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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지(虎鳴池·경산시 남산면 소재)에 도착해 내려다본 남곡리의 복사꽃밭 풍경은 반곡리에서 시작해 조곡리에서 꽃을 피우는 복사꽃 경산 무릉도원의 화룡점정 같았다(위). 해 떨어지고 밤이 되니 복사꽃 진 호명지 연못가에 호랑이가 놀다갈 밤풍경이 찾아왔다. |
우연히 본 호명지 사진에 끌려 나선 길
복사꽃 포토바이킹 코스 개척 라이딩
금호강자전거길서 종일 달려 저녁 도착
첩첩산중 삼성사의 이천지 흡사 仙境
반곡지 가다 난 펑크 또다른 재미 선사
저수지 만들 때 호랑이 울었단 호명지
고생 많았지만 새 자전거길 닦은 보람
꽃의 계절 4월. 기후 온난화의 징표인가? 올 봄 꽃들은 빨리 개화한 만큼 단명이다. 동구 지저동 벚꽃 터널, 수성못 벚꽃 구경은 비바람에 날려갔다. 봄비는 알려지지 않은 꽃의 포식자. 대구에 그 많던 벚꽃들은 봄비 한방에 시들해졌다. 꽃이 지면 다음 봄을 기다려야 한다.
꽃비를 내리지 못하고 사라진 벚꽃의 아쉬움을 대체할 대안을 찾아보았다. 어느 페이스북 지인의 포스팅에 호명지 사진이 그럴싸해 보였다. 호명지(虎鳴池)는 마을 뒤쪽의 용산과 마을 앞쪽의 소룡산을 막아서 만든 못인데, 저수지 건립 당시 호랑이가 울었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들은 5만9천여㎡(1만8천여평) 크기의 호명지.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아직은 우포늪이나 반곡지처럼 베스트컷이 나온 곳은 아니었다.
◆포토바이킹 처녀지, 호명지 가는 길
호명지로 가는 라이딩 정보는 없었다. 포토바이킹 처녀지로 개척해 볼 요량으로 안전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지점을 찍어 동선을 그었다. 머리 속에 숙지한 중요 지형·지물 이름은 여천리, 대구한의대, 상대온천, 반곡지, 조곡서원, 성남교, 연하3교, 갈지교차로, 갈지마을회관, 남곡길. 처음처럼 새로운 길이었으나 자전거 여행길을 하나 개척하는 개과를 올린 라이딩이었다.
3월의 반곡지라이딩은 오후에 출발해 어둠 속에서 만나, 후회 막심이었다. 그래서 호명지로 가는 길은 오전부터 서둘렀다.
금호강자전거길은 가천잠수교 구간을 지나 범안대교,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금호강교가 교차하는 매호동에 가면 끊겨버린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오락가락하며 길을 찾게 된다. 매호교를 건넜다 성동교 서쪽 남천서편 둑방길로 들어가 경산 방향으로 주행하면 욱수천펌프장과 만난다. 거기서부터 남천서편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영대교를 지나고 백옥교 밑을 지나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로 다리 위로 올라가 건너면 대신대와 대구한의대로 가는 삼성현로가 나온다. 백옥교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대구한의대로 들어가면 대형 버스들이 서있는 주차장 밑으로 차량진입을 막는 바리케이트가 쳐있다. 자전거는 차량 바리케이트를 간단하게 프리패스할 수 있다. 유곡동 여천리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다. 이 길이 지름길일지 방황길일지 모르고 농부의 말씀대로 다운힐. 지름길을 잘 탄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지도검색을 열심히 했으나 지름길을 탈 줄 몰라 생소했다. 좌표는 있으나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이럴 때는 온갖 지식을 동원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 잘못된 선택에는 고생 좀 더 하면 되고, 되돌아오면 산공부가 된다는 심정으로 전진 또 전진. 후진하더라도 전진. 유곡동 마을 안으로 향하니 눈에 익은 불광사 안내판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옆에 나란히 붙은 초개사는 호기심을 유발했다. 초개사? 갈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 집으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삼국유사’에 원효대사가 출가한 이후 살던 집을 바쳐서 절로 삼은 그 이름을 한 초개사다.
유곡동 끝 갈림길에서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산기슭 과수원집 산 옆으로 난 농작로를 따라가는데 ‘길이 없다’는 안내판이 진입금지를 알렸다. 곧바로 산길을 더 올라가니 농부의 길은 끝나고, 이름 모를 산세계가 열렸다. 사람의 마을을 벗어나니 잠시 까마득한 첩첩산중이었다. 다시 어디서 인도를 만날 것인가. 산속에서 길 잃은 나그네에겐 무덤들이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무덤을 찾아오는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딘가에서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열릴 것으로 믿고 깜깜이 산속 행보를 했다.
◆오래된 마을사람이 전해준 지름길
나무 사이로 절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 하늘이 보였다. 길 없는 길에서 부처님을 만난 듯한! 작아서 아름다워 보이는 산사 풍경에 이끌려 가니 작은 연못이 나왔다. 때마침 흰색 포터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연못 이름을 물었더니 ‘이천지’라고 했다. 등산이 아니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삼성산 자락 삼성사 아래 못가에서는 한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한 여성이 우쿨렐레 소리로 들리는 반주에 맞춰 단순반복적인 리듬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4월의 선경(仙境)이었다.
