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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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1   |  발행일 2015-12-01 제13면   |  수정 2015-12-01
1980년대 어느날, 닭공급업자와 상인이 원종닭 양념 버무려 구워봤더니…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
의흥시장 닭불고기를 숯불에 굽고 있다. 닭불고기는 직화로 구워먹어야 제맛이지만, 특유의 쫄깃한 식감 덕분에 프라이팬에 볶아먹어도 좋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
군위군 의흥면 의흥시장에서 닭집을 운영하는 이점선씨가 닭불고기를 만들기 위해 닭을 손질하고 있다. 원래는 여름 휴가철에 많이 팔렸지만, 요즘은 동계캠핑족 증가로 겨울철에도 잘 팔린다고 한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
의흥시장의 후라이드 치킨. 닭고기를 소금에 절이지 않아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
의흥시장 입구의 모습. 전형적인 시골장터로 5일장이 선다.



스토리브리핑

군위·의성군 등 경북 중부지역은 고기를 직접 불에 구워먹는 불고기가 발전했다. 하루 일과에 지친 농민과 노동자들이 돼지고기를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에 버무려 구워먹곤 했다. 솔잎으로 불을 피운 화로에 무쇠풍로로 바람을 불어넣어가며 구운 불고기의 풍미는 40대 이상의 해당지역 출신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군위군 의흥면의 경우 돼지보다 닭불고기가 더 유명하다. 돼지불고기의 조리법을 따랐지만 닭고기만의 맛과 육질 덕분에 특색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야기가 있는 경북 맛 기행’ 4편은 군위 의흥시장 닭불고기에 관한 이야기다.

종자용 닭 사용…양 많고 식감 뛰어나
지방층 적당해 조리하면 맛 깊이 더해
외지인에 입소문, 사계절 전국서 주문
양념된 상태로만 판매 “숯불서 맛 최고”

소금으로 간 맞추지 않은 치킨도 ‘별미’
통닭의 풍미 그대로 “옛날 맛으로의 여행”


#1.한때 번성했던 의흥시장

군위군 의흥면 의흥시장은 5일장이 서는 전형적인 시골장터다. 매달 5·10·15·20·25·30일이 장날이다. 시장을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군위 토박이로 살아온 노년층 주민이 대부분이다. 장날을 제외하고는 늘 한적한 풍경에 익숙해진 곳이지만 의흥시장이 위치한 의흥면은 한때 ‘면(面)’이 아닌 ‘군(郡)’ 소재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1895년(고종 32년), 의흥현이 의흥군으로 승격됐기 때문이다.

1914년 4월1일 의흥군이 군위군에 편입되면서 군소재지의 지위는 내려놓았지만 의흥시장은 번성했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흥장날은 인파로 북적였다. 군위군 일대의 농산물이 모여들었고 목청껏 손님을 부르는 장꾼의 목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1990년대 이후 의흥시장의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급격한 도시화와 농촌인구 감소 탓에 의흥시장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의흥시장의 자랑이었던 우시장은 폐쇄된 지 오래인 데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수도 예전보다 적다. 그나마 장날이 되면 시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군위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값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늘과 양파를 비롯한 농산물과 과일 등이 의흥시장의 주산물이다.

의흥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닭불고기’라고 적힌 현수막이 여러 곳에서 펄럭이는 것이다. 시장 초입에서 슬쩍 봐도 4~5개는 걸린 듯하다. 이는 의흥시장 내에 위치한 닭집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특히 의흥시장내 한 닭집은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의흥면소재지에는 시장 내 닭집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치킨집도 있지만 여전히 토종이 강세다.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가 평정하다시피 한 도시지역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풍경이 연출된 이유는 바로 메뉴의 차이다. 시장 내 닭집들의 주메뉴는 닭불고기인데 시장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해당 닭집들은 일반적인 후라이드 치킨도 판매하지만 생고기에 양념만 버무린 닭불고기를 판매해 나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큰 생닭으로 포를 뜨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은 양념을 넣는다. 돼지불고기 양념과 비슷한 빨간 양념을 닭고기와 버무리면 의흥시장 특유의 닭불고기 완제품(?)이 탄생한다. 익히지 않은 채 팔기 때문에 소비자는 직접 불고기를 볶거나 구워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의흥시장 닭불고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춘천닭갈비와는 많이 다르다. 춘천닭갈비는 커다란 팬 위에 갖은 채소를 넣고 양념해 볶는 것이지만, 닭불고기는 양념에 버무린 닭을 숯불에 구워먹는 것이 최고의 조리법이다. 물론 팬에 볶아먹어도 되지만 불맛이 더해져야 특유의 풍미와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캠퍼들의 먹을거리로 거듭난 추억의 닭불고기

