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리플 9
4인조 강도가 은행을 휩쓸고 갔지만 돈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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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틀랜타의 한 은행에 4인조 강도가 침입한다. 능숙하게 경비원과 직원들을 제압한 이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듯 은행 개인 금고에 보관돼 있던 물건을 챙긴 후 황급히 떠난다. 이에 필요한 시간은 단 3분. 뒤늦게 경찰이 그들을 쫓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놓치고 만다.
이 범죄 조직은 리더인 마이클(치웨텔 에지오포)을 포함해 마커스(안소니 마키), 러셀(노만 리더스), 게이브(아론 폴), 프랑코(클리프던 콜린스 주니어) 등 전직 특수부대원과 전·현직 경찰들로 구성돼 있다. 일확천금을 위해 비밀리에 모인 이들은 냉혈한 여성 마피아 보스 아이리나(케이트 윈슬렛)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경찰피살코드‘999’둘러싼 경찰-마피아 대결
적·동지 구분 무의미한 범죄세계 비정함 그려
실제 범죄조직이 참여한 총격신 등 액션 볼거리
하지만 아이리나는 약속했던 돈 대신 마이클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까다로운 미션을 하나 더 지시한다. 국가보안시설 내부로 잠입해 기밀문서를 가져오라는 것. 불가능에 가까운 이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마이클 일당은 ‘999코드’를 이용하기로 한다. 경찰이 피살되었을 때 발동되는 이 코드는 전 도시의 경찰력을 해당지역으로 출동시켜 작전을 수행하도록 되어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트리플 9’의 정서는 시종 음울하고 잿빛 기운으로 가득하다. 정의가 사라진 도시는 부패와 살인이 난무하고, 이를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공권력은 오히려 범죄의 주체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타고난 직감으로 수사망을 좁혀오는 베테랑 형사 제프리(우디 해럴슨)와 그의 조카이자 신참 형사 크리스(케이시 애플렉)가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긴 하다. 하지만 누가 동지이고 적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이들 역시 혼란에 빠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 점에서 존 힐코트 감독의 영화적 지향점은 분명하다. 혼돈과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단면과 범죄세계의 비정함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트리플 9’ 속 인물들은 흑백의 경계처럼 단순하지 않다. 마피아, 범죄조직, 마약에 중독된 형사, 부패한 FBI 등은 가족과 동료라는 이름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들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 안에서 잘못 기능하고 있음은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특히 현실감 있는 액션 볼거리가 주목할 만하다. 이를 위해 감독은 애틀랜타의 실제 범죄 조직을 영화 작업에 참여시켰다고 하는데, 덕분에 애틀랜타 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총격신과 카 레이싱, 저택 요격 신 등이 사실감 있게 담겼다.
다만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 이 영화의 장르적 긴장감은 조금 아쉽다. 예상치 못한 흐름과 변주로 관객의 예상을 뛰어 넘으려 시도했지만 이야기의 밀도감이 떨어진 탓에 종종 덜컹거리며 몰입을 방해한다. 러시아 마피아 보스로 분한 케이트 윈슬렛과 형사 역할로 남다른 카리스마를 뽐낸 우디 해럴슨의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가 그나마 영화의 완성도에 힘을 보태지만, 이마저도 버거운 느낌이다.(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 바쿠만
만화천국 일본…두 소년의 ‘소년 점프’ 연재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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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팔리는 출판물의 36.5%는 만화잡지와 만화단행본. 때문에 만화가 없다면 출판사와 서점은 다 망했을 것”이라는 영화 ‘바쿠만’의 내레이션은 하나의 문화 장르로서 만화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잘 말해준다. 영화는 그 중심에서 언제나 왕좌를 지켜온 ‘소년 점프’의 연재를 목표로 만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두 고교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랑 같이 만화가가 되자.” 고등학생 마시로(사토 다케루)는 같은 반 친구인 다카기(가미키 류노스케)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그림을 그리는 데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지만 삼촌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만화가의 꿈을 접은 그다. 반면 뛰어난 스토리텔러지만 그림에는 젬병인 다카기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마시로가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콤비 만화가가 되기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 각고의 노력 끝에 ‘소년 점프’ 연재의 꿈을 이루지만, 이미 이곳엔 그들보다 한 수 위인 동갑내기 천재 만화가 니이즈마(소메타니 쇼타)가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마시로와 다카기는 그를 뛰어 넘는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명 만화가 원작…日 만화계 현실 생생한 묘사
원고 짜내기·인기투표 등 피말리는 과정 연속
실사와 만화 이미지 접목시켜 독특한 영상 효과
‘바쿠만’은 ‘소년 점프’에 연재돼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만화가를 꿈꾸는 두 청춘의 만화가 도전과 입성기다.
“만화로 평생 먹고사는 사람은 0.001%, 10만 명 중 1명”이라는 극 중 대사처럼 영화는 일본 만화계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두 청춘의 성장담에 녹여낸다. 남다른 열정과 노력 끝에 ‘소년 점프’에서 활동하게 됐지만 마시로와 다카기가 선택한 만화가의 길은 기실 고행에 가깝다.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원고를 짜내야 하고, 연재를 계속하기 위해선 독자 인기투표에서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해야 한다. 학생 신분인 그들로서는 매주 피말리는 과정의 연속인 셈이다.
초반부가 만화가로 입문하기 전의 순수한 열정과 아즈키(고마츠 나나)에 대한 마시로의 풋풋한 첫사랑을 건드렸다면, 만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중반부터는 두 청춘을 통해 치열한 일본 만화계의 현실을 포착한다. 하지만 무겁기보다는 리듬을 타듯 시종 가볍고 유쾌하다. 이 과정에서 경쟁과 노력, 우정과 승리라는 청춘의 성장담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녹여내 장르적 재미까지 취했다. 특히 니이즈마와의 대결 구도를 실사와 만화 이미지를 접목시켜 화려한 볼거리의 액션신으로 승화시킨 건 기발했다. “만화라는 작은 우주에서 격투를 하고 있는 그 느낌을 영상으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오오네 히토시 감독의 의도는 그 점에서 제대로 적중했다.
성공을 향한 소년들의 판타지보다는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되는 묵직한 리얼리티,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가볍고 깔끔한 전개는 분명 ‘바쿠만’이 지닌 미덕이다. 여기에 ‘소년 점프’ 편집국의 생생한 모습과 편집자와 만화가들의 관계까지 사실적으로 담겨져 흥미로움을 더한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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