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海風에 꾸덕꾸덕…미식가라면 정통의 그맛 ‘건아귀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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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2   |  발행일 2016-08-12 제34면   |  수정 2016-08-12
■ 푸드로드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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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수협 남성공판장 옆 어물전은 동절기로 접어들면 제맛이 들기 시작하는 아귀로 흘러넘친다. 마산에서는 말려 찜으로 요리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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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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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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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분이 들어가지 않은 아귀찜

마산에 도착했다. 잔뜩 열기를 머금은 퀴퀴한 해풍은 발목을 수시로 잡아 비튼다. 마산의 폭염 위에 대구의 가마솥더위가 오버랩됐다. 대구와 마산은 ‘욱’하는 그 뭔가가 있다. 대구의 화끈얼큰한 따로국밥, 마산의 칼칼한 아귀찜은 거역의 피를 가진 양 도시의 기질을 잘 담아낸 음식이 아니었을까. 1960년 대구의 2·28민주운동에 마산은 한 달도 안 돼 3·15의거로 화답했다.

마산 미각의 편린을 찾기 위해 마산수협 남성공판장 옆 어물전 주변을 뒤적거렸다. 초입에 있는 한 생선탕 전문점의 입간판에 적힌 메뉴를 읽어봤다. 탱수탕, 호래기탕, 대구쑥국탕…. 육지 사람들에겐 낯선 탕과 국이 푸짐하게 에워싼다. 예순여섯의 이유진 좌판 아줌마가 농어 손질을 하면서 “하필 고기 맛이 꽝인 오뉴월에 왜 마산을 찾았느냐”면서 수십 년 이 바닥에서 단련된 굳은살 투성이의 손가락을 펴 보인다. 찬바람이 불 때 다시 한번 찾아오란다.

‘아귀찜 본고장’의 선택은 마른 아귀
동절기 때면 수협 근처 등 덕장 변신
얼고 녹기를 거듭 더욱 쫄깃한 식감
쌍벽 이루던 ‘복어찜’ 맛볼 곳 없어


◆아귀·복어·미더덕·홍합의 사중주

아귀와 복어는 마산의 미각을 대표하는 양대산맥. 그 옆에 전국 최대 생산지로 발돋움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마을의 미더덕, 구산면 수정·안녕마을의 홍합이 곁가지를 친다. 이 네 식재료가 마산 식문화의 네 기둥이라 보면 된다. 마산만에 둥둥 떠있는 부표 밑에는 어김없이 미더덕 아니면 홍합이 자란다. 이들은 통영의 굴처럼 바다 속에 드리워져 양식되기 때문에 ‘수하식 어패류’로 불린다. 미더덕은 80년대만 해도 아귀처럼 볼품없이 생겨 푸대접을 받았다.

미더덕의 어원이 재미있다. 미는 ‘바다’의 옛말이다. ‘바다의 더덕’이란 뜻인 것 같다. 바다 사정이 황폐해진 지금, 자연산은 찾지 마라. 거의 양식이다. 미더덕은 전년 6~8월 종폐를 그물에 달아 내려뒀다가 이듬해 1~8월 채취한다. 3~4월이 가장 맛있다. 그 철이 끝나면 어민들은 ‘주름미더덕’으로 불리는 ‘오만둥이’를 8월 이후 출하한다. 경상도 말로 ‘오만 데 다 달라붙는다’ 해서 오만둥이라 불린다.

도토리처럼 생긴 미더덕은 작업장 아줌마가 식칼 반 정도 크기의 작업도를 갖고 껍질을 잘 까야 상품이 된다. 현재 진동면 앞 진동만은 대한민국 미더덕 1번지로 불린다. 고현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마산 진동만 미더덕’이란 조형물까지 서 있다. 한때 미더덕은 굴의 메카인 통영 등지에서는 양식장이나 선박에 달라붙어 ‘해적생물’로 처단됐다. 꼬막을 주로 생산하던 고현마을은 80년대부터 미더덕 양식에 나섰지만 주변 어촌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양식이 허가된 게 2001년. 미더덕은 국내 전 연안에서 나기는 하지만 거제-통영-고성-마산-진해 연안에 집중돼 있다. 마산지역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70~80%를 차지했다.

아귀는 사철 불문하고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어종이다. 아귀의 경우 마산에서는 탕보다는 찜을 좋아한다. 아귀찜도 초창기에는 묻지마 ‘마른 아귀찜’이었는데 이젠 관광객 때문에 생아귀찜도 병행한다.

어라. 아귀도 덕장에서 말린단다. 아귀 덕장은 동절기에 반짝 절정을 이룬다. 마산수협과 마산항, 복요리·아구찜거리 근처, 뭘 조금 말릴 만한 공간이 있으면 어김없이 아귀를 넌다. 그걸 잘 갈무리해 하절기에 공급한다. 하절기에는 덕장이 없다. 얼고 녹기를 거듭해야 하는데 여름은 마르기만 해 육포처럼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어시장에서는 건아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충남상회에서 바구니에 담겨 있는 마른 아귀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리에 1만5천~2만원에 거래된다. 건아귀가 꼭 서해 변산반도 쪽의 향토음식인 우럭젓국용 말린 우럭 같았다.

마산 아귀찜은 대구식과는 질감이 확연하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라면 대구와 달리 전분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대구는 조금은 질척거림이 있는데 마산은 전분이 없어 더 깔끔하다. 재료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또 한 가지 차이는 마산 아귀찜 전문식당에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밑반찬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김치 등 3가지만 달랑 낸다. 원래 바닷가는 본 메뉴에만 ‘몰빵’하는 기질이 있다.

한말 때만 해도 아귀찜 같은 복어찜도 있었다. 복어를 잡아 처마 끝에 매달아 놓고 꾸덕꾸덕하게 말려 미나리·콩나물에 된장을 풀어 끓여 먹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60~70년대 마산의 대표적 언론인이었던 고 김형윤이 쓴 ‘마산야화(馬山野話)’에 ‘버들다리거리 석태네 집 복국과 창원집 생선국 맛이 술꾼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으나 이들도 세상을 떠나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초창기 업소는 사라지고 없다. 복어찜 하는 곳이 있나 확인해 봤지만 없었다. 현재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복집인 ‘남성식당’, 가장 비싼 풀코스 복요리를 선보이는 ‘나들이복집’ 등 20개 이상의 복국 전문식당이 있다. 나들이복집은 특이하게 가스 대신 숯을 사용해 요리를 해준다. 이 집의 별미는 ‘복소금구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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