다음 경유지인 반곡지가 있는 반곡리를 향해 출발하려고 하는데 뒤타이어 상태가 이상했다. 펑크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물이 없어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니 ‘어봉지길’이라는 도로명주소 안내판이 나왔다. 어봉지길 268번 농가에 물대야가 보여 펑크를 때우고 싶었으나 주인이 없어 실례를 포기하고 달렸다.
어봉지길을 지나니 여천길 도로주소판이 나왔다. 여천경로회관이 있는 삼거리에서 청색 포터를 탄 농부를 만나 반곡지 가는 지름길을 물으니, “한의대 주차장 밑으로 차가 못 다니게 막아놓은 샛길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이 일대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건 ‘알파고’도 아니고 포털사이트 검색엔진도 아닌, 오래된 마을사람이었다.
갈피를 못 잡은 초행길에서 호명지로 가는 지름길을 하나 더 습득했지만, 가 보지 않은 길은 반신반의하게 된다. 약간 경사진 곳에 있는 대구한의대 오성캠퍼스로 업힐해서 대형버스 주차장 옆으로 난 상대온천쪽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탔다. 기분 좋게 내려가니 민가가 나왔다. 울타리 옆으로 난 샛문을 통해 나와서 쭉 내려가니 상대로 115길과 116길이 만나는 상대로. 우회전하면 상대온천 가는 길이고 좌회전하면 상대리로 향한다. 600~700m를 가면 길섶에 ‘조곡서원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는 상대삼거리에서 반곡, 연하 방향 성산로와 만난다. 처음 만난 성산로를 달리면 전에 가 보았던 반곡리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섰고, 다른 길로도 목적지로 갈 수 있게 하는 이어진 길들이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복사꽃 무릉도원, 연하
상대리에서 조곡리 첫 고개를 넘어서니 과수원 움막 옆에 물대야가 보였고, 밭에서는 76세 된 농부 내외가 밭을 매고 전지작업을 하고 있었다. “빵꾸를 때워야 해서 물 좀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쓰면 된다”고 허락을 해줬다. 타이어 속 튜브를 꺼내 물다라이에 담아서 바람 새는 곳을 정밀 진단하고 펑크패치에 본드질을 해서 펑크를 때웠다. 전지작업하던 밭주인장은 남 일 같지 않은 듯 일손을 놓고 내 곁으로 와서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커피 한잔 할란교? 빵꾸 때운다고 고생했는데 나랑 한잔 하고 가소.”
집에서는 있어도 먹지 않고 손님 접대용으로도 쓰지 않는 ‘봉다리커피’를 어느 명가집 아메리카노보다 맛있게 받아 마셨다.
진행 속도를 떨어뜨리고 불편을 가중시킨 펑크는 자전거 여행의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더불어 혼자 라이딩을 할 때 배낭 무게가 더 늘어나는 무거움 감수하고 펑크를 대비한 장비 휴대를 생활화한 덕을 확실히 봤다.
하늘색이 조금씩 홍조를 띠어가는 시간, 조곡리 둘째 고개를 넘으니 울긋불긋 복사꽃동산이 나왔다. 조곡서원에서 우회전하여 안심리로 가는 성산로로 진입했어야 하는데, 굵직하게 각인됐던 ‘연하’라는 지명을 따라 펼쳐지는 복사꽃 무릉도원에 심취해 달리다보니 그만 남산면 복지회관까지 가고 말았다. ‘연하’를 찾아가면 ‘성남교’와 ‘연하3교’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아연실색할 궁지에 봉착하게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고생은 컸지만, 새로운 자전거길을 닦는 보람은 컸다. 미궁에 빠졌다 싶어 자전거를 되돌려 카카오김기사 내비게이션을 켜서 갈지교차로를 입력해서 길안내를 받았다. 설총로와 만나는 갈지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다 직진하여 1.5㎞를 가니 남곡길이 보였다. 남곡리를 한 바퀴 돌아보니 못둑 같은 것이 보인다. 왔노라, 보았노라, 호명지다! 내 입말이 호랑이 울음으로 들렸다.
◆나날이 새로 잎피는 길
오전에 출발해도 저녁 무렵 도착하게 되는 이 길은 한눈팔게 하는 굽이굽이 꽃길이었다. 호명지는 서서히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복사꽃은 호수로 바뀌어가는 연못에 침잠하고 있었다.
올 봄엔 두 바퀴에 마음을 싣고 눈썹을 휘날리며 돌아 달렸다. 사람이 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나잇값 지혜가 새싹처럼 돋아났기 때문이다. 꽃에 맞춰 살기 위해 산수유꽃 의성 사곡, 경주 벚꽃 구경하러 대릉원까지 강행군을 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이성복 ‘꽃피는 시절’)
꽃 지는 계절, 포토바이킹은 ‘나날이 새로 잎피는 길’을 달릴 것이다. 이천지~어봉지~반곡지~호명지 길은 경산 복사꽃 무릉도원 포토바이킹로드라고 전하라!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맨땅에 헤딩하며 정리한 호명지까지 안전하게 가는 복사꽃 무릉도원 포토바이킹 코스는 금호강자전거길 강촌햇살교를 출발지점으로-팔현마을 패밀리파크 옆 금호강 우회자전거길-성동교-남천서길-남천자전거길-대구한의대-유곡동-이천지-어봉지-대구한의대 오성캠퍼스-상대로 115길-상대로-성산로(상대삼거리에서 반곡연하 방향)-반곡리-조곡서원(우회전)-연하3교-안심리-성남경로당-갈지교차로-갈지로-남곡길-호명지 순으로 주행하면 오감만족 자전거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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