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수저계급론’의 현실화

  • 박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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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1   |  발행일 2015-12-01 제38면   |  수정 2015-12-01
20151201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
상속·증여가 42%나 차지…
같은 의대·로스쿨 다녀도
부모지위 따라 진로 갈려…
가난 대물림은 국가 과제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황허(黃河)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었다. 인근에 물길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었고 그 아래엔 큰 물고기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다수의 고기들은 폭포를 오르지 못했으며 만일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됐다고 한다. 이것이 ‘등용문(登龍門)’의 유래가 됐다.

이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개천에선 이무기도 안 나는 시대가 됐다. 자신의 노력과 상관 없이 계층, 즉 신분상승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다.

인터넷상에는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 하는 수저계급론이 유행이다. 가구 자산과 수입을 기준으로 크게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로 나뉜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하위 계층은 ‘흙수저’, 최상위 계층은 ‘다이아몬드 수저’로 불린다. 금수저는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수입 2억원 이상, 은수저는 자산 10억원 또는 연수입 8천만원 이상, 동수저는 자산 5억원 또는 연 수입 5천500만원 이상을 말한다. 최하위 계층인 자산 5천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천만원 미만은 흙수저로 불리고, 전체의 0.1%인 최상위 계층(자산 30억원, 연수입 3억원 이상)은 다이아몬드 수저로 통한다.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수저계급론이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현실로 드러난 연구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김낙년 동국대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사회에서 상속·증여가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9.0%로 높아졌고 2000년대에는 42.0%까지 치솟았다. 자산 형성에서 자신의 노력보다는 상속, 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짐을 보여준 연구결과다. 국민소득에서 연간 상속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1990년대 연평균 5.5%에서 2000년대 6.5%로, 2010∼2013년 평균은 8.2%로 크게 뛰었다.

부와 명예의 세습 정도가 갈수록 심해짐은 주위에서 직접 보거나 뉴스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은 됐다. 같은 대학의 의과대학에 다녀도 부모의 지위에 따라 신분이 갈리고, 로스쿨에 진학해도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일찌감치 진로가 정해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하지만 막상 부의 되물림이 수치로 현실화되고 보니 기분이 영 개운찮다. 향후 노년인구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저하되면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할게 불보듯 뻔하다.

이처럼 우리사회가 망국적인 부의 되물림이 점점 심해지는 중병에 걸렸는데도 정부나 정치권이 심각성이나 절박함을 덜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의 저서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에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권력자들에 의해 가난의 민낯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온갖 논리와 장치들이 작동된다고 주장한다. 부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불평등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몰아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권력자들은 불평등과 가난이라는 문제를 모두 경제라는 테두리 안에 가둔다는 것이다.

젊은층 사이에선 ‘88만원(20대 비정규직 월급)세대’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세대’ ‘엔포(모든 것 포기)세대’ 같은 말이 나돈 지 오래다. 노력해도 바뀌는 것이 별로 없다, 즉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내포하고 있다.

가난이 개인의 문제냐, 국가의 문제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개인의 노력과 상관 없이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진다면 가난은 결국 국가적 문제, 즉 사회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 역시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다.

박윤규 북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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