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동타령’ 한자락에…잔은 차고, 달은 기울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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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2   |  발행일 2016-08-12 제33면   |  수정 2016-08-12
20160812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1954년 발표된 ‘오동동타령’은 오동동 술골목을 배경으로 불려진 마산 주당들의 애창곡. 창원시는 그 노랫소리를 모티브로 통술골목 소리길을 조성했다. 이 골목도 3·15의거의 한 축이 된다.

마산(馬山)으로 간다. 마산은 ‘아귀찜의 고장’, 마산 아귀는 뭐가 다를까?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아귀찜을 만나려면 먼저 마산 특유의 ‘통술문화’부터 알아야 한다. 그걸 알아내려면 무학산 전망대에 올라 마산항과 합포만이 마산의 산세와 어떤 방식으로 교직되는가를 음미해야 한다. 궁극에는 어둠이 찾아온 창동과 오동동 뒷골목 허름한 주막 구석자리에 호롱불처럼 앉아봐야 한다. 입담 좋은 야사 전문가의 회고담 속에서 마산의 지난 시절을 소요해야만 한다. 맛에는 그 지역만의 향토사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피란 온 문화예술인들의 고향

대구를 떠난 지 한 시간도 안 돼 마산 심장부에 접어들었다.

마산, 우리말로는 ‘말뫼’다. ‘말(馬)’의 어원이 궁금하다. 이승기 영화자료관장,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 등과 함께 ‘마산향토사의 3대 증인’으로 정평이 난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김정대 교수가 지명 유래를 소상히 정리해준다.

마산 지명의 출전이 되는 두 산이 있다. 무학산과 용마산. 마산 대표술인 ‘무학소주’를 연상시키는 무학산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지은 이름. 원래는 ‘두척산(斗尺山)’. 두척은 미곡의 양을 재는 큰 됫박(斗), 그리고 저울(尺)과 관련이 있다. 두척은 순우리말로 ‘말자’. 이 말자가 나중에는 ‘마재’, 이게 다시 한자어인 마산으로 음운이 변이된다. 웬만한 상호엔 무학(舞鶴)이 다 들어간다. 옛 마산공고 뒤편 용마산은 ‘오산(午山)’으로도 불리는데 이 ‘오(午)’ 자가 지명과 결부된다.

마산은 부산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부산처럼 해안 지역이 비좁아 여러 차례 매축해서 터를 잡았다. 두 곳은 6·25전쟁기 대구와 함께 피란 온 문화예술인들의 고향이었다. 부산 용두산은 무학산, 부산 오륙도는 돝섬과 닮은꼴이다. 돼지 모양의 돝섬은 마산의 부적과 같다. 1982년 전국 첫 해상유원지가 들어서고 매년 가을 가고파국화축제가 열린다. 한때 국내 항구 중 최고의 불야성을 구가한 부산 남포·광복동 유흥가와 마산 오동동·창동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산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는 솔직히 그냥 진해·통영보다 한 급 아래로 보였다. 1970년 한국 첫 수출자유지역을 갖게 된 항구도시, 국민의 노래로 불린 ‘가고파’의 작사자인 노산 이은상의 고향, 그리고 대한민국 아귀찜 1번지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런데 마산의 이면사와 뒷골목 담론을 취재하면서 마산이 만만치 않은 문화예술적 저력을 가졌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한국 가곡과 동요의 고향

많은 이들은 특히 마산을 한국 가곡과 동요의 고향으로 본다. 합포구 오동동 71번지, 거기는 이원수가 15세 때 작사한 ‘고향의 봄’이 태어난 곳이다. 이 밖에 ‘가고파’의 이은상,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 ‘단장의 미아리 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등 한국 가요사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작곡가 반야월, 세계적 조각가 문신, 만화가 방학기, 소설가 이제하, 시인 천상병, 영화감독 강제규, 영화배우 이대엽 등을 배출했다. ‘대구의 마지막 협객문인’이었던 박용주와 비슷한 포스의 ‘낭만주먹’이 마산에도 있었다. ‘상하이 박(박치덕)’이다. 그가 있어 무학소주와 오동동 술골목이 건재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린다. 그는 현재 오동동 불종거리변 코아양과점 자리에 있었던 ‘컨티넨탈 다방’ 주인으로 유명했다. 50년대 초반에는 현 신마산 통술거리의 ‘깡통집’ 건너편 럭키사우나가 있는 건물에서 ‘외교구락부’란 다방도 운영했다. 장애를 딛고 마산 시단의 총아가 된 일명 ‘마산 허새비’ 이선관 시인, 베토벤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한국 실비집의 마지막 전설로 살아 있는 창동 예술촌 골목 선술집 ‘만초(蔓草·덩굴성 식물의 통칭)’의 조남륭 사장. 이 셋의 에피소드만 묶어도 ‘근대 마산 낭만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 같다.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는 그 질펀한 이야기를 ‘창동야화’란 책으로 묶었다.

마산의 술꾼, 그들이 있었기에 마산의 아귀와 통술문화도 덩달아 빛이 났겠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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