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애주가라면 ‘통술거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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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2   |  발행일 2016-08-12 제35면   |  수정 2016-08-12
■ 푸드로드 마산
‘마산서 술자랑 춤자랑 말라’던 시절
음주가무의 중심인 오동동 통술골목
‘창동예술촌’과 함께 낭만 되살아나
6·25떡볶이·어묵해장국 전국적 인기
20160812
마산의 요정문화를 딛고 마산만의 통술문화가 오동동에서 발진한다. 이젠 통술거리가 신마산 쪽과 양분됐지만 여전히 주당들은 오동동 통술에 애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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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시장 명물인 6·25 화분떡볶이를 들고 있는 강덕임 사장.

‘마산서 술자랑 춤자랑 말라’던 시절
음주가무의 중심인 오동동 통술골목
‘창동예술촌’과 함께 낭만 되살아나
6·25떡볶이·어묵해장국 전국적 인기


◆작품이 된 골목…창동예술촌

마산의 경제는 90년대 접어들면서 빨간불이 켜진다. 한때 전국 7대 도시였던지라 마산 토박이에겐 더 충격이었다. 전성기에는 ‘마산에 와서 술 자랑 말고 춤 자랑 말라’고 했다. 경남 일원 술꾼들이 모두 마산에서 술판을 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타공인 ‘음주가무의 도시’였다.

마산은 신마산·구(원)마산·북마산으로 나뉜다. 구마산의 축은 오동동과 창동이다. 읍성이 있어 대구처럼 ‘성(城)’ 자가 들어가는 동네가 많다. 오동동과 창동 사이에 ‘불종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불이 나면 종을 울리며 소방차가 오가서 붙여진 거리명이다. 대구의 동성로 격으로, 현재 거리 한복판에 종이 걸려있다. 그 거리의 한 포인트에 이젠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린 ‘희다방’이 있었다.

옛 마산시민극장 일대의 창동은 마산의 심장과도 같은 곳. 오동동 술거리와 함께 문화예술을 잉태했다. 대구의 향촌동, 북성로, 계산동, 남산동, 삼덕동 등이 근대역사골목으로 부활하듯 이 거리도 2010년 통합창원시가 등장하면서 창동예술촌과 오동동통술골목소리길로 되살아난다. 창동예술촌은 예사롭지 않다. ‘마산의 동피랑’으로 불리는 무학산 자락 가고파 꼬부랑벽화길과 함께 전국에서 몰려온 20대들이 사랑하는 포토존이다.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 자체가 작품이다. 이 공간은 세 가지 테마(마산 예술 흔적골목, 에꼴 드 창동, 문신 예술골목)로 나뉜다. 추락 중이던 오동동 통술골목은 7명의 후배 작가가 고(故) 현재호 화가의 작품정신을 이 골목에 투입해 소리길로 재구성했다.

창동예술촌 골목을 걸으면서 이젠 작품과 상품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 3·15의거를 기리기 위해 315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꽃을 놓아 만든 3·15꽃골목을 걸었다. 마산의 마지막 헌책방으로 불리는 ‘영록서점’ 박희찬 사장과 우직한 수다도 떨었다. 그를 뒤로하며 옛날 빙수를 잘하는 분식점인 ‘복희집’으로 갔다. 상호에 정감이 어린다. 92년 어머니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박옥희 사장은 “어머니가 툭하면 만만한 동생(복희)을 자주 호출했는데 결국 동생 이름이 상호가 됐다”고 설명한다.

◆6·25떡볶이 탄생비화

복희집보다 더 재밌는 분식점이 근처 부림시장에 있었다. 가게 이름은 ‘6·25 떡볶이’. 밤 9시를 넘은 시각, 다른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는데 바로 옆 ‘11남매’ 분식집, ‘수진이네 떡집’ 등 세 곳만 불이 켜져 있다.

81년 장바닥으로 나온 강덕임 사장. 16년 전 겨우 자기 가게를 가질 수 있었다. 35년 장터인생, 하지만 표정이 참 곱다. 원가를 따지지 않는 맘씨 덕이리라. 막 퍼담아 준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다. 관광객은 다들 음식 맛에는 관심이 없다. ‘왜 6·25냐’고 물으면서 빨간 앞치마에 적힌 상호를 폰으로 찍어 지인한테 보낸다. 그렇게 부산의 부평깡통시장 ‘씨앗호떡’처럼 전국에 입소문이 났다. 대박 행진에 상호가 한몫한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정한 건 아니다. 손님들이 붙여준 상호였다. 초창기 10년은 죽을 고생이었다. 현재 가게 앞은 부림백화점, 목이 좋았다. 눈칫밥을 먹으면서 남의 가게 앞에서 좌판을 시작했다. 어묵 하나에 1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알아서 먹고 알아서 계산하도록 했다. 항상 북적대고 두서도 없는 좌판. 피란민촌 구호물자 받는 광경 같았다. 단골들이 여러 이름을 붙여줬다. 월남전 분식, 피란 분식, 6·25 분식, 앉은뱅이 분식, 쪼그리 분식, 목욕탕 분식, 낚시터 분식…. 낙점은 6·25였다.

