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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최경창과 홍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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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봉규기자
  •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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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에 새잎 나거든

‘버들가지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천리길도 못 막은 戀情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부분). 이른 봄날에 한 선비가 나귀를 타고 가다 버드나무 가지 위 꾀꼬리를 바라보는 그림이다. 버드나무는 옛 사람들이 이별할 때 그 가지를 꺾어 떠나가는 임에게 주던 습속으로 인해 이별을 상징하기도 했다. 홍랑도 최경창과 이별할 때 길가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보내며 곁에 심어두고 자신을 보듯이 하기를 바랐다.
홍랑의 시를 새긴 홍랑가비(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적지 않은 옛 선비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을 했고, 그들의 사랑이 남긴 감동적인 사연과 주옥같은 시 작품들은 후세에 의해 길이 회자되고 있다. 이런 선비들의 사랑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야사 등을 취재해 정리하고, 그들이 남긴 관련 유적 등을 찾아 찍은 관련 사진도 함께 싣는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기생 홍랑(洪娘)이 연인인 고죽(孤竹) 최경창(1539~83)과 이별하며 지은 한글 시다. 연인을 떠나보내는 애절한 마음을 버드나무 가지를 빌려 표현한 이 작품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시로 꼽힌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작품이다. 당대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선비인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 이야기는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흠뻑 내려주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연을 담고 있다.

첫 만남부터 詩로 마음 통한 두사람
애달픈 이별도 아름다운 詩로 전해

◆첫 만남에서 최경창의 시를 읊은 홍랑

천재 시인 최경창은 1568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73년 함경도 북평사(北評事 : 병마절도사의 문관 보좌관으로 함경도와 평안도에 파견된 병마평사의 약칭)로 부임하면서 함경도 홍원 태생의 기생인 홍랑과 인연을 맺게 된다.

최경창은 1573년 가을, 서른넷의 나이로 북평사에 임명되어 함경도 경성에 부임했다. 그가 부임한 경성은 조선의 변방으로 고려시대부터 여진족을 비롯해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던 곳이다. 국방의 요지였다. 이런 중요한 군사 요충지인 변방지역에 관리가 부임할 때는 처자식을 데려가지 않고 혼자 가는 것이 당시 원칙이었다.

홀로 천 리 멀리 떨어져 생활하려면 고달픔과 외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달래주는 사람이 바로 관청에 소속된 기생들이다. 기생들은 이들을 위해 빨래나 바느질은 물론, 아내 역할까지 하기도 했다.

관리가 부임하면 관청 소속 기생들을 소집해 점검하는 ‘점고(點考)’가 진행된다. 최경창도 북평사로 부임한 후 경성 관아의 기생들이 인사를 올리는 ‘점고’를 받게 되었다. 최경창은 이날 저녁 연회에서 홍랑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최경창은 문장과 학문 뿐만 아니라 서화에도 뛰어났고, 악기에도 능했다. 어릴 적 영암에 왜구들이 쳐들어왔을 때 구슬픈 피리소리로 왜구들의 마음을 움직여 물러가게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특히 약관의 나이 때 송강 정철, 구봉 송익필 등 당대의 대가 시인들과 시회(詩會)를 하면서 그의 문재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조선 팔문장(八文章)’에 들어갈 정도로 인정받았다. 시 중에서도 당시(唐詩)에 뛰어나 조선 팔문장 중 옥봉 백광훈, 손곡 이달과 함께 ‘3당시인(三唐詩人)’으로 꼽혔다. 이런 최경창이 머나먼 변방지역에서 정신적으로 강력하게 이끌리는 여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날 기생 점고에 이어 최경창의 부임 축하 연회가 열렸다. 연회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기생으로서 재능과 미모에다 문학적 소양까지 겸비한 홍랑이 시 한 수를 음률에 맞춰 읊었다. 그런데 홍랑이 읊은 시는 놀랍게도 바로 최경창의 작품이었다. 최경창은 시창을 다 듣고는 내심 놀라워하면서 홍랑에게 넌지시 읊은 시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누구의 시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홍랑은 “고죽 선생의 시인데 그 분의 시를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최경창은 자신이 그 시를 지은 주인공임을 밝혔다. 홍랑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최경창과 홍랑은 정신적으로 잘 맞는 도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또 사랑도 나눌 수 있는 처지가 되었기에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홍랑이 최경창의 군막에까지 드나들 정도로 두 사람은 잠시도 서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6개월 만의 이별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난 이듬해 봄, 두 사람에게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최경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깊이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홍랑은 특히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몸살을 앓아야 했다. 최경창이 한양으로 떠나던 날 홍랑은 최경창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기 위해 경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쌍성(雙城)까지 따라갔다. 더 따라가고 싶었으나 멈춰서야 했다. 다른 지역으로 벗어날 수 없는 관기였기에 홍랑은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기생은 관할 관아에 속해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도록 규제를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너무나 빨리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선 홍랑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태우는 일밖에 없었다.

홍랑은 최경창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돌아서야만 했다. 최경창도 눈물을 삼키며 다음을 기약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최경창을 보내고 돌아올 때, 함흥 70리 밖에 있는 함관령(咸關嶺)에 이르자 날은 어두워지는데 비까지 내렸다. 그곳에 잠시 머물면서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담은 이 작품과 함께 길가의 버들을 꺾어 최경창에게 보냈다.

최경창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지어 보냈다.’ 최경창은 나중에 홍랑의 이 시조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번방곡(飜方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번방곡은 아래와 같다.



버들가지 꺾어서 천 리 먼 곳 임에게 보내니(折楊柳寄與千里人)/나를 위해 시험 삼아 뜰 앞에 심어 두고 보세요(爲我試向庭前種)/행여 하룻밤 지나 새잎 돋아나면 아세요(須知一夜新生葉)/초췌하고 수심 어린 눈썹은 첩의 몸인 줄을(憔悴愁眉是妾身)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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