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2> 법수도석으로 빚은 그릇 ‘청송백자’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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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26   |  발행일 2016-04-26 제13면   |  수정 2021-06-17 16:29
투박하게 만지면 바스라질 듯…“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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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백자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옹. 그는 청송백자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백옥 같은 낯빛에 진주 같은 광이 난다. 가만 쓰다듬으면, 모래알 같은 결정이 지문의 등고선을 스친다. 계란 껍데기처럼 얇고 공기처럼 가벼워, 투박하게 만지면 바스라질까 사발 들어 올리는 손끝이 예민해진다. 무심한 곡선은 담백하게 우아하다. 이것은 왕실이나 반가의 것이 아닌 민간에서 사사로이 쓰던 그릇이다. 오롯이 땅이 내어주는 것만으로 담담히 빚어 낸 효율적인 선, 이것이 청송백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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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로 만든 도자기
 

어째서 이리도 희고 얇은가 했더니 그 이유는 재료에 있었다. 청송에서는 백자를 제작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고령토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흰빛의 돌인 도석(陶石)을 가루 내어 그릇을 빚는 독특한 기술이 태어났다. 곱게 빻은 돌은 설백색(雪白色) 혹은 우윳빛을 띠었고, 그것을 잔잔히 거르고 걸러 가장 미세한 가루만을 그릇의 재료로 삼았다. 사람들은 그리 만들어진 돌가루(陶土)를 ‘명주 고름같이 보드라운 청송의 흙’이라 했다.

주왕산의 남쪽, 안개를 품은 무포산 자락에 청송백자의 주재료인 도석을 캐던 광산이 있다. 청송읍 부동면 신점리 법수골의 법수광산이다. 옛날 이 광산 주변 10㎞ 반경 안에 물 흐르고 푸른 소나무 빼곡한 골짜기마다 도요지가 있었다. 도석을 운반하는 지게꾼과 소의 걸음에 산길은 반질반질했다고 전한다. 도석은 가소성이 높고 내화력이 강했지만 점력이 약했다.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무른질’을 살짝 섞었다. 무른질은 법수 인근에서 나는 청색의 도토로 점력이 우수했다. 유약은 이웃한 파천면에서 나는 석회석 성분의 회돌과 포항 죽장면에서 나는 장석 성분의 보래를 혼합해 썼다.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는 회돌과 노란빛을 은근히 머금은 흰색의 보래는 도석과 병행해 빻아 쓰기에 용이했다.


무포산 자락 법수골 광산서 캔 도석
가루로 빻은 후 도토 섞어 그릇 빚어

16세기부터 만들어진 조선 4大 民窯
임원경제지에 ‘청송 특산물’로 기록

2009년 전수장 법수공방 다시 문열어
기능보유자 고만경 옹 ‘마지막 불꽃’



돌을 캐내고 도토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공력은 매우 컸다. 때문에 재료는 귀했고, 자연히 그릇은 얇았다. 산 높고 골 깊은 청송이라 그릇들은 등짐장수들에 의해 각지로 나갔다. ‘혹여 깨질까봐 지게에 지고선 징검다리도 못 건너니’ 드센 장수들도 청송백자 진 걸음만은 순했다. 그렇게 청송백자는 경북의 동·북부 지역 민간에 두루 사용되었다. 강원도 양구, 함경도 회령, 황해도 해주 자기와 더불어 ‘조선의 4대 민요(民窯)’로 꼽힐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지방의 거의 모든 가마들이 일본식 사기인 ‘왜사기(倭沙器)’의 대량생산 공세에 밀릴 때도 청송백자는 일본으로 수출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양은 냄비나 스테인리스 식기들이 시골 장터까지 파고들었고, 어느 날 등짐장수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2. 청송백자 500년, 그 끝과 시작

청송백자에 대한 기록은 매우 인색하다. 19세기 초반에 저술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청송백자가 청송지역의 특산물이라는 기록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편찬한 ‘조선산업지’에 ‘청송군 내 3개 마을에 가마 수는 4개로 1년간 생산액을 500원으로 적었다’는 기록이 있는 정도다.

