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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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1   |  발행일 2016-01-11 제30면   |  수정 2016-01-11
20160111

수출액 세계6위 국가가
10년째 자살률 1위인건
어느 쪽을 향하는가보다
어디 있는가를 중시한 탓
서로 손 내밀고 함께가야

지난 주말 동촌 금호강변 산책길을 두어 시간 걸었다. 겨울이지만 혼자 또는 삼삼오오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이 겨울에 저 사람들은 윤동주 시인의 ‘길’처럼 담 저쪽에 남아있는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길은 사람이나 동물, 자동차 등이 지나가는 일정한 공간으로서 수단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평화의 길, 스승의 길과 같이 개인이나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 목적이나 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동수단으로서의 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솔길을, 그 다음에는 바닷길과 하늘길을 만들었고, 이미 우주를 향하여 길을 내어간 지도 오래다.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점점 빨리, 멀리 이동하면서 상호교류를 통하여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막상 방향이나 목적으로서의 길,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지도 모르고 가거나 중도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한국무역협회가 IMF의 DOTS 무역통계를 인용하여 수록한 2014년도 세계 국가별 무역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액 규모는 세계 6위이고 전체 무역규모가 무려 1조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약 29명에 이르러 10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살증가율도 1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의학자이자 문필가인 올리버 웬델 홈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느 쪽’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쪽’을 향해 가는지보다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훨씬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률 및 자살증가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우울감과 외로움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며 다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몇 해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남해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중 한 친구가 다리가 조금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친구를 배려한다는 마음에 걸음을 천천히 움직였고 구경할 곳도 몇 개 줄여서 일정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그런데 천천히 걷다 보니 남해의 멋진 다도해 풍경뿐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산비탈 바윗돌 한 덩어리의 아름다움이 봄날의 햇살처럼 가슴 안쪽까지 스며들었고 느슨한 일정에 마음이 한결 평온하였다. 결국 우리가 그 친구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친구 덕분에 우리는 평안한 마음으로 더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느림의 미학인가.

새해가 시작되고 각자의 소망들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다짐으로 길을 나선다. 우리는 혼자 있기 위하여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하여 길을 만든 것이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만난다는 희망을 가지고 걷는 길에서 함께 손을 잡고 갈 사람이 있다면 비록 험하고 거친 길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걷는 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친 이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떤가.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아픔 하나쯤은 품고 있으니까.

정호승 시인의 ‘봄 길’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스스로 사랑이 되어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김형곤 법무법인 중원 구성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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