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술꾼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만초의 조남륭 사장과 아내 엄학자씨. |
81세 조남륭 사장과 아내 엄학자씨
70년대 ‘클래식 감상 주막집’ 열어
지금껏 50여년의 선술집 외길 인생
술값도 안주도 딱히 정해진 건 없어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
이보다 더 마산스러운 말도 없을 것 같다. 다음 날 밤 창동예술촌 구석 자리에 가장 초라한 자태로 남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술집 ‘만초(蔓草)’를 찾았다. 술을 먹는 내내 기분이 짠했다.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지금은 피를 투석해야 살 수 있는 사장 조남륭(81)과 그의 아내 엄학자(75). 손님을 더 받을 수 없는 처지의 노부부가 어렵사리 50여 년 역사의 ‘선술집 외길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어쩜 나그네가 마지막 손님일 것 같았다. 노부부는 “오늘은 안주가 없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멸치 하나면 족하다”고 하니 “그래도 좋겠냐”고 말한다.
“퍼주며 다니느라 한 푼 모아보지 못해 당뇨병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내한테 못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하는 조 사장. 그가 나그네를 위해 멸치와 몇 가지 반찬을 챙겨 나온다. 이 집은 통술집이 아니다. 그냥 주인이 알아서 안주를 챙겨준다. 술값도 정해진 게 없다. 정상적인 영업점이 아니다.
한때 마산에서 예술 좀 했다는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다. 추억의 단골 때문에 폐업도 못하고 있다. 조 사장은 ‘예술 하는 너거들, 한 번 실컷 먹어 봐라’는 심정으로 70년대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격조있는 주막집을 열었다. 한때 북마산 문창교회 근처에서 ‘음악의 집’으로 호시절도 구가했다. 만초가 문을 닫으면 마산의 추억 1막도 막을 내릴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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