2005년 청송군은 청송백자의 가마터 지표 조사 연구를 실시, 원료 출토지를 중심으로 청송 내 36개소에서 48개의 백자 가마터를 찾았다. 그 결과 늦어도 16세기부터 청송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송백자 500년 역사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에 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청송군이 ‘백토의 산지’라는 언급이 있다. 백토가 도석을 의미한다면 청송백자의 역사는 500년보다 더 먼 과거로 소급된다. 그에 비해 청송백자의 마지막은 선명하다. 증언에 따르면 1958년 법수광산 앞 법수공방 가마에 불을 지핀 것이 청송백자의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나, 지금 법수골이 다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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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청송백자 전수장 전경. 사기움을 비롯해 사기굴(가마), 주막, 체험관 등을 조성해 500여 년 역사의 청송백자를 복원·전승하는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3. 부활의 진원지 ‘청송백자 전수장’ 

 

여전히 하얀 속살을 내보이고 있는 광산 앞에 2009년 법수공방이 다시 문을 열었다. 500여 년 역사의 청송백자를 복원·전승하기 위한 ‘청송백자 전수장’이다. 예전 청송백자를 굽던 그대로 공방과 가마 등이 들어서 있고, 마지막 사기대장인 고만경옹(85)과 전수자들이 전통 방식대로 청송백자를 복원·전승하고 있다.

고만경옹은 청송백자 기능보유자이자 청송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다. 그는 15살이던 1944년 생계를 위해 사기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해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몇 년 뒤 어엿한 사기대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실험과 실패와 좌절과 성공을 통해 자신만의 비법을 축적했고, 법수공방의 가마불이 꺼질 때까지 장인으로서 그릇을 빚었다. 이후 긴 시간 가마를 떠났던 그는 이제 백발성성한 노인으로 돌아와 마지막 사기대장으로서 청송백자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법수골의 가마를 지키고 있다.

전수장에 들어서면 먼저 육중한 초가지붕을 깊이 눌러쓴 공방이 도드라져 보인다. 움집같이 생겨 ‘사기움’이라 부르는 공방은 특이하게 원형이다. 이는 청송만의 특징으로 오래된 형태가 유지되어 온 것이라 한다. 움 안에는 돌을 빻는 디딜방아와 돌가루에서 부드러운 앙금만 걷어내는 지당, 성형을 위한 물레와 건조를 위한 봉내방 등 각 공정에 필요한 기구들이 최소의 동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원료 준비와 성형, 건조, 보관에 이르는 대부분의 공정이 이루어진다.

사기움의 뒤쪽 가장자리에 가마가 위치한다. 굴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기굴’이라 한다. 가마는 40도 정도로 경사진 산비탈에 5개의 봉우리가 사다리꼴로 솟아있다. 도토로 빚은 그릇은 급작스러운 소성이 가능하고, 불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속성을 지녔으며, 둥근 봉우리는 열기를 머물게 한다. 경사지게 가마를 지었기에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 사기굴의 모양은 이러한 돌과 불의 특성을 이용해 초벌구이만으로 사기를 완성시킨다. 그것은 연료와 노동력을 절약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사기를 생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최적의 형태를 찾아 실험을 거듭한 노력의 결과다.

주막도 복원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쉬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몇 년 전에는 일본인 부부가 찾아와 주막에서 머물며 청송백자를 배워간 적도 있다 한다. 옛날에는 성마른 등짐장수들이 주막에서 숙식을 하며 그릇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가마에서 사기를 내는 날은 ‘점날’이라 했는데, 그날 사기움 앞마당은 각지에서 온 장사꾼들로 북적였다. 점날이 장날이었고, 마당이 장터였다. 청송백자 전수장이 들어선 신점리(新店里)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전 이 골짜기에 공방이 들어서고 장터가 열리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참고문헌=△강병극, 2005, 도석을 이용한 청송사기 제작기술의 특화양상, 안동대학교 △황상구, 2015, 청송국가지질공원 추가지질명소 개발 및 인증조건 보완, 청송군

공동기획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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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관광지 내에 있는 청송백자전시관.
 

☞ 여행정보 

주왕산휴게소에서 주산지 방향 908번 도로를 타고 가면 부동면사무소 전에 청송군 부동면 신점리 법수마을이 있다. 

바깥법수 마을에서 약 1.5㎞ 가면 안법수 마을이다. 

마을의 길 끝에 청송백자전수장이 있다. 

전수장에 마련된 체험관에서는 청송백자 만들기 등 다양한 도예체험을 할 수 있다. 

청송군 부동면 하의리 주왕산 관광지 내에도 청송백자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는 도예촌이 있다. 

도예촌에는 사기굴과 사기움, 주막이 재현되어 있고, 청송백자의 특징과 제작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한다. 

전시관에서는 고만경옹의 작품을 비롯해 옛 청송백자 40여 점도 만날 수 있다. 

청송백자전시관 맞은편에는 심수관도예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1598년 정유재란 때 끌려가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만개시킨 청송심씨 심수관가(沈壽官家)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청송 도예촌에서는 전통 도자기 만들기, 다도체험, 민화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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