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서 ‘축제 주인공’으로…매년 5월9일은 ‘아구데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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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2   |  발행일 2016-08-12 제34면   |  수정 2016-08-12
마산 아구찜거리와 혹부리할매
20160812
‘마산 아구찜거리’ 초입의 오동동아구할매집 외벽에 그려진 아귀 모티브 벽화.

통술길과 창동예술촌 맞물려 위치
근처 복요리거리와 함께 ‘해장공간’
아귀불갈비·젓갈 등 퓨전화도 시도

‘아귀찜의 전설’ 혹부리할매는 폐업

아구찜거리 입구에 도착했다. 언뜻 대구 동인동찜갈비 골목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 거리는 오동동 통술소리길과 창동 예술촌(상상길)과 맞물려 북적댄다. 하지만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한국철강 등의 호경기 시절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단다. 국내 노래방 인프라도 마산 경남은행 뒤편 골목에서 처음 발진된다. 금영 노래방 1호점도 거기서 태어난다. 마산의 경기가 바닥을 칠 때쯤인 2010년 진해와 마산은 창원시에 편입되면서 진해구와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행정명이 바뀐다. 창원시의 무골(武骨)스러움이 마산의 찬연한 문화예술적 인프라까지 창원 톤으로 코팅하려는 것에 최근 마산 토박이들이 반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마산아구찜을 창원아구찜 식으로 몰고 가려는 처사에 분노한 것이다. 마산보다 창원이 더 빛나는 행정에 화가 난 이승일 오동동상가번영회 사무국장 같은 사람은 ‘마산되찾기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음식 명칭은 표준말보다 사투리가 더 맛깔스러운 법. 마산에선 표준말인 아귀를 외면한다. ‘아구’만 고집한다. 매년 5월9일을 ‘아구데이’로 지정했다. 5와 9의 발음이 아구와 비슷해서란다. 식당 주인들은 ‘한국아구데이위원회’까지 만들고 매년 아구축제도 연다. 아구찜거리는 근처 복요리거리와 함께 마산 술꾼의 해장공간이기도 한다.

아구찜거리 홍보전단에 수록된 업소만 17개. 진짜와 원조란 말이 상호에 들어간 업소만 옛날진짜아구찜, 진짜아구찜, 진짜아구아지매, 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 등 4개다. 아무튼 가장 유명한 곳은 별관은 물론 무료주차장까지 구비한 ‘오동동아구할매집’이다. ‘아구찜현대화’의 주역이다. 이 집 외벽에 아귀 할매·말린 아귀·초가집을 모티브로 한 벽화를 그려놓았다. 여걸 포스의 3대 사장인 김삼연씨는 ‘아귀명인’으로 통한다. 아귀불갈비, 아귀젓갈, 아귀포 등 아귀요리 퓨전화에 시동을 걸었다.

마산아귀찜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혹부리 할매를 추억해보았다. 식당이랄 것도 없는 초가집에서 장사를 했을 60년대 초 어느 시절의 할매였으리라. 선원들이 정으로 던져주고 간 못생기고 재수 없게 생긴 아귀를 할매는 무심코 담장 쪽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왕따당한 아귀는 되레 해풍에 자연스럽게 건조돼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말라있는 아귀를 발견한 할매. 뭔가 새로운 요리가 나올 것 같아 고민하다가 된장, 파 등이 가미된 아귀찜을 손님에게 맛보이기로 내놓았다. 새로운 맛이라 여긴 어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게 하나둘 늘어나 지금에 이른다.

1960년 12월1일 마산에서 처음으로 영업허가를 받고 장사하는 식당이 탄생한다. 마산시 식당 영업허가증 번호 1번은 ‘귀거래’. 초창기 혹부리 할매의 손맛을 가업 식으로 이은 업소는 아쉽게도 이 바닥에는 없다. 원형의 아귀찜 맛은 최소 3차례 이상 레시피가 변형됐다.

굳이 따지자면 아구찜골목 안에 어둑하게 앉아 있는 ‘원조초가아구할매’ 정도가 원조에 가깝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관광객은 외관이 더 번듯한 아귀할매집으로 몰려간다. 초가할매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업소는 ‘구강할매아구찜’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전 폐업됐다. 식당 건물이 철거 중이라고 해서 급히 현장으로 가봤다. 정말이었다. ‘구강할매아구찜’이란 상호만 황량하게 건물 벽에 외롭게 붙어 있었다. 저것도 마산의 문화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간판을 고이 챙겨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그 가게 앞에서는 현재 오동동문화광장을 짓기 위해 터다지기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국내 언론인이나 여행작가도 더 이상 구강아구찜의 존재를 터치하지 않는다. 공무원도 마케팅에만 신경 쓰지, 역사정리에는 관심이 없다. 창원시조차 홍보물을 작성할 때 아구찜거리 역사에 구강아구찜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참에 푸드로드에서 혹부리 할매의 이름이라도 밝혀볼 작정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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