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리틀 보이·파더 앤 도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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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11   |  발행일 2015-12-11 제42면   |  수정 2015-12-11

리틀 보이
동심 가득한 페퍼와 그 감정을 지켜주려는 아빠

20151211

캘리포니아의 작고 평화로운 어촌 오헤어. 이곳에 살고 있는 페퍼(제이콥 살바티)는 작은 키 때문에 ‘리틀 보이’라고 놀림받는 여덟 살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구 같은 아빠 제임스(마이클 래파포트)가 있어 외롭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스가 평발이라 군대에 갈 수 없는 장남을 대신해 전쟁에 참전한다. 그리고 얼마 후 가족은 그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누구보다 상심이 큰 페퍼. 마술쇼에 갔다가 우연히 자신에게 물건을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그는 이 힘으로 아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2차세계대전
전쟁 잔혹함 아닌 사랑과 희망이 기본 정서
제이콥, 오디션 참가한 형 따라 갔다가 발탁


‘리틀 보이’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2차 세계대전의 단면이지만 영화의 주된 정서는 전쟁의 잔혹함이 아닌 순수함이 전해주는 가슴 따뜻한 사랑과 희망이다.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지녔다고 믿는 페퍼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여기에 담긴다. 작은 키 때문에 의기소침한 페퍼에게 아빠 제임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심어준 멘토였다. 또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로, 바다를 지배하는 해적으로 늘 함께 멋진 모험을 떠나는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이기도 했다. 판타지와 현실의 접점이 이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순수한 동심으로 가득한 페퍼와 그 감정을 지켜주려 한 아빠 제임스로부터 기인한다.

중반 이후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건 올리버 신부(톰 윌킨슨)와 하시모토(캐리 히로유키 타카와)다. 아빠와는 또 다른 멘토로 자리한 두 사람은 아빠를 되찾겠다는 페퍼의 믿음에 힘을 보탠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다면 능히 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 올리버 신부가 믿음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했다면, 하시모토는 그 믿음을 구체화시키는 파트너이자 친구로서 기능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페퍼의 순수함을 강한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담은 ‘벨라’(2009)에 이어 알레한드로 몬테베르드 감독은 믿음이라는 가치의 중요성과 그것이 가진 놀라운 힘을 되짚는다. 이를 통해 단순한 약자의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희망과 용기가 담긴 드라마로 이 영화를 완성했다. 이제 페퍼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특별한 능력(?)으로 전쟁을 끝내려 한다. 그래야만 아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페퍼는 결국 강한 믿음으로 산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다. 기적 같은 이 장면은 실제로 히로시마 원폭 투하 3개월 전 LA에서 발생했던 지진이다. 이는 기적이 필요했던 시기, 믿음이 없던 어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고 관객 역시 순간 이들과 동화돼 페퍼의 기적을 바라는 심정이 된다.

영화는 이처럼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른들의 동심을 자극하고 순수의 가치를 다시 일깨운다. 그 점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리틀 보이’는 신념의 본질과 우연적 사건들의 적절한 균형 그리고 이를 촘촘히 채워간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깊게 다가온다. 특히 페퍼를 연기한 제이콥 살바티를 주목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오디션 참가자인 형을 따라갔다가 발탁됐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코드명이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파더 앤 도터
아빠와의 추억에 집착하는 케이티의 사랑의 여로

20151211

어린 시절 아빠 제이크(러셀 크로)와의 가슴 아픈 이별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케이티(아만다 사이프리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려 “마음속이 텅 비어 있는 우물 같다”는 그녀는 이제 어느 누구도 쉽게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녀에게 프리랜서 기자인 카메론(아론 폴)이 다가온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소설가인 아빠의 팬을 자처한 그는 이후 케이티의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고 감싸준다. 케이티 역시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두렵고 불안한 감정이 자리한다.

‘파더 앤 도터’는 사랑에 의한 아픔과 상처도 결국 사랑의 힘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성인이 된 현재의 케이티와 25년 전 어린 시절의 케이티(카일리 로저스)의 서사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사실 ‘파더 앤 도터’는 이야기적으로는 새로울 건 없다. 사랑을 일궈가는 케이티와 카메론이 멜로드라마의 익숙한 구조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면, 딸 케이티를 향한 아빠 제이크의 부성애 역시 익숙한 코드 안에 머문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는 건 ‘행복을 찾아서’(2006)를 통해 심도 있게 부성애를 탐구했던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보다 깊어진 감성과 정공법적 이야기 접근 방식 때문이다.


사랑의 가치·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성숙한 내면 연기
천재아역 카일리 로저스 영화 완성도 높여


인물들의 사랑과 상처가 클수록 서사적 울림과 감정도 큰 법인데 ‘파더 앤 도터’는 익숙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이를 공략한다. 역시나 가장 궁금한 건 케이티의 감정과 심리상태다. 흥미롭게도 케이티는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스스로를 위무하려는 의지가 읽히지만 케이티의 마음속 공허함과 두려움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그럴 때면 그녀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남성편력에 집착함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카메론과의 순조로운 만남이 지속되고 있는 순간에도 예외 없다.

사실 케이티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짧지만 행복했던 아빠와의 추억이다. 케이티를 향한 제이크의 가슴 절절한 애틋함과 희생에 가까운 부성애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그녀에게 누구보다 커다란 위안과 힘이 됐다. 아빠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던 이유다. 그렇게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케이티에게 홀로 잠들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감으로 다가왔고 이는 그녀가 사랑의 영속성을 믿지 않게 된 이유로 작용했다.

‘파더 앤 도터’는 그런 케이티가 다시 사랑을 알아가는 감정변화를 조용히 응시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부성애의 강조만이 아닌 사랑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사랑에 두렵고 혼란스러운 케이티 역으로 한층 성숙하고 깊어진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러셀 크로 역시 ‘워터 디바이너’(2015)에 이어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부성애 연기로 또 한번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어린 시절의 사랑스럽고 밝은 케이티로 변신한 카일리 로저스는 천재 아역이라 불릴 만한 예사롭지 않은 연기로 이 영화의 완성도에 한몫했다. 덕분에 사랑을 향한 이들의 여정이 더없이 가치있고 아름답게 담길 수 있었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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