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하드코어 헨리·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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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0   |  발행일 2016-05-20 제42면   |  수정 2016-05-20

하드코어 헨리
관객들, 96분간 스크린 속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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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기억이 지워진 채 깨어난 헨리는 스스로를 아내라고 소개하는 에스텔(헤일리 베넷)에 의해 강력한 힘을 가진 사이보그로 거듭난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음성 모듈을 연결하려던 순간, 연구소에 아칸(다닐라 코즐로프스키)과 일당이 들이닥치고 헨리는 에스텔과 함께 탈출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칸의 용병들에 의해 얼마 못 가 납치되고, 헨리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아칸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된다.


카메라가 주인공의 눈…1인칭 슈팅게임 보는 듯
무차별 기관총 총격 등 내내 리얼 하드코어 액션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 첫 장편영화로 OST도 탁월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하드코어 헨리’는 마치 1인칭 슈팅게임(FPS)을 보듯 시종 주인공 헨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임특성을 탑재한 만큼 헨리가 아칸의 용병들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는 장면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빠르고 잔인한 액션으로 극도의 긴장과 스릴감을 선사한다. 아크로바틱한 신체 리듬으로 건물을 가뿐히 올라가거나 뛰어넘는 건 기본. 수류탄을 던져 자동차를 폭파시키고 탄창이 가득 채워진 기관총으로 폭격과도 같은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리얼 하드코어 액션장면이 러닝타임 내내 끊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액션 쾌감과 서스펜스는 압도적이다. 특히 카메라 앵글이 헨리의 시선을 따라감으로써 관객 역시 헨리의 행동과 심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짜릿한 순간과 마주한다. 이는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체험과 다양함을 선사한 것이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극 중간에 다른 장면을 임의로 편집해서 넣는다거나 주인공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차별화된 장점으로 승화시킨 감독의 기치로 읽힌다. 다만 이를 위해 헨리는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 된 행동표현으로 전달해야 했고, 관객 역시 주변 인물의 리액션만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이마저도 흥미롭고 즉각적인 경험이긴 하다.

헬멧에 액션캠을 장착한 카메라 장비와 온몸을 던진 스턴트맨의 노력이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이 영화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헨리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만큼 전문 스턴트맨들은 물론 카메라맨들과 감독까지 총 10명이 역할을 분담했다.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은 “기술적인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복잡한 촬영을 해낼 때마다 우리가 최초라는 그 짜릿함이 강한 창작의 힘을 불어넣어 줬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신개념 액션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OST의 선택도 탁월했다.

연출을 맡은 일리야 나이슐러는 러시아 출신의 영화제작자이자 펑크록 밴드 ‘바이팅 엘보’의 리더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기존 형식을 파괴한 뮤직비디오 ‘배드 마더퍼커’로 조회수 1억2천만건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도 전통적인 영화 제작 기법에서 탈피해 96분의 러닝타임을 자신만의 스타일과 연출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펼쳐냈다. “액션과 유머, 스토리를 균형감 있게 녹여낼 줄 아는 흔치 않은 감독”이라는 제작자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의 말마따나 감각적인 구성과 대담한 액션 볼거리가 돋보인 일리야 나이슐러의 인상적인 장편영화 데뷔작이다.(장르:액션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추억 한 땀 행복 한 땀…인생 담긴 옷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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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의 고즈넉한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미나미 양장점. 할머니에게 양장점을 물려받은 미나미 이치에(나카타니 미키)는 선대의 방식대로 마을 사람들의 옷을 수선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들어진 미나미 양장점의 옷은 가족이 대를 이어 물려 입을 만큼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치에는 옷을 상품화할 생각이 없다. 유일하게 친구인 아오이(가타기리 하이리)네 잡화점 한 곳에서만 자신이 만든 옷을 전시·판매 중이다. 어느 날 미나미 양장점의 옷에 매료된 다이마루 백화점 직원 후지이(미우라 다카히로)가 브랜드 론칭을 제안하기 위해 이치에를 찾지만 그녀의 생각은 역시나 변함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뜻을 굽히지 않은 후지이는 이후 매일같이 양장점을 찾아가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미시마 유키코 감독 신작으로 ‘일상 속 행복찾기’
“얼굴 모르는 이의 옷을 만들 수 없다” 신념 고수
代이은 양장사와 주민들 사연 가볍지 않은 울림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은 ‘해피 해피 브레드’(2012), ‘해피 해피 와이너리’(2014)를 연출한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신작이다. 함께 나누고,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인생의 따뜻한 지혜를 전한 전작에 이어 이번 역시 그녀의 관심사는 인생이 담겨있는 옷과 이를 만드는 장인의 조금은 특별한 삶에 맞춰져 있다. 언제나 그러했듯 일상 속 행복의 발견이다. 느림의 미학과 여유로움으로 충만된 이 시간만큼은 도시생활의 분주함과 화려함에서 잠시 벗어나 쉼표의 역할을 한다.

트래디셔널과 레트로를 고수하는 미나미 양장점의 옷은 유행이 지났다고 버려지는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다.

이치에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재봉틀의 페달질을 이용한 전통방식을 우직하게 고수하고 있듯, 그녀의 옷을 입은 사람들 역시 한 벌의 옷은 오래 곁에 두고 싶은 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 남아 있다. ‘인생의 옷.’ 이치에는 자신의 손길이 닿은 옷을 그렇게 정의한다. 때문에 옷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담는 대신 입는 사람의 꿈과 추억을 재단해주는 것으로 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행복을 전하려 한다.

서사의 구성과 흐름은 심심할 정도로 밋밋하다. 극적인 전개나 반전 없이 이치에를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을 가진 양장점의 손님들과 마을 이웃들, 그리고 후지이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맞물리지만 매력 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것들로 삶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화법과 장기는 그 점에서 여전하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사라진 이웃 간의 유대관계와 오래될수록 더욱 가치 있는 일에 천착해 그로 인한 행복의 상관관계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낸 방식도 그렇다.

엄마가 과거에 입던 옷을 자신의 몸에 맞게 입고 싶어했던 소녀, 남편에게 프러포즈 선물로 받은 천으로 아름다운 치마를 맞춰 입은 할머니, 장남부터 첫 손주가 태어난 날까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 옷본을 간직한 할아버지 등 옷과 연관된 이들 각각의 사연은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의미로 울림을 더한다. 분명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나미 양장점처럼 각자의 꿈을 꾸게 만드는 인생의 옷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장르:드라마 등급:전체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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