집집마다 가격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의흥시장 닭불고기에 주로 쓰는 닭은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일반 육계와 다르다. 의흥시장에서 닭집을 운영하는 김상섭씨(58)의 경우 “닭불고기에는 ‘원종닭’을 쓴다”고 설명했다. ‘원종닭’의 사전적 의미는 ‘닭을 번식시킬 때 종자로 쓰는 품종이 좋은 닭’이다. 병아리 부화 전용의 알만 낳는 닭인 것이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냥 원종닭을 쓰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져 도축되는 원종닭만 사용한다고 한다. 원종닭은 오랜기간 계란만 생산하다 도축된 ‘묵은닭’(일명 노계)과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일반적인 육계는 너무 부드러워 씹는 맛이 없고 묵은닭의 경우 너무 질겨 먹기 힘들지만 원종닭의 육질은 둘을 오묘하게 합쳐 놓았다. 몸집이 커 양이 많고,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 식감이 좋으며, 지방층이 적당해 조리를 하면 그 풍미가 남다르다.

원종닭의 주 공급처는 충남 서산 도계장이다. 원종닭 공급량이 워낙 적고 그 생산지 대부분이 경기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먼 곳에서 공급받는다. 반면 원종닭의 수요처는 군위군 의흥면 등 일부지역에 한정돼 있다. 이런 이유로 원종닭 요리는 일반인이 잘 접할 수 없다고 한다.

의흥시장 닭불고기는 우연한 기회에 생겨났다. 의흥시장에는 원래 생닭과 튀김닭을 파는 집이 많았다. 1980년대 어느 날 시장 상인과 닭 공급업자가 우연히 원종닭을 양념해 구워먹고서는 그 맛과 식감에 매료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의흥시장에는 닭불고기를 파는 닭집이 속속 생겨났다.

의흥시장에서 26년째 닭불고기를 판매해 온 김상섭씨는 닭불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김씨는 “전국 어디서도 이런 닭(원종닭) 요리는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닭고기 도매상과의 오랜 인연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90년대 초까지 의흥시장의 닭불고기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김씨는 “닭불고기를 팔기 시작하면서 일이 커졌다. 오전 4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할 정도였다”며 20여년 전을 떠올렸다.

현재는 의흥면 주민보다 외지인들이 닭불고기를 더 찾고 있다. 택배주문 비중이 높으며, 여름철 행락객의 수요가 많다. 요즘은 겨울철 동계캠핑족 증가로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의흥시장 닭불고기가 시나브로 널리 알려진 데는 공직자 사이의 입소문도 한몫했다. 군위군에서 근무했던 공무원 일부는 타 지역 전출 후에도 닭불고기 맛을 잊지 못했다. 실제로 군위경찰서에서 근무했던 모 경찰청의 한 간부경찰관은 택배로 받은 의흥시장 닭불고기를 대구의 소고기 식당에서 구워먹다 식당 주인에게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의흥시장의 후라이드 치킨도 별미다. 푸짐한 데다 예전에 먹던 ‘통닭’의 맛이다. 남편 김씨와 함께 닭집을 운영해온 이점선씨(53)는 “치킨용 닭고기에는 소금 간을 맞추는 ‘염제’를 하지 않는다. 조금 싱겁다는 사람도 있지만, 염제를 하면 육질이 푸석해지고 튀겼을 때 단단해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손님 반응도 좋다. 지난달 26일 의흥시장을 찾은 박금자씨(여·65·대구시)는 “우리는 ‘치킨’이 아니고 ‘통닭’이라 부른다. 의흥시장 닭튀김은 옛날 맛이라 인근을 지날 때마다 찾는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글·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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