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서 예술 좀 했단 이들의 사랑방…‘예향’다운 선술집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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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2   |  발행일 2016-08-12 제35면   |  수정 2016-08-12
창동예술촌의 실비집‘만초’
20160812
단골 술꾼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만초의 조남륭 사장과 아내 엄학자씨.

81세 조남륭 사장과 아내 엄학자씨
70년대 ‘클래식 감상 주막집’ 열어
지금껏 50여년의 선술집 외길 인생
술값도 안주도 딱히 정해진 건 없어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

이보다 더 마산스러운 말도 없을 것 같다. 다음 날 밤 창동예술촌 구석 자리에 가장 초라한 자태로 남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술집 ‘만초(蔓草)’를 찾았다. 술을 먹는 내내 기분이 짠했다.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지금은 피를 투석해야 살 수 있는 사장 조남륭(81)과 그의 아내 엄학자(75). 손님을 더 받을 수 없는 처지의 노부부가 어렵사리 50여 년 역사의 ‘선술집 외길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어쩜 나그네가 마지막 손님일 것 같았다. 노부부는 “오늘은 안주가 없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멸치 하나면 족하다”고 하니 “그래도 좋겠냐”고 말한다.

“퍼주며 다니느라 한 푼 모아보지 못해 당뇨병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내한테 못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하는 조 사장. 그가 나그네를 위해 멸치와 몇 가지 반찬을 챙겨 나온다. 이 집은 통술집이 아니다. 그냥 주인이 알아서 안주를 챙겨준다. 술값도 정해진 게 없다. 정상적인 영업점이 아니다.

한때 마산에서 예술 좀 했다는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다. 추억의 단골 때문에 폐업도 못하고 있다. 조 사장은 ‘예술 하는 너거들, 한 번 실컷 먹어 봐라’는 심정으로 70년대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격조있는 주막집을 열었다. 한때 북마산 문창교회 근처에서 ‘음악의 집’으로 호시절도 구가했다. 만초가 문을 닫으면 마산의 추억 1막도 막을 내릴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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