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귀향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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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11   |  발행일 2016-03-11 제23면   |  수정 2016-03-11
[조정래 칼럼] 귀향

몸은 돌아왔지만 정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 돌아온 몸조차 온전한 귀국이 아니다. 존재마저 숨겼던 몸이고, 여전히 부정당하는 몸이고, 기억 속에서도 지워질 몸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다. 영화 ‘귀향’은 미귀(未歸)의 할머니들과 돌아와도 돌아오지 못한 할머니들의 원혼(寃魂)과 몸의 완전한 귀환을 테마로 한, 한바탕의 ‘귀향굿’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치를 떨며 분격했다.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하나’라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은 여실했다. 과연 상상의 지옥도보다 더한 생지옥이었다. 필설과 기록으로 혹은 서사로 형용하지 못할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지옥 경험을 어떻게 재현하나 궁금했는데, 조정래 감독의 발상은 기발했다. 그래,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민속과 무속이 있었지. 영매(靈媒)의 나비와 만신의 접신이란 장치를 통해 우리의 정서와 감각은 자연스레 격발되고 고양된다. 신령을 통해 대신 말하게 하거나 혹은 대를 건너 뛰어 손녀에게 비의(秘意)를 전하는 방식이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실감을 준다. 장황한 서술과 묘사가 무용하다. 역시 역사적 사실과 기록은 이렇게 숨을 불어넣기 전에는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한 것인가.

영화 관람을 결심을 하기까지 심사는 착잡했다. 의무감과 부채감이 먼저 자리했다. 개봉한 지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100만 관객을 동원한 비결이 궁금했고, 혹여 친구 따라 강남가고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쏠림과 몰림의 반사이익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경험과 기억의 힘이 결정적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30대 초반 햇병아리 기자시절, 나는 대구 서구에 거주하던 위안부 할머니를 어렵사리 취재하게 됐다. 당시는 위안부 피해신고를 받았지만 쉬쉬 하던 사회 분위기 탓에 사회문제로 부상하기 이전이었다. 기자와 할머니는 서로 서먹서먹했고 지레 주눅이 들어 서로 가슴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못내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고, 이후 위안부 할머니를 대면하는 방식도 회피와 외면 일색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며 그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바윗덩어리를 내려 놓았다. 이제 그 할머니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와 위안부 할머니 사이의 가슴과 가슴, 몸과 몸의 소통이 문제였던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귀향 길을 닦았고, 그건 바로 우리 안의 위안부 할머니와 교통하는 길이기도 했다. 성노예로서 위안부의 참상을 보여주는 조 감독은 분노의 렌즈를 일본보다는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나는 보았다. 위안부 할머니, 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불편의 회피를 들여다 보고 드러내려는 의도. 일본에 유린 당한 위안부 할머니가 바로 우리의 산하 대지이고,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 그럼에도 그들을 타자화하고 있는 우리 내면의 비겁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다.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영화이기에 메시지 전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위안부 할머니의 삶은 환향녀의 역사적 존재로까지 의미를 확장한다. 백의민족이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한마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고, 무력하고 비겁했던 사대부 권력자들의 위선을 감추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용서하지 못한 자가당착의 역사다. 용서는 강자의 권한이다. 약자의 용서는 굴욕과 굴종의 자기합리화이고 변명이다. 용서의 힘은 자기 반성과 성찰에서 길러진다.

다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역사다. 베트남에 가면 곳곳에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다.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등의 섬뜩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조정래 감독은 위안부 소녀상과 함께 내 가슴에 증오비를 세워 놓았다. 위안부 합의는 무효다. 추악한 성노예의 적나라한 역사 앞에, 강제 동원의 기록은 찾기 힘들다는 등 ‘기억의 전쟁’을 발발하는 저 후안무치를 응징하는 데에는 만대를 날아다닐 저 나비, ‘불멸의 기억’만이 원자폭탄일 터. 귀향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잊지도 말고 용서도 하지 말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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