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지금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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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30   |  발행일 2015-10-30 제33면   |  수정 2015-10-30
호기심에 불지른 우물안의 말머리
20151030
경주시 교동 김유신 장군 옛집 우물터 재매정(財買井) 부근 폐우물에서 출토된 말머리뼈. 이 말머리뼈가 김유신 장군이 사랑했던 천관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유신·천관녀 러브스토리 깃든
천관사지에서 500m 떨어진 곳
말의 머리뼈 3개 한꺼번에 나와
우물서 발굴된 건 국내 첫 사례

대구박물관 내년 2월14일까지
지난 2년 대구경북 발굴 유물展

<김유신이 젊었을 때 어머니 만명 부인은 날마다 엄한 가르침을 더하여 사귀고 노는 것에 망령되지 않도록 훈육했다. 유신이 하루는 천관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만명 부인은 유신과 얼굴을 마주보고 “나는 이미 늙었다. 주야로 네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너는 공명을 세워 군친(君親)의 영광이 돼야 하거늘 지금의 너는 술을 파는 아이와 함께 음방(淫房)에서 유희를 즐기며 술자리를 벌이고 있구나" 하면서 울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유신은 즉시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 앞 문을 지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루는 유신이 피로에 지쳐 술을 마신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김유신이 탄 말은 옛길을 따라가다 잘못해 창가(娼家)에 이르고 말았다. 김유신은 한편으론 기뻤지만 한편으론 원망스러웠다. 천관이 눈물을 흘리면서 나와 유신을 맞이했다. 그러나 유신은 이미 깨달은 바가 있어 타고 온 말을 베고 안장을 버리고 되돌아왔다. 천관이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는데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경주에 천관사(天官寺)가 있는데 그 집이다.>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권21 경주부 고적조)에 나오는 ‘김유신과 천관녀’에 관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이 설화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엔 등장하지 않고 고려시대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에 처음 등장한다. 파한집에는 또 이공승(1099∼1183)이 천관사를 방문한 뒤 지은 시도 나온다. 이어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쓴 ‘해동악부’와 ‘동경잡기’ 고적조 등에도 둘의 러브스토리가 등장한다.

1천500여 년 전 김유신과 천관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깃든 천관사터(사적 제340호)는 경주시 교동 오릉의 동쪽 도당산 기슭에 있다.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은 모두 경작지로 변하고 당시의 석탑부재와 기와편 만이 곳곳에 남아 있다. 천관사는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자르고 천관녀와 이별한 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최고 관직인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올라 천관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라는 설과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천관사에서 남천을 건너 500m쯤 가면 김유신이 살던 옛 집터와 우물인 ‘재매정(財買井·사적 제246호)’이 있다. 재매정에는 김유신이 백제와 일전을 앞두고 집 앞에 이르자 집안에 들어가지 않고 우물의 물맛을 본 뒤 “우리 집 물맛이 옛날 그대로이니 집안에 별일이 없겠구나” 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013년 7월~2014년 12월까지 재매정 주변에 대한 유적발굴을 실시했다. 그 결과 도로 3기, 건물지 51동, 우물 17기 등 총133기의 유구를 확인했다. 특히 우물에서 우물제사와 관련한 ‘말의 머리뼈’가 처음으로 나왔다. 이재현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신라인은 인간의 수명·건강과 직결된 우물을 시조신이나 호국신이 탄생한 곳 또는 용신이 거주하는 용궁세계와 상통하는 성소로 여겼다. 평소엔 식수를 획득하는 공간으로 이용했지만 경우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제의(祭儀) 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말과 소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많이 발굴되는데 우물 안에서 말 머리뼈가 나온 건 특이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또 “말머리뼈가 완전한 상태로 우물에서 나온 건 지금까지 처음이며, 고대 신라인이 우물 밖에서 제사를 지낸 뒤 말머리 고기를 먹고 유골만 우물 안에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우물은 전염병 등으로 폐쇄되기도 하지만 경주지역 우물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립되는 시기에 주로 폐쇄됐다”고 밝혔다.

소설가 정만진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 자문위원은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러브스토리에서 말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김유신은 사랑하는 여인 천관녀가 보는 앞에서 애마의 목을 잘랐다. 이는 애마가 천관녀의 목을 대신해 잘렸다는 것을 뜻한다. 우물 안에서 말의 머리뼈가 출토된 사실로 짐작해 볼 때 김유신이 죄 없는 애마와 천관녀를 신원(伸寃)하기 위해 다른 말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본다”며 소설가다운 상상력을 펼쳤다.

대구·경북의 10개 문화재 조사 연구기관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흙에서 찾은 영원한 삶 2015’를 주제로 지난 2년간 대구·경북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내년 2월14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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