리한다. 해안의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인 박물관에는 등대와 항해의 역사 및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중 ‘근역강산맹호기상도’라는 제목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가 있다. 지도에는 호랑이의 감아올린 꼬리 끝이 등대의 위치에 자리한다. 등대의 화기를 호랑이의 꼬리가 제어하는 듯하다.

호미곶 등대 옆으로 광장이 펼쳐진다. 동해를 향해 시나브로 걸어가는 땅, 해맞이 광장이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거대한 상생(相生)의 손이다. 육지에 왼손이, 오른손은 바다에서 솟아 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서로 바라본다.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이 외에도 전국 최대 규모의 가마솥과 연오랑 세오녀상, 햇빛 채화기인 천년의 눈동자가 있다. 눈동자 안의 불씨 함에는 호미곶의 ‘새 천년 시작의 불씨’와 함께 변산반도의 ‘20세기의 마지막 불씨’, 남태평양 피지의 ‘지구의 불씨’, 독도의 ‘즈믄해의 불씨’가 합화된 ‘영원의 불씨’가 보관되어 있다.

광장의 가장 안쪽 중앙에는 새천년기념관이 우뚝하다. 건물 전체를 휘감은 원형의 구조물은 장기반도의 곳곳에서 보이는 곶의 랜드마크다. 기념관 안에는 포항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시실과 화석박물관, 수석박물관 등이 자리한다. 옥상은 전망대로 호미곶 일대의 해안과 광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저 광장은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바다에는 해상 탐방로가 수평선을 향해 나아간다. 호미곶의 헤드랜드 전면에 비경으로 흩어져 있는 파식대와 시스택 위에 놓인 목재 데크다. 데크 길에는 호미곶의 특산물인 돌문어 조형물이 실감나게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길의 끝에 한 아이가 서있다. 손가락으로 저 먼 무언가를 가리키며. 거기에는 피안과 같은 수평선, 무심한 영원이 있다. 뒤돌아보면 눈부신 광장이 영원을 향해 가슴을 열고 있다.

◆ 호미곶에 부는 바람

호미곶의 내륙은 산기슭의 구릉지대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호미곶의 세찬 해풍을 맞으며 장엄하게 돌고 있는 곳, 거기에는 바람이 산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청어떼를 토해놓는다는 바다가 있고, 바람이 갯바위를 쪼아 독수리로 조각해 놓은 해변의 구릉이다. 예부터 바람이 세어 쌀농사는 어림없었고, 하여 그 거센 바람 속은 보리밭 천지였다. ‘구만리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못 먹는다’는 동네, 호미곶면사무소가 자리한 언덕 일대가 바람 많은 구만리(九萬里)다.

구만. 아주 멀고 까마득한 곳이란 의미다. 1453년 수양대군은 단종의 보좌 세력이었던 고명대신 황보인·김종서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는다. 계유정난이다. 그때 황보인의 노비 ‘단량’이 황보인의 어린 손자를 물동이에 숨겨 호미곶으로 피신한다. 한양에서 구만리나 떨어진 먼 곳, 구만리라는 지명은 그렇게 생겼다. 구만리 언덕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라 ‘허릿등’이라 했다. 그 바람만큼 보릿고개도 높았다. 보리밭 두렁의 쑥으로 허기를 달래고 칡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면서도 단량은 황보인의 손자를 친자식처럼 키웠던 모양이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이 노비임을 고백했고, 황보인의 후손들은 비석을 세워 대를 잇게 해준 고마움을 대대로 전하고 있다 한다.

이제 구만리의 보리밭은 풍경으로 자리한다. 키워 수확하고 먹지만, 보리밭은 호미곶 바람의 아이콘이다. 보리밭에는 몇 그루 소나무가 흐느낌처럼 서있다. 그 중 세 그루는 수령이 100년에 이르는 고목이다. 10여 년 전 한 그루 소나무가 바람에 꺾여 죽은 자리엔 새 나무가 싱싱하게 크고 있다.

해마다 3월이면 호미곶은 부풀어 올라 보리 싹을 땅 위로 밀어낸다. 4월이면 보리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해풍에 부대끼며, 힘써 자란다. 5월의 호미곶에는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바람에 눕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보리밭은 황금빛으로 변신한다. 그러면 6월 수확이 시작된다. 보리 수확 후 빈 들에는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호미곶의 바람은 고요와 적요를 먼지처럼 일으킨다. 그리고 10월 호미곶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보리밭에는 다음해의 보리가 심겨진다.

글=류혜숙<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영남일보 DB
참고=포항시사, 한국지명유래집, 문화재청, 신한국지리(강석오, 새글사, 1979), 지형학(권혁재, 법문사, 2002)
공동기획 : 포항시


☞여행 정보=포항∼대구 고속도로 포항IC에서 내려 31번 국도를 타고 포스코 지나 포항공항 쪽으로 간다. 동해면 도구해수욕장에서 영일만을 벗한 925번 지방도로 가면 된다. 구만리 보리밭은 5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해 6월 초 즈음 수확한다. 4월에는 호미곶 일대에서 돌문어 축제가 열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해맞이 광장을 중심으로 한민족 해맞이축전이 열린다. 대보항에 위치한 대보해수탕에서의 해수목욕이 인기 높다.

☞먹거리=등대박물관 외벽을 따라 포장마차촌이 형성되어 있다. 월녀의 해물포차에는 해물칼국수와 해물파전이 이름나 있다. 해맞이광장 입구에 있는 까치회식당의 돌문어와 전복죽, 거북 횟집의 물회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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