‘화분떡볶이’의 탄생 비화도 재미있다. 장물을 떨구며 불편하게 떡볶이를 먹던 단골에게 미안한 마음에 화분 받침대를 들고 와 떡볶이 접시 밑에 겹쳐 놓았다. 이거다 싶어 다음부터 받침접시로 사용했다. 이 떡볶이가 ‘화분떡볶이’로 회자된다.

세 번째 스토리는 ‘어묵해장국’. 기존 지리형 어묵탕에 고춧가루를 가미해 마산에서 처음으로 양념 떡볶이 시대를 연다. 이 어묵 국물이 근처 주당들에게 해장국으로 어필된 것.

◆마산통술을 찾아서

어둑한 시각, 탤런트 최불암이 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할 때 찾았던 ‘강림통술’을 찾았다. 손님은 두 테이블뿐이었다. 서양화가 배창노의 아내가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마산통술은 4~5명이 가서 안주 값으로 5만원을 내면 된다. 그다음 소주·맥주 값은 5천원. 통영다찌와는 시스템이 다르다. 술 10병 포함한 한 상 10만원에 술 추가는 소주 1만원·맥주 6천원 정도다. 혼자 찾은 나그네의 쓸쓸함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옆 테이블 손님이 맥주 두 병을 살갑게 건넨다. 그들은 “이게 마산의 통술인심”이라고 했다.

오동동에서 술을 마시면 오동동파출소에서 헤어진다는 말도 있다. 술 한 잔 마시고 길거리를 지나다 아는 사람 만나서 또 한 잔. 술자리 파하고 길을 나섰다가 아는 사람 만나 또 한 잔. 이러다 보니 결국 술에 취해 오동동파출소에서 귀가하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다.

이번 마산행의 종착역은 마산의 ‘통술집’이다. 통술문화는 오동동통술골목소리길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오동동 통술거리상인회는 2008년 결성됐다. 옛 마산시가 이 일대 거리 400m 구간을 ‘통술 특화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이 도로 양쪽에서 영업하던 통술집, 노래연습장 등 150여 개 업소 주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남성동과 신마산 쪽에 서호통술 등 10여 업소가 성업 중이지만, 원조는 역시 오동동이다. 토박이가 인정하는 통술집 3인방은 유정·강림·홍화통술.

이 골목에서 3·15의거가 발원된다. 통술골목에 옛 민주당사가 있었다. 통술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골목에 있는 오동동상인연합회를 찾았다. 이승일 사무처장은 통술의 어원을 “한 상 통째로 내어준다고 해서 통술”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요정 쪽으로 건너간다. 광복 전후로 오동동에는 고급 요정이 많이 있었다. 오동동은 ‘요정과 바의 동네’였다. 지금도 요정골목이란 이름은 남았다. 대표적인 요정은 청수원, 춘추원, 마산별관, 송학 등이고 대표적인 바는 오동동 바, 아리랑 바, 은좌 바 등이다. 대구의 종로·향촌동과 맞먹을 정도다. 평양, 서울과 더불어 인근 진주에는 권번(券番·기생을 양성하는 곳)이 있었지만 마산에는 권번이 없었음에도 요정만은 즐비했다. 70년대까지 영업했던 요정 춘추원 상호는 그대로 남아 있다.

70년대 오동동과 합성동 등을 축으로 등장한 통술집은 요정에서 차려낸 한상차림을 축약시킨 것이다. 초창기에는 갈비찜·갈치구이·삼계탕 등 다양한 음식을 고루 내놨다. 요즘엔 어패류 요리가 주축을 이룬다.

회원천변에 있었던 나래비(羅立) 선술집촌도 통술집의 변형 술집이라 보면 되는데 지금은 거의 점집으로 변해버렸다. 애환과 푸짐함이 묻어나는 ‘안주상 특화 술집’이 부산, 진주, 사천, 삼천포, 통영, 부산 등에도 있다. 통영은 ‘다찌’, 진주에서는 ‘실비집’, 대구는 ‘뭉티기집’으로 불린다.

통술을 알려면 ‘오동동타령’을 불러봐야 된다. 54년 발표된 야인초 작사·한복남 작곡·황정자 노래다. 마산 오동동이 배경이다. 오동동에서 얼마나 많은 니나노 소리가 울러퍼졌으면 그런 노래까지 태어났겠는가. 오동동타령은 가수 권혜경이 57년 불러 히트한 ‘산장의 여인’과 짝으로 움직인다. 국립마산병원(마산결핵요양소)과 ‘산장의 여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다. 반야월이 마산결핵요양소에서 봤던 여자 환자를 모델로 가사를 만들었고 곡은 폐결핵으로 마산결핵요양소에서 투병하던 작곡가 이재호가 